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직장과 나의 인생

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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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이 시간 진행에 이진서입니다.

남한에는 정년퇴직 나이를 법에 규정하고 있는데요. 지난 2월 대법원에서 노인인구가 늘어가는 사회 여건을 고려해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30년 전에는 55세에서 60세로 정년 나이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 있어지만 2016년에 가서야 법으로 60세로 연장된 바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전력공사에서 정년퇴직을 한 허광일 씨를 통해 남한의 직장생활에 대해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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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광일: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의 중재를 거쳐서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그리고 1996년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한국전력공사에 입사를 했죠.

밀양송전탑 건설 지원사진.
밀양송전탑 건설 지원사진. 사진-허광일 제공

허광일 씨는 지난 1986년 러시아 벌목장으로 파견됐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남한에 있는 외가쪽 친척을 찾는 것이 발각돼 공개수배를 당한 후 1995년 러시아 모스크바 주재 유엔을 통해 남한에 갑니다.

벌목장에서는 생산한 나무의 수량을 종합적으로 집계하는 검침원이었는데요.

기자: 한국전력공사를 어떻게 입사했습니까?

허광일: 저는 당시 1년에 한 5명에서 7명정도 들어왔을 그해에는 8명이었을 겁니다. 지금처럼 대량으로 탈북자가 들어오지 않고 그때는 귀순자라고 했는데 정부에서 귀순자 절반은 직업을 구해줬습니다. 당시는 보건복지부 산하에서 탈북자 담당을 했는데 각 부처에 공문을 보내면 회사들에서 입사여건이 되면 우리를 받았습니다. 저는 1지망이 엘칸도 구두 생산하는 회사였고 2지망이 한국전력공사였는데 다행히 한국전력공사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남한입국 탈북자의 수가 적어 직장을 알선하고 정착을 돕는 때였습니다. 이렇게  허 씨의  남한직장은 시작됐는데요.

허광일: 나는 40대 초반이었는데 사실 이 나이에 한국 사람은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취직을 꿈도 못꿉니다. 나는 특수한 신분이었기 때문에 취직이 됐습니다. 그래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거죠.

신의 직장이란 근무 환경이나 대우 등이 매우 좋은 직장을 말하는 것인데요. 한국전력공사는 전기를 생산해 공급하는 남한 최대의 공기업입니다.

허광일: 사실 그때 당시 한국에 오니까 당시 기준이 어떻게 됐는가 하면 대학생 취업선호도에 있어서 사기업에는 삼성그룹이었고 공기업에서는 한국전력공사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두회사를 두고 사람들은  신이 내린 직장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전역공사를 줄여서 한전이라고 하는데요. 특별채용으로 입사한 허광일 씨는 신입사원 제일 말단직부에서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합니다.

기자: 일반적으로 신입사원이라면 군제대해서 20대 후반에서 30살 초반이었을 텐데요.

허광일: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특차전용으로 창구 여직원은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한 몇 명 빼고는 대다수가 대학 졸업생이었습니다.

기자: 동기들과의 나이 차이도 있는데 동료들과의 관계는 어땠습니까?

허광일: 처음에는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북한에서 사로청 간부도 했고 당 초급일꾼도 하면서 북한의 조직문화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한국 조직문화는 완전히 차원이 달랐습니다.  입사하고 보니까 딸과 같은 또 아들과 같은 직원과 동급으로 직원생활을 시작한다는 것이 쉬운 것도 아니었고 봉급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시 신의 직장이라고 하지만 처음 봉급이 60만원 정도였는데 한전 초봉 월급이 많지 않았습니다. 기대를 가지고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젊은이들도 한 몇 년 하다가 이직하는 분들을 여럿봤지만 여기가 내 인생 마지막 직장이다 하고 최선을 다한 것이죠.

