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다른 역사와 표현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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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ong_staue_b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연합뉴스

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우리가 역사 공부를 하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우리의 현재 위치를 파악할 수 있고 선조들의 삶에서 삶의 지혜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역사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이나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방식에 따라 완전히 실체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은 남북한이 다르게 교육하고 있는 역사와 일상에서의 다른 표현에 대해 탈북자들의 사례를 모아봤습니다.

“한민족이 쓰고 있는 한글. 1443년 창제되어 1446년 반포되었다. 처음 28자로 만들었는데 4글자가 소멸되면서 현재 24자가 쓰이고 있다. 처음 훈민정음으로 반포되었다가 1910년대부터 한글이라고 했다.” 이것은 백과사전에 나온 한글의 정의 입니다. 북한에서는 조선글, 남한에서는 한글이라고 불리는 우리말에 대한 창제도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과 다르게 알고 있습니다. 양청구청에서 일하는 탈북여성 김혜성 씨입니다.

김혜성: 솔직히 북한에서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을 몰랐어요. 한국에 나와서 역사를 배우면서 한글을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는 역사를 가르치는 한국에서 외래어는 더 많이 쓰더라고요.

기자: 그러면 북한에서는 한글을 누가 만들었다고 알고 있었습니까?

김혜성: 누가 만들었다는 말이 없이 그냥 시작하는 거죠. 북한은 프롤레타리아 사상 문화잖아요. 그런데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하면 왕을 우대하는 문화가 들어갈까봐 그래서 북한에서는 역사에서 조금 가르쳐줄 때 동학을 갑오농민 전쟁이라고 가르쳐줘요. 그리고 조선 태종이 회군을 해서 정변을 일으켜서 조선이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나라를 세웠는지 여기에 대해서는 안 가르쳐 주는 거예요. 저는 한국에 와서 조선의 왕들에 대해 처음 알았어요.

한글과 세종대왕은 항상 같이 떠오르는 단어 입니다. 왜냐하면 조선의 제4대 왕이었던 세종이 백성들이 쉽게 쓰고 읽을 수 있도록 훈민정음 즉 한글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가르치는 한글의 창제는 좀 다른데요. 20대 탈북여성이 남한의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남북한 다른 역사 교과서에 대해 설명한 부분이 있어 소개합니다. E 채널에서 진행하는 수다로 통일 –공동공부구역 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소개된 북한의 중학교 2학년 역사 교과서입니다.

탈북자: 목차를 보면 왕을 내세운 것은 통일 국가를 세운 왕건에 대한 것 밖에는 없어요. 그리고 나머지를 보면 강감찬, 이순신이 나오고요. 그리고 훈민정음도 세종대왕이 지은 것 보다는 세종대왕 시대의 학자들이 만들었다고 가르치거든요. 백성들을 보면 특징이 반봉건 반외세적인 활동을 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것이죠. 한국은 왕의 업적이나 시대별 연대를 외우는 데 왕은 철저히 배제 시키고 백성 중심의 역사를 가르치는 거죠.

계속해서 역사 e뉴스에 나와 있는 한글창제에 대한 배경 설명 녹취입니다.

방송: 우리나라의 말과 글이 중국과 달라서 백성들이 한자로 서로 통하지 못한다. 이에 백성들이 말하고 싶은 바가 있어도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내가 이것을 딱하게 여겨 28자를 만들었으니 백성들이 쉽게 익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

남한사람들은 이렇게 세종대왕이 우리의 생각을 우리의 글자로 쉽게 표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백성을 위해 한글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왕이 혼자 한글을 만든 것은 아니고 집현전 학자들과 연구와 학문적 활동을 통해 한글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죠.

남한 사람들에게 세종대왕만큼이나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 또 한 분 있습니다.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인데요. 이 둘의 동상은 남한의 수도인 서울 한복판 광화문 광장에 있습니다. 1968년에 이순신 동상이 만들어졌고 2009년에 세종대왕의 동상이 건립됐습니다. 북한에서도 세종대왕의 존재를 아는 것처럼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도 알고는 있지만 달랐습니다.

