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탈북벌목공 난민 1호 전성철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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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벌목장 모습.
러시아 벌목장 모습.
AFP PHOTO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1990년대 초 러시아 벌목장에서 일하던 일부 북한 벌목공들이 모스크바에 난민인정을 받아 남한으로 갔습니다. 탈북자가 유엔으로부터 난민인정을 받게 된 물꼬를 튼 셈인데요. 벌목공 유엔난민 1호 전성철 씨를 통해 당시 러시아 벌목공의 상황 알아보겠습니다.

기자: 1993년 러시아에서 일한 북한 벌목공들의 상황은 어땠습니까?

전성철: 1992년 한-러 수교가 있고 나서 벌목공들이 남한으로 갈 확률이 많기 때문에 벌목장 이탈자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던 때입니다. 남한 사람들이 수교 이후 많이 오다 보니까 밖에 나가 있던 벌목공들이 남쪽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늘었습니다. 그래서 보위부나 당기관에서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기자: 집단생활을 하는 분들이 외부 사람을 만나거나 남한 방송을 본다거나 정보를 어떻게 구했나요?

전성철: 그때 남한 소식 보다 한 개 소대 하나씩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달래라고 라디오를 나라에서 하나씩 줬습니다. 성능이 좋아서 신호가 잘 잡혔습니다. 벌목하는 사람들은 한 개 소대씩 나무하러 다니는데 산간오지에 들어가 있으니까 7-8명이 서로 믿게 되고 호기심도 있고 하니까 남한 방송도 몰래 많이 듣게 됩니다. 저도 남한에서 유행했던 ‘노랑셔츠 입은 사나이’ 노래도 남한방송을 통해 그때 배웠습니다.

기자: 보통 생활은 민가에서 하다가 나무 할 때는 산에 올라가서 일정 기간 생활을 하는 식이었습니까?

전성철: 일반 벌목공은 산간오지에 들어가 있고 그들을 돕는 유관부서들인 당기관이나 윤전기 고치고 자동차 수리하고 그런 분들은 아래 있었는데 이분들은 외부 방송 듣기가 좀 힘들죠.

전 씨는 당시 벌목공들을 관리하는 유관부서에서 일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벌목장을 이탈한 사람을 찾아 복귀 시키는 단속 조에 있었습니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워 벌목장을 이탈하는 사람이 점점 늘었기 때문입니다.

전성철: 제가 당시 북한은 자금난으로 보위부나 책임일군들 조국으로 출장 나갈 때도 경비를 자체 충당하라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국가 부담이었지만 알아서 본인이 충당하라고 했습니다. 벌목장을 탈출하는 사람이 많이 생겨서 두 개 연합이 있었는데 제1 연합은 잘 모르겠고 제가 있던 제 2연합은 안전부에서 단속조로 해서 6명씩 모집을 했습니다. 그리고 단속 조는 러시아 경찰과 협조 하에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는 여행증명서 발급이 됐습니다. 나가서 생활하면서 모스크바, 카자스탄 등 많은 곳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기자: 벌목공의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됩니까?

전성철: 당시 정확한 것은 모르겠지만 러시아 지역에 한 2만 명 정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1연합에 1사업소부터 14사업소까지 있고 2연합에 11사업소부터 17사까지 7개 사업소가 있었습니다. 한 개 사업소에 대략 1,200명 정도고 11사업소에는 1,500명까지 있었습니다. 그때 러시아 벌목이 가장 번성했을 때였죠.

기자: 사람이 많다 보니까 통제에도 한계가 있었겠네요.

전성철: 1개 사업소에 부장, 종합지도원, 담당지도원 3명해서 1200명을 관리하는 한 개 사업소에 간부 보위원이 6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단속조는 벌목공 중에 자기들이 믿을만 하고 자기들과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들을 뽑았거든요.

지금도 그렇지만 1990년대 초에도 북한에선 외화벌이 일꾼에 대한 인기가 높아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전성철: 보통 그때 평안남도의 경우 80:1 정도였습니다. 가정환경이 나쁜 사람은 생각도 못하고 외국에 친척 있는 사람, 월남자 가족, 월북자는 안 되고 제일교포 빼고 80명이 신청을 하면 그 중 한 명을 뽑았습니다.

기자: 남자만 간 거죠?

전성철: 네, 여자는 없었고 가족이 들어오는 경우는 있었습니다. 책임비서, 안전부장, 지배인 그리고 3년 임기가 끝났지만 일을 잘해 다시 일하는 벌목공 중에도 한 두 사람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전 씨는 단속조로 활동하면서 미국 선교사를 만나 교제를 하게 됩니다. 단순히 미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으로 알고 지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러한 사실을 자신이 호송 했던 벌목장 이탈자가 심문을 받으면서 보위원에게 발고한 겁니다. 복귀하면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전 씨는 남한행을 택했습니다.

기자: 유엔 난민 국에서도 처음 경험한 일이라 힘들었을 텐데 주로 묻는 것이 어떤 것이었습니까?

전성철: 난민 신청할 때 여권도 없었고 한국말을 한다는 것밖에는 없잖아요. 그래서 북한 사람이 맞는지 탈북자가 맞는지 또 범죄사실 여부에 대해 집중 질문을 했습니다.

난민신청을 하고 전 씨는 6개월 후 정식 난민 증을 받습니다.

기자: 바로 모스크바에서 바로 남한으로 가셨나요?

전성철: (난민증 받고)바로 왔습니다. 아시아나 항공이 93년 취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시아나 항공을 타고 1995년 2월18일 동료 둘과 왔습니다.

이렇게 전성철 씨는 유엔으로부터 난민인정을 받은 북한출신 두 번째가 되며 탈북 벌목공으로는 난민증을 받아 남한에 입국한 러시아 벌목공 1호가 됩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러시아 벌목공의 난민인정에 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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