앵커: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김덕훈 내각 총리를 강하게 질책했던 평안남도 온천군 안석간석지 피해 현장은 말 그대로 초토화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올해 농사는 망쳤지만, 내년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북한 농업 전문가들의 관측인데요.
김정은 정권이 간척지 개발 사업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면서 막대한 자본과 노동력을 투입했고 그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지만, 이번 침수 피해로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는 분석입니다. 김 총비서가 대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건데요.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바닷물에 잠긴 논 , 내년 농사도 장담 못 해
미국의 상업위성인 ‘플래닛 랩스’ (Planet Labs)’가 지난 8월 19일에 촬영한 북한 평안남도 온천군 안석간석지.
지난달 중순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제방이 무너지면서 바닷물이 간석지로 밀려 들어와 대부분 논이 물에 잠겼습니다.
피해 면적만 약 650헥타르(약 197만 평),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발표한 555헥타르보다 100여 헥타르 더 많은 것으로 분석됐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피해 규모가 작지 않습니다.

지난 9월 1일에 촬영한 위성사진에는 안석간석지의 3분의 1가량이 여전히 물에 잠겨 있으며, 9월 7일 사진에서는 대부분 논이 크게 훼손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성학 한국 한반도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 8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바닷물에 잠긴 안석간석지의 올해 농사는 사실상 끝났다고 진단했습니다.
[정성학] 지난 9월 1일 안석간석지 영상을 보면 물이 아직 안 빠졌습니다. 침수 피해를 입은 지 3주 정도가 지난 시점인데, 3분의 1 정도가 아직 물에 잠긴 상태였습니다. 안석간석지의 경우 바닷물에 잠긴 지역은 올해 농사는 끝났다고 봐야 하고요. 소금기가 남아 있기 때문에 내년 농사도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김혁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 선임연구원도 지난 7일 RFA에 위성사진을 보면 2차로 조성한 간석지 전체가 물에 잠긴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쌀로 계산하면 약 1천200~1천900 톤의 생산량에 해당한다고 분석했습니다.
[김혁] 원래 안석간석지는 1천400헥타르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완공된 2차 간석지의 경우 1천 헥타르 규모인데, 여기에서 농경지를 조성한 규모가 630헥타르 정도 나옵니다. 630헥타르를 논으로 조성했는데 전부 물에 잠긴 걸로 보여요. 간석지의 경우 일반적으로 첫해에는 생산량이 많이 안 나옵니다. 여기는 보통 (헥타르당) 쌀 2톤 정도로 보거든요. 그런데 (헥타르당) 3톤 정도로 계산하게 되면 약 1천900 톤 정도의 피해를 봤다고 할 수 있는 거죠.
하지만 문제는 침수 피해가 올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안석간석지가 바닷물에 잠기면서 땅의 염도가 올라갔고, 내년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염기를 제거하는 제염작업을 다시 해야 하는데,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김 선임연구원은 당장 내년 농사도 불가능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김혁] 내년도에 이게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제염을 위해서는) 그만큼 물이 있어야 하는데, 물이 있으려면 비가 와줘야 하거든요. 이제 가을이기 때문에 사실 비 올 확률이 많이 떨어지죠. 겨울도 그렇고, 내년 봄에 비가 와준다면 제염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가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내년도 농사도 좀 어렵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드네요.

김 총비서가 지난 8월 14일 현지 시찰했던 북한 강원도 안변군 오계리 일대도 수해 피해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북한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안변군 오계리 일대에서 200정보(60만 평)의 농경지가 침수됐다고 보도했는데, 약 2주 뒤인 지난달 30일 유럽우주청(ESA)의 센티넬 영상에 따르면 아직 곳곳이 침수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성학] 강원도 안변군 오계리 농경지도 태풍 ‘카눈’이 지나가면서 피해를 입었는데, 태풍이 지나가고 3주가 지난 시점에도 군데군데 논이 물에 잠긴 것이 확인됐습니다. 논이 물에 잠기면 침수된 지역은 검은색으로 나타나는데, 오계리 일대를 보면 침수된 곳이 여러 군데 눈에 띕니다. 물에 잠긴 논은 물이 빠지더라도 병충해에 취약한 문제가 있고요. 벼 생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이 지역에서도 가을철 수확량이 부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김 총비서가 대노한 진짜 이유는 ?
북한 농업 전문가들에 따르면 안석간석지의 침수 피해가 당장 북한의 식량 상황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북한 전체 농경지와 식량 생산량을 비교했을 때 안석간석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에서 안석간석지가 가진 상징성을 고려하면, 이번 침수 피해가 김 총비서에게 큰 충격을 줬을 것이란 게 김혁 선임연구원의 설명입니다.
[김혁] 간척지라고 하는 국토개발 사업 자체가 김정은 체제 들어와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사업이고 간척지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수가 유입되면서 그동안 성과에 관한 홍보 효과가 약화하는 결과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이 부분을 강력히 강조하고 처벌을 이야기하는 상황이 아닐까 봅니다.
북한 경제학자인 문성희 박사도 지난 6일 RFA에 농사지을 땅이 모자란 북한에서 간석지는 북한의 주체농법에서 매우 중요한 정책인데, 이것이 물에 잠긴 것은 북한의 경제적 손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새 간석지를 조성하기 위해 막대한 노동력과 자본을 투입했는데, 성과를 내기도 전에 내년 농사까지 망쳤으니 김 총비서가 크게 화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게 문 박사의 분석입니다.
[문성희] 안석간석지는 북한이 아마도 힘을 쓴 간석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곳이 물에 잠겨버렸으니 김 위원장의 입장에서 보면 돈도 많이 쓰고, 투자도 많이 했을 텐데 오히려 손해를 본 것을 참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태풍에 대한) 일기예보가 있어서 미리 예상할 수 있었고, 이를 위해 뭔가 해야 했던 것 아니냐, 그것이 김덕훈 내각 총리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실제 2010년 이후 김정은 정권에서는 간척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평안북도와 황해남도에서 약 200제곱킬로미터 면적의 땅을 확보하는 등 일부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 중 2017년 5월에 착공한 안석간석지는 2020년 9월에 준공했으며, 당시 노동신문은 “수십만 제곱미터의 장석 공사 등을 통해 방조제를 쌓고 대자연 개조사업으로 조성한 자랑찬 노력적 성과”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수확과 함께 자신의 경제적 성과로 내세우려 했던 김 총비서의 계획은 태풍으로 무너진 제방과 함께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팀 이경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