탈북자: 시험문제에는 일단 이순신 장군이 뭘 만들었는지 그리고 몇 년도에 왜적을 물리쳤는지 년도는 좀 비슷하죠. 그런데 특징은 뭔가 하면 이순신 장군에 대해 김일성 대원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적으라고 해요.(패널: 주객이 전도 된….) 서술형으로 나왔다면 토씨한자 안 틀리게 다 써야 해요.

방송에 참여한 남한사람이 “주객이 전도된” 이란 말을 했죠. 손님이 오히려 주인처럼 행동하니 입장이 뒤바뀐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역사와 관련해 또 놀라는 것이 있습니다. 탈북여성 허초히 씨입니다.

허초히: 있어요. 저희들이 북한에서 몰랐던 것을 한국에서 알게 된 것은 김 씨 일가에 대한 것을 우리는 혁명역사에 배운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오니까 그것하고 정 반대라는 것이 제일 충격이고 …

북한에서 제일 열심히 외웠던 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놀랍니다.

허초히: 김정일이 백두산에서 태어났고 한 것도 백두산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백두산에서 태어났다니까 그렇게 알았는데 남한에 오니까 그것이 백두산이 아니고 러시아라는 것을 알았고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책을 읽어보면 음식을 일곱 번에 걸쳐 음식 검식을 하고 했는데 이런 것이 충격이죠. 그러니까 김 씨 일가에 대한 부분들은 다 몰랐는데 한국에 와서 안 것이 제일 충격이고요.

1988년부터 김정일의 전속 요리사로 13년간 일했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가 탈북해 일본에서 발간한 김정일의 요리사란 책을 통해 북한 지도자의 은밀한 사생활이 세상에 공개됐습니다. 허 씨는 북한에서는 금지돼있었던 것도 남한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었기에 놀랐던 겁니다.

허초히: 역사 속에서도 저희는 북한에서 배운 것 하고 한국에 오니까 책을 보고 텔레비전도 보고 하면서 조선역사는 이렇게 됐구나 하면서 좀 다르구나 하고 느낀 적은 있죠.

우리의 역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한 탈북여성 허정희 씨의 말입니다.

허정희: 저희가 공부할 때는 역사는 크게 중요시 안 했거든요. 우리는 수학만 잘하면 됐으니까요. 역사 수업은 그 시간에는 열심히 안 했거든요. 내가 대학까지 나왔어도 역사는 크게 중요시 안 한단 말입니다.

간단하게 남북한 사람이 각기 다르게 알고 있는 역사적 사건 한가지 더 들어봅니다.

허정희: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은 남한이 북한을 침공한 것으로 알았거든요. 북한에서 영화 이름없는 영웅들까지 나왔잖아요. 그런데 여기 와서 보니까 남한이 아니고 북한에서 남침했구나 하는 것을 알았거든요. 우리는 인터넷도 없고 다른 기타 방송을 못 듣잖아요. 외부와 차단이 됐으니까 북한에서 교육하는 것만 알았죠.

남한 사람들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략해 전쟁이 벌어졌다고 아는 반면 북한 사람들은 남한이 북한을 침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남북이 다르게 아는 역사의 한가지 예입니다.

역사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 표현도 통일이 된다면 극복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언어는 단순한 용어에 차이에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생활감정이나 또 그를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으면 혼란이 초래되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봅니다. 김혜성 씨입니다.

김혜성: 그리고 뭐가 있는가 하면요. 한국 사람들이 우리말을 못 알아 듣는 것이 한국은 텔레비전을 끄라, 불을 끄라 하잖아요. 그런데 북한은 텔레비전을 죽여라 노래를 죽여라 하니까 택시를 타고 가다가 우리 북한분이 노래를 죽여라 했는데 기사분이 자기를 죽이라고 한 줄 알고 깜짝 놀라서 부들부들 떨드래요. 이분이 설명을 했데요. 나는 기사님을 죽이라고 한 것이 아니고 우리 아들이 노래를 듣고 가는데 목적지에 도착을 했으니까 노래를 죽이라고 한 것이지 기사님을 죽이란 말을 안 했다고 자칫 오해를 하겠더라고요.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남과 북의 다른 역사교육과 다른 일상표현에 대해 전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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