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으로 보내는 편지 - 문화방송 황원기자의 사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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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 사는 납북자 가족들의 사연과 이들이 북한에 끌려간 가족들에게 보내는 ‘북으로 보내는 편지’ 오늘은 그 여덟 번째 순서로 지난 69년 남한 대한항공을 타고 있다가 납북당한 문화방송 황원기자의 사연과 그의 아들 황인철씨가 보내는 편지 내용을 지난번에 이어 계속 소개해 드립니다.

다음은 황원씨의 아들 황인철씨가 보내는 편지 내용입니다.

살아계신다고 하면 달을 보면서 "지금 아버지도 저 달을 보고 계시겠지" 하며 그리움 만이라도 달래 수 있으 련만 돌아가셨다면 제사라도 올릴 수 있으련만 이런 작은 소망조차도 막는 무리들이 원망스럽고 원통합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할머니가 평상시 제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 하신 것을"네 애비를 생각하면 내 젖 가슴이 지금도 짜르르 하다"고 저를 끌어안으시면서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말씀하신 한 서린 외마디! 8년전 돌아가시면서 "나를 화장 시켜라. 그리고 뿌려라 응어리진 평생의 한을 풀어 버리련다."하신 할머니께 둘째인 당신이 돌아오면 눈물을 흘릴 장소가 필요하다고 식구들이 애원하였기에, 눈물과 함께 안장을 허락하신 할머니! 할머니무덤 옆에 아버지의 자리도 준비해 두었습니다. 가해자는 없어지고 피해자만 남아 있는 어처구니없는 이 현실에 당신의 주검만이라도 확인된다면 이곳에 묻고 곁에 나란히 모시고 싶습니다. 두 분이 함께 나란히 누워 계실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아! 할머니! 아버지! 두분 만이라도 평생 보고팠던 한 만은 없어지시겠지요?

1969년 12월 대한항공편으로 서울로 출장을 떠났던 문화방송기자 황원씨는 공중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돼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게 됐습니다.

북한당국은 국제사회의 비난이 빗발치자 납북자 51명중 39명을 남한으로 송환했지만 나머지 황원씨를 포함한 대한항공 승무원들 12명은 북한에 억류했습니다.

또 한 차례 시련을 겪어야 했던 황씨의 가족들은 남한정부의 도움은 커녕 오히려 정부의 감시대상이 됐었다고 황원씨의 아들 황인철씨는 회고합니다.

황씨의 가족을 버린 것은 정부만이 아니었습니다. 황원씨가 몸담고 있던 문화방송도 황씨가 출장 중에 변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황씨의 가족들에게는 냉담하기만 했다고 황인철씨는 말합니다.

황인철: 예전에 같이 근무하던 상사가 있다. 그의 회의록에 의하면 12월10일 ‘본인은 방송부장을 겸하고 있던 터라 본인을 대신하여 황원씨를 출장토록 하였다’라는 내용이 있고 본사에 출장을 가다가 이 사간이 발생했다.

황씨가 속해있던 문화방송측은 황원씨가 출장 중에 당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황씨를 휴직처리하고 지급하던 급여마저도 중단해 황씨의 가족들은 살길이 막막했었다고 황인원씨는 말합니다.

얼마 전 황인원씨는 아버지에 대한 배상을 문화방송 측에 요청했지만 지금까지도 문화방송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고 말합니다.

황인원: 87년도에 군대에 입대를 해야 돼서 납북자 가족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 아버지의 사망신고를 했다. 요번에 사건이 마무리 되지 않았으니 임금과 퇴직금을 요구하자고 했다. MBC측에서 나온 대답은 87년에 사망처리가 돼서 시효가 지나 받을 것이 없다.

황씨 가족들은 그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 할 수 없이 가슴을 앓으며 살아왔습니다. 황원씨의 어머니도 자식을 잃은 한을 품고 얼마 전 세상을 떴습니다.

지금까지 지난 1969년 납북당한 문화방송기자 황원씨의 아들 황인철씨의 편지 내용이었습니다.

이규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