기자: 방송을 듣는 분들은 90년대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혼란이 있을 수 있는데요. 신이 내린 직장이다 그런데 봉급은 낮아서 이직율이 낮았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허광일: 왜그런가 하면 저희 회사는 복지제도는 삼성 직원들도 우리 연수원에 와서 위탁교육을 받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복지제도라고 하면 의료보호 혜택, 연금혜택이 있는데요. 저희는 1년에 한 번 건강 정밀검사와 일반 검사를 받습니다. 일반회사와는 정말 다릅니다. 이 하나만 가지고도 한전은 최고의 화사라고 할 수 있죠. 또 전국에 북한으로 말하면 휴양소인데 한전이 가지고 있는 생활연수원이 있는데 이곳은 호텔 이상급의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1년에 한 번 거기가서 가족과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여건이 돼있습니다.

직장이란 보수를 받으면서 여러 사람이 모여 일하는 곳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좋은 직장이라고 불리는 곳은 일단 한 달에 한 번 받는 월급이 많아야 좋다고 말할 수 있는데요. 입사 초기에는 월급 때문에 조금 혼란을 겪기도 했습니다.

허광일: 처음에 들어가니까 봉급이 65만원 정도여서 생활이 안됐습니다. 그래서 내가 사장을 찾아가서 책상을 쳐가면서 월급을 올려달라고 했습니다. 사규 규정이 엄격한 회사가 한전인데 일단 3년을 참고 견디니까 어떤가 하면 1년마다 호봉이 올라가면서 그때는 보너스 400%라 3개월에 한 번 보너스가 나오는데 보너스가 붙는 달에는 월급의 거의 두 배를 받고 정년퇴직할 때는 보너스까지 해서 거의 400만원을 받았습니다. 처음에 저는 그것을 몰랐던 거죠. 결과적으로 3년 참고 견디면서 열심히 일하니까 모든 것이 해결돼서 나중에는 왜 내가 이것을 모르고 섣불리 회사분위기도 망치면서 경솔했나 그런적도 있었습니다.

북한 외화벌이 일꾼으로 러시아 벌먹장에서 검침원이었던 허 씨는 이제 전기를 생산하는 한국전력공사 직원으로 새로운 일을 하는데요. 이번에도 생산직이 아닌 전기 사용료를 거둬들이는 부분에서 일합니다.

허광일: 처음에 요금과에 들어갔다가 6개월 정도 있다가 수금과로 갔습니다.

기자: 그 다음은 퇴직할 때까지 수금과에 계셨고요?

허광일: 네, 마지막까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요금과는 수금과처럼 실적평가가 크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액기준으로 일하지만 수금과는 현장에 나가서 수금 독려를 하고 자기가 노력한 것만큼 성과를 올리면 거기에 따라 보너스가 나오고요.

기자: 간단히 말하자면 수금과라고 하면 전기요금을 안낸분들 요금 내십시요하고 알려주고 독촉하는 것이죠.

허광일: 그렇죠.

허광일 씨는 한국전력공사에서 만 19년 8개월을 근무하고 그의 나이 62세에 퇴직했습니다. 이제는 직장인 생활에 마감표를 찍었기에 남은 인생 자아발전에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허광일: 저는 한국전력공사라고 하는 타이틀에 저는 자부심을 가졌던 겁니다. 저는 깜짝 놀란 것이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니까 회사생활도 제도와 질서없어 북한에서 말하는 식대로 무정부 주의적인 무계획적이겠구나 했는데 가보니까 한국의 조직은 북한처럼 의도적이고 강압적인 조직생활이 아니라 내 개개인이 자기 직무에 따라 충실한 질서가 있는 것이 한국전력공사의 조직문화였습니다. 이런 자발적인 질서의식과  직무의식이 동반돼 있기 때문에 북한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 한국회사들에 자리메김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이 문제 하나만 놓고 봐도 우리는 북한과 승리한 게임을 하는 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오늘은 한국전력공사에서 정년퇴직한 허광일 씨를 통해 남한직장 생활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는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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