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7은 항복일

장진성∙탈북 작가
201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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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7월 27일) 경축행사에 참가하는 전쟁 노병들이 평양에 도착해 주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북한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7월 27일) 경축행사에 참가하는 전쟁 노병들이 평양에 도착해 주민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한인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혁명 2세대로 불리는 전쟁노병들의 명절인 7.27에 대해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7월 27일은 휴전협정일 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린다면 6.25남침을 일으켰던 김일성 정권이 하루 빨리 전쟁을 끝나게 해달라고 구 소련과 중국에 애걸하면서까지 정전협정에 도장을 찍은 항복 일입니다.

그런데도 전승 절이라고 우기는 이런 역사왜곡이 반세기 이상 지속된 결과 북한에서는 이날이 무슨 날이냐고 물으면 어린이로부터 어르신까지도 "미제와 남조선 괴뢰들을 타승한 승리의 날"이라고 대답합니다. 이렇듯 집단세뇌를 통한 집체적 착오를 꾀해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바로 김 씨 일가의 왕조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 북한에선 6.25부터 시작하는 반미, 반한 정서가 7.27에는 절정을 이루도록 정권 차원에서 기만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그 효과가 극대화 되도록 7.27이면 평양에선 열병식이나 무력시외, 군중대회 같은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김정은 정권은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 외신 기자들까지 초청하여 7.27광기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했다고 합니다. 이는 김정은 정권의 3대 세습 안정과 권위를 조작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사실 세계 앞에 또 다른 웃음거리와 구경거리를 만들어 준 셈입니다.

탈북자들은 7.27의 일상에 대해 이렇게 증언합니다. 2011년에 탈북한 이기영 씨는 "7.27이면 행사준비로 아침부터 온 동네가 북적거린다. 아침 8시부터 인민반장의 다그쳐대는 목소리가 들린다. 인민 반 동원이라면 돈을 내고 빠질 수 있는데 '정치행사'는 차원이 다르다. 괜히 의견 부려봤자 좋은 꼴은 못 본다. 힘 있는 동은 옥수수 국수를 후방 조에서 차에 실어 행사장으로 가져오지만, 식사 조직을 못한 동은 자체로 해결한다. 각자 돈을 가지고 매대에서 건식을 사먹고 오후 행사에 참가한다.

여맹은 보통 30대에서 50대 후반 정도의 여성들이다. 대열 앞에서 누가 '미제침략자들을 소멸하라.'고 선창을 하면 전체 대열이 '소멸하라'고 세 번을 되받아 반복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어 '줄을 맞춰 동 별로 광장에 모이는데 무더운 날씨에 숱한 사람들이 모이면 땀 냄새와 온갖 소리에 정신이 흐려진다. 도 당대표, 청년대표, 학생대표, 농민대표, 직맹대표의 연설이 있는데 적어도 두어 시간은 걸린다. 늘 들어오던 판에 박힌 말을 누구도 듣는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렇듯 강요행사 동원에 주민들이 불만을 갖는 그 이유에 대해 이기영 씨는 "내일 살기 바쁜 아낙네들의 마음은 시장에 가 있다. 행사 중에도 옆 사람과 귓속말로 '쌀값이 얼마냐, 돈대(환율)는 몇 대냐, 시장 보안 원이 바뀌었으면 좋겠다.' 등 생활에 필요한 말만 한다. 그런데 행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줄을 지어 거리로 다니면서 구호를 외쳐야 한다. '전승절' 분위기를 세운다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오전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가려면 오후 행사에 모이기가 쉽지 않다.

매일 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그런 사람들은 오전에 얼굴을 보이고 오후에는 시장에 나가길 바란다. 동여맹 위원장들은 이런 현상들을 막기 위해 대열을 흐트러지지 않고 오후까지 끌고 다닌다."고 했습니다. 이기영 씨는 마지막으로 "7월 27은 바쁜 날 중에도 고달프게 바쁜 날이다.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도 넘는데 아직도 그 때 정신을 고취하려고 살아가기 힘든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날이다. 미제를 타도하라고 하면서도 그들이 보내주는 구호물자는 다 받아먹는다. 정말 타도할 대상은 김 씨 일가다."라고 했습니다.

7.27의 또 다른 풍경은 바로 집체행사 동원의 맨 앞장에 서는 전쟁 노병들의 모습니다. 북한은 전승 절을 기념하여 나이 든 노병들을 초대하면서 대대적인 체제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참전 군인들은 옷이 찢어질 듯 많은 훈장을 자랑스럽게 달고 행사에 참가합니다. 그러나 남북한 두 체제를 다 경험한 탈북자들은 북한의 전쟁노병은 남한의 노숙자보다 못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노숙자는 꽃제비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남한에서 노숙자들이란 북한의 꽃제비처럼 생존의 길이 꽉 막힌 불가피한 동냥이 아니라 일하기 싫어 거리에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돈을 벌 수 있는데도 벌지 않고 남에게 손을 벌려 쉽게 살아가려는 것입니다. 이는 남들의 동정만으로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사회 환경이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노숙자들은 시민들이 주는 동전 외에도 끼니마다 교회나 시민단체들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식사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한의 노숙자들은 이렇게 국과 반찬이 매번 다른 무료식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반면, 북한의 노병들에겐 이런 무상배급이 딱 하루, 바로 7.27인 것입니다. 청진 출신의 탈북자 임재용 씨는 “노병들이 ‘갈매기각’이라는 식당에서 국수 한 그릇을 먹기 위해 길에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국수 한 그릇을 먹겠다고 뙤약볕 아래 길게 줄을 서는 것이다. 나중에 돌아갈 때 작은 과자 한 봉지나 알루미늄 도시락을 선물로 받아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저마다 ‘차라리 입쌀 몇 kg이라도 줘 보내는 게 낫지 저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수군거리더라"고 증언했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런 혜택도 주지 못하고 고작 1년에 한 번 음식을 대접하면서도 남한의 노숙자가 매일 무료로 급식 받는 것보다 못한 식사에도 감사해야 할 판이다. 수십 년 동안 목숨 바쳐 충성한 결과가 고작 그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남한에서 전승절과 유사한 기념일은 현충일입니다. 이날만큼은 집집마다 태극기를 달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현충원을 방문합니다. 애국선열을 기리기 위해 일부 오락시설들과 술집들도 영업을 하지 않기도 합니다.

여기에서도 남북한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남한은 전쟁을 이겨낸 승리의 의미보다 조국을 수호하는 과정에 장렬하게 희생된 참전용사들의 평안을 더 중시하는 반면, 북한은 체제 정당성을 조작하기 위해 휴전협정 일마저 전승 절이라며 김씨 일가의 축제로 즐기는 것입니다. 남한에는 조용하고, 북한에는 요란한 한반도의 7.27일, 진실은 침묵해도 진실이고, 거짓은 요란해도 거짓일 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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