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권

(연평도 주민)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한국 최북단 섬 연평도를 향해 발사한 포탄이 연평도 주민 정창권 씨의 집의 지붕을 뚫고 침실로 떨어졌습니다. 당시 정 씨는 외출 중이었고, 아내는 거실에 있어 가까스로 화를 면했습니다.

[정창권] 그때 시간이 한 2시 반 정도, 여객선이 들어오는 시간이었거든요. 저는 손님맞이 때문에 부둣가에 나가 있었고, 집사람은 그날 인천에 나가려고 방에서 준비하는 상황에서 포탄이 집으로 떨어진 거죠. 천정에 약 2미터 정도의 구멍이 뚫리면서 침대로 떨어졌죠.

하지만 아내는 당시 충격으로 트라우마를 겪고 2년 동안 병원 치료를 다녀야 했습니다.

[정창권] 반은 터져서 산탄으로 나가고, 반은 이렇게 꼬이면서 그냥 침대에 주저앉았죠. 저는 직접 상처를 입지 않았지만,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아마 이해를 못 할 거예요. 영화 같은 장면이죠. 막 여기서 불꽃이 일어나고,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고, 그다음에 불이 나는 것들을 보고 그때는 아무 생각을 못 하겠더라고요. 다 끝난 다음에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정말 그때가 위험했구나’.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6.25 한국 전쟁 이후 남한으로 북한의 포탄 공격이 이뤄진 최초의 사례입니다. 지금도 연평도에는 당시 폭격으로 부서진 민가 세 채가 보존돼 있습니다.

[정창권] 나중에 뉴스를 들어보니까 6.25 전쟁 이후 최초로 북한의 포탄이 남한에 떨어진 사례라고 하더라고요.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전시 상황이었죠. 그때는 마을 전체가 다 불바다였으니까.

오랜 시간이 흘러 연평도 주민들의 트라우마는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 눈물부터 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명재] 저도 딸아이를 찾으러 가는 과정에 제가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뛰는 데 마음같이 안되더라고요. 너무 놀란 나머지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고, 지금도 제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그때 상황이 안 잊히죠. 저 같은 경우는 지금도 마찬가지거든요. 그때 생각이 계속 떠올라요.

정 씨는 여전히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 때문에 연평도 주민들이 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고 말합니다.

[정창권] 자연적인 치유가 제일 컸죠. 실질적으로 한 2~3년 정도 시기는 굉장히 힘들었어요. 사람들이 포 소리 같은 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랬는데, 그 시간이 지나니까 일상으로 돌아가서 예전과 똑같은 평상심으로 돌아가겠더라고요. 하지만 단 한 가지,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다’, ‘더 준비를 잘하고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연평도는 당시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일상을 되찾은 모습이지만, 애써 당시의 기억을 묻어두고 싶은 것이 연평도 주민들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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