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우리 생활] 북한 섬유수출길 막혀 ‘젊은 여직공’ 직격탄 맞아
2024.05.10
북한의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북한의 현실과 앞으로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는 RFA 주간 프로그램 ‘경제와 우리생활’ 진행을 맡은 정영 입니다. 오늘은 유엔대북제재로 인해 북한 섬유수출이 막히게 되어 북한경제와 민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기자: 안녕하셨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네 안녕하세요.
기자: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의 섬유수출 금지조치를 담은 결의를 언제 채택했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북한의 6차 핵 실험을 단행하자, 이에 대응하여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2017년 9월 12일 유엔헌장 7장 41조에 따라 강도높은 제재조치를 담은 결의안 ‘2375’를 만장일치로 채택을 했는데요. 그중에서도 주목할만한 조치가 북한의 섬유 수출을 금지하는 항목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의 복장 수출은 북한의 대중 수출 품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고, 더욱이 2016년 석탄과 광물 수출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면서 섬유수출의 비중이 더욱더 높아졌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기자: 유엔안보리의 북한 섬유 수출 금지조치가 북한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외화소득원이 상당히 감소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그렇다면 이것이 일반 주민에게 준 영향은 어떻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국가에 미친 영향도 물론 크지만, 일반 주민에게 미친 영향이 우선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는데요. 왜냐하면 제재 이전 북한의 대중 수출에서 복장 임가공 비중이 점진적으로 증가했고 마지막에는 30~40%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공장의 수뿐만 아니라 이곳에 종사하는 종업원의 수가 결코 적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기자: 그렇지만 북한의 공장기업소에 다녀도 종업원들에게 임금은 물론 배급도 잘 주지 않는 곳이 많지 않나요? 전문 수출 피복 공장이 북한에 많다고 해도 이것이 종업원에게 주는 피해가 있나요?
정은이 연구위원: 북한이탈주민들을 조사해보면, 다른 지방공장과는 달리 수출피복공장만큼은 그래도 종업원들에게 평균 한 달에 약 50달러 상당의 임금이나 배급이 지급이 된 것으로 보이고요. 또 명절에는 콩기름이나 설탕, 고기 등이 보너스로 지급 되었고, 또 공장에서 만드는 수출용 옷들도 남으면 가끔씩 보너스로 제공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출피복공장에서 만드는 겨울 패딩 같은 경우 장마당에 팔면 질과 디자인, 천이 너무 좋아서 한 벌에 최대 100달러까지 값을 올려도 없어서 못팔 정도라고 해요. 이렇게 치면, 한 세대당 한명만 이러한 공장에 다녀도 최소 생계비는 마련했을 수 있지 않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요.
기자: 그러면 북한 근로자들은 이 정도의 돈을 벌기 위해 하루에 얼마나 일을 하나요?
정은이 연구위원: 사실 제재전까지만 해도 중국으로부터 주문이 많다보니 아침 7시나 8시에 정도에 출근해 저녁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끝나는 경우가 흔하다고 해요. 그래서 이곳에서 일하다가 남한에 넘어온 어떤 이탈주민은 너무 환한 시간에 거리를 다닐 수 있어서 상당히 신기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직장 노동자들이 돈을 벌 수 없는데, 그나마 수출피복공장 노동자들은 현금과 배급 정도를 벌 수 있는 곳이지요.
기자: 그러면 북한 수출피복공장 노동자들이 하루에 12시간 이상 일했다는 이야기인데요. 미국 같은 경우 근무연장시간을 하면, ‘오버타임’이라고 해서 특별히 임금을 계산하는데, 정규시간의 50%를 더 받습니다. 예를 들어 시간당 18달러를 받는 노동자가 4시간을 더 일했다고 하면 시간당 1.5를 곱해서 한 시간에 27달러를 받습니다. 그런데 북한 수출 피복공장에서 일하는 종업원은 주로 어떤 계층의 주민들인가요?
정은이 연구위원: 대체로 보면 결혼하기 전의 젊은 여성들이 많지요. 결혼한 여성의 경우, 디자인이나 재봉기술이 있으면 가내수공업 형태로 아예 독립해서 집에서 주문받아서 일하는 게 더 많은 돈을 버니 공장에 가지 않지요. 어쨌든 젊은 여성들로 이루어지다보니 일도 아주 잘 하고 숙련도도 빠르다고 합니다.
기자: 북한이 복장을 임가공 하여 대대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키우려면 공장과 기계 등이 필요했을 텐데요. 그걸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사실 이러한 형태의 무역이 활성화가 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처음에는 2005년 이후, 본격적으로는 2010년 이후라고 할 수 있는데요. 초기에는 중국에서 북한을 믿지 못해서 원단을 잘 보내려고 하지 않았어요. 원단이 워낙 고가이니까요. 북한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이기 때문에 원단을 보내면 없어질 것 같아서 보내기를 주저하게 되었어요. 따라서 재봉기 같은 기계도 북한에 보내기를 꺼려했지요. 그런데 북한은 경제형편상 천보다는 임가공비를 벌어들이는 것이 더 많은 이득이라고 생각했는지, 약속을 잘 지켰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 신뢰가 쌓여서 이러한 형태의 무역이 북중간에 늘어난 것이지요. 그래서 지방에 수출피복공장 형태의 공장들이 적지 않게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기자: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많은 임가공 주문을 받으려면 그만큼 재봉기도 있어야 하고요. 재단기 등도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그런 것들을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대부분 해외, 즉, 중국에서 들여 왔는데요. 처음에는 북한이 기계를 사들일 밑천이 없으니까 중국에서 받아야 할 임가공비 중 일부를 제하는 방식으로 기계를 들여왔습니다. 그렇지만 임가공 규모가 증가하다보니 중국인들이 들여보내는 기계만으로는 충족을 시킬 수가 없었고, 또 북한 자체도 그동안 임가공비를 받아서 축적한 자본이 있으니까 더 이상 중국한테서 받지 않고 스스로 생산 공정에 맞게 기계를 대량으로 사들여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 더 많은 제품을 더 빨리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으니까요.
기자: 결국 북한의 대방들도 어느 정도 재력을 갖췄다고 볼 수 있겠군요.
정은이 연구위원: 김정은 시대 이후로는 무역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북한 무역일꾼들이 상대적으로 해외에 나오기 쉽게 되었어요. 즉, 과거에는 각 회사 단위별로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무역 총국에 신청을 해서 일괄 구매를 하게 했다면 김정은 시대 이후로는 일반 단위에서도 돈과 중국에 파트너가 있으면 필요하다면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굳이 중국 무역 파트너에게 상품을 주문하지 않고도 직접 중국에 나와 공장에 가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상품들을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기자: 그러니까, 북한에 무역총국이 필요없이 되었다는 거군요. 그러면 이런 수출피복공장이 북한에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정은이 연구위원: 정확한 숫자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어쨋든 한창 복장임가공수출이 활성화 되었을 때는 북한 전국 각지, 심지어 농촌에도 세워지게 되었고, 따라서 농촌에 거주하는 주민이나 농민들도 교대로 봉제공장에 다녔다고 합니다. 그만큼 복장임가공이 북한 주민에게 미친 영향이 컸다는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기자: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다음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정 연구위원: 네 감사합니다.
경제와 우리 생활 지금까지 도움 말씀에는 남한의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워싱턴에서 RA 자유아시아방송 정영입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