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4월에는 북한인권과 관련한 대규모 행사가 서울과 이곳 워싱턴에서 열립니다. 오늘은 RFA 저희 방송에서 매주 논평을 하면서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는 그레그 스칼라튜 씨를 통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즉 관리소에 대해 알아봅니다.
기자: 사무총장께선 1990년 한국과 루마니아의 외교관계가 수립되면서 한국에 국비장학생으로 가게 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게 됐습니까?
스칼라튜: 사실 처음에는 북한과 상황이 너무 비슷한 공산주의 독재국가인 루마니아에서 태어나 거기서 19년 동안 살았기 때문에 솔직히 처음에는 루마니아와 비슷한 공산주의 독재국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일단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북한 인권에 대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진 계시는 루마니아는 북한과 가장 비슷하던 동유럽 나라였고 또 10년 동안 한국에서 공부하고 살면서 분단된 한반도에서 살았기 때문에 북한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난 20년 동안 북한 인권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기자: 북한과 루마니아는 1948년 이후 형제국으로 불릴 만큼 관계가 돈독했는데 루마니아에도 북한 정치범 수용소와 같은 특별 시설이 있었습니까?
스칼라튜: 네, 그런 시설이 있었습니다. 루마니아에도 북한처럼 정치범 관리소가 있었습니다. 제2차 대전 직후 루마니아는 붉은 제국주의 던 소련의 군화에 짓밟혀 루마니아가 공산주의 독재국가가 됐습니다. 그래서 소련과 루마니아 공산주의자들은 루마니아의 엘리트 층 즉 의사, 변호사, 군인, 장교, 정치인들을 완전히 없애려고 했습니다. 완전 제거하려고 했기 때문에 북한의 정치범 관리소와 비슷한 정치범 관리소를 만들었습니다. 정치범 관리소를 제 2차 대전 직후 시작해서 1960년 초반까지 운영했습니다. 당시 거의 15년 동안 수 백 만 명의 루마니아 주민이 희생됐습니다. 독재정권을 반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그런 인물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기자: 현재 북한의 정치범 관리소는 특정 건물에 가둬놓고 머리를 깍은 수형자들이 생활하는 그런 곳이 아니고 겉으로 보면 일반 마을처럼 보이는데 루마니아도 그랬나요?
스칼라튜: 루마니아도 그런 형태가 있었습니다. 다뉴브 강과 흑해 바닷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런 마을을 두고 있었습니다. 정치범들은 일반 교도소에도 수감될 수도 있고 그런 마을에 수감될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뉴브 강과 흑해를 연결하는 운하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소련의 지도자이던 스탈린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거기서 일하던 사람들은 주로 정치범들이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목적은 완전히 루마니아의 엘리트들을 전멸 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 북한인권위원회에서 파악하고 있는 북한정치범관리소의 현황은 어떤 것입니까?
스칼라튜: 안타깝지만 북한 정치범 관리소의 상황이 개선돼진 않았습니다. 아직까지는 북한 정치범 관리소에는 12만 명 이상이 수용돼 있고 또 북한의 연좌제에 의해 한 가족의 3대 친척들까지 수용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은 지구촌 21세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자: 지금 지적을 해주신 것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 북한에도 법이 있고 자기들의 통치 철학에 의해 관리소를 운영하는 데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스칼라튜: 문제가 되는 이유는 북한에도 헌법이 있는데 법상 인권이 보장돼 있습니다. 북한 정치범 관리소는 일단 북한 헌법을 위반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북한은 1991년 유엔에 가입했습니다. 북한은 유엔 가입국으로서 국제인권 기준을 지켜야 합니다. 또 북한은 유엔 가입국으로서 국제 인권법을 준수해야합니다. 또 북한은 1981년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규약을 인준했고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을 인준했습니다. 그 규약에 의한 국제법을 지켜야 하는 데 북한의 인권 상황을 보면 그런 국제규약을 계속 위반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자: 관리소는 실체 파악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몇 군데나 운영이 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스칼라튜: 네, 파악하기가 아직까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북한 당국이 계속 정치범수용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현지 조사를 할 수 없습니다. 현장을 방문할 수 없기 때문에 그만큼 조사가 어려운 것입니다. 2004년 이후로는 유엔특별보고관도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나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이 북한을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이 북한 사회 그리고 국제기구와 협력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조사가 이뤄지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20년 전에는 사실 북한 정치범관리소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습니다. 또 탈북주민도 많지 않았고요. 하지만 고난의 행군 때부터 북한주민이 많이 탈북 했고 현재 남한정착 탈북자가 2만 7천여 명이 됩니다. 또 다른 나라에도 거주하는 탈북자가 5천 면에서 1만 명까지 됩니다. 그분들의 증언이 중요하고요. 북한 정치범이라 하면 이제는 정치범으로 수감돼 있다가 탈북한 사람도 만날 수 있고 관리소에서 간수 생활을 하던 탈북자도 만날 수 있고 그러한 증언과 함께 기술이 많이 발달해 위성사진으로 관리소를 연구할 수 있고 조사할 수 있습니다.
기자: 지금 현재 북한의 관리소는 몇 개로 파악하고 있습니까?
스칼라튜: 현재 관리소로 남아 있는 장소는 4곳입니다. 북한과 중국 국경에 가까이 있던 22호 관리소 함경북도 회령에 있던 정치범 관리소는 이제 관리소로 운영 하진 않는데 그 이유는 국경에 너무 가깝기 때문에 정치범들이 탈옥해 탈북해서 국제사회에 폭로하고 중요한 증인이 되기 때문에 국경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기려는 겁니다. 다른 이유는 중국 관광객도 있고 중국과 경제협력이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당국 입장에서는 별로 안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북한인권위원회나 국제인권보호 단체인 국제앰네스티의 조사를 보면 다른 정치범 관리소들이 틀림없이 확장됐습니다.
기자: 루마니아 독재가 하루아침에 민중봉기에 의해 무너졌는데 북한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스칼라튜: 네, 확실한 것은 독재가 영원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루마니아도 그렇고 다른 나라의 독재정권도 마찬가지입니다. 루마니아는 다른 동구권 공산독재주의 정권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1971년 처음 북한을 방문하면서 개인숭배와 주체사상에 첫눈에 반해 루마니아를 북한처럼 바꿔놓으려고 했기 때문에 다른 동유럽 국가보다 훨씬 고립돼있었고 개혁과 개방을 마지막 순간까지 거부했습니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는 그래도 1970년대부터 어느 정도 개혁과 개방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질 때 다친 사람 없이 평화로운 과정을 통해 체제변화를 바꿔놨습니다. 또 1990년대 어느 정도의 개혁과 개방의 경험이 있었던 나라에서는 전환기가 수월했습니다. 하지만 루마니아는 어려웠습니다. 독재자가 마지막 순간까지 독재체제를 포기하지 않고 개력개방을 거부했기 때문에 루마니아 주민들이 유혈혁명을 통해 체제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고 어려운 전환기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2004년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 2007년 1월 유럽연합에 가입해 이제 완전히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고 지난 몇 년 동안 놀라운 성장을 해온 나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 그레그 스칼라튜 사무총장을 통해 북한 정치범수용소 즉 관리소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