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언론을 읽는 방법

장진성∙탈북 작가
2013.08.27
rodong_paper_color-305.jpg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최근 컬러사진을 부쩍 많이 게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북한의 언론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1994년 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방송위원회에 배치 받은 뒤였습니다.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정하철 위원장이 전체 종업원들 앞에서 당의 선동도 재미가 있어야 세뇌를 시킬 수 있다며 이런 유머를 들려주었습니다.

"어느 시골 할머니에게 도시에 사는 아들이 텔레비전을 사 보냈다. 할머니는 신기했다. 나무상자 안에서 사람도 나오고, 노래도 울리고, 여행통행증을 떼지 않았는데도 평양까지 볼 수 있어서였다. 그렇게 온 동네의 자랑거리던 텔레비전의 인기가 점점 시들해졌다. 계속 같은 내용이 반복되니깐 더 볼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고장도 아니고 원인이 뭘까? 하고 고민하던 할머니는 마침내 무릎을 치며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아들아, 네가 보내 준 텔레비전을 다 보았으니 이젠 다른 새 텔레비전을 사 보내거라."

그날 회의장은 웃음바다가 됐고, 정하철은 우리 모두 부끄러움을 느끼자며 김정일 시대의 TV문화혁명을 역설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일주일도 채 안 돼서였습니다. 김정일의 지침전달이 있으니 회의장에 다들 모이라는 것입니다. 그 내용인 즉 이러했습니다. "김정일의 현지시찰 보도 화면 중에 경호 군관들의 얼굴이 잠깐 노출됐다는 것, 화면이 많을 수록 비밀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러니 앞으로 중앙TV는 프로그램의 80%를 음악으로 대체하여 그 음악으로 적들의 감시를 막는 연막효과를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TV문화의 핵심은 정서성인 것만큼 음악의 정서가 방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때부터 졸지에 음악방송이 된 중앙TV는 단순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 "음악기행", "음악수필", "명곡해설", "노래와 시", "명곡과 위인", 등의 여러 비슷한 종류를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의 고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선기자동맹중앙위원회는 상반기와 하반기 두 번에 걸쳐 당 강습을 진행합니다. 그때면 여러 신문사 기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는 자리가 마련됩니다. 노동신문사 기자들은 과거엔 보도부나 정치부가 우대 받았는데 김일성동지 서거 후에는 정론이나 사설, 논설 쓰는 사람들만 사람 취급 받는다고 투덜댔습니다. 조선중앙텔레비전총국은 정서성이라면 노동신문은 정론성이었던 셈입니다. 그에 비하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들의 자긍심은 대단했습니다. 자기들은 외국만을 상대로 하는 직업이어서 비밀이 많은 대신 우대나 공급은 최상급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북한 언론을 읽는 방법은 3대 언론의 3대 속성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3대 언론이라면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사, 조선중앙텔레비전총국입니다. 그 외의 다른 언론들은 3대 언론의 논조에 철저히 구속돼 있을 뿐입니다. 노동당의 유일지도체제이자 언론의 유일지도체제인 것입니다. 언론의 그 유일적 영도부서인 노동당 선전선동부는 과도하게 3대 언론의 3대 기능을 전략화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불합리한 정권의 구차한 변명들을 항상 언론선동으로 정면 돌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3대 언론의 3대 기능은 노동신문의 정론성, 조선중앙통신사의 대외성, 조선중앙텔레비전 총국의 정서성입니다.

노동신문의 정론성은 대체로 정권의 정책적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 방향은 직선적일 수도 있고, 우회적일 수도 있습니다, 대체로 전략적 필요상 곡선일 때가 많습니다. 그 흐름을 강조하거나 반대로 역행하는 것이 조선중앙통신사의 대외성입니다. 왜냐하면 조선중앙통신사는 북한 주민 들이 알면 불법이 될 정도로 순수 외부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선중앙통신사의 대외성 기사들은 북한 언론답지 않게 신속하거나 독점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그 대외성과 정론성의 역학관계 속에 바로 교활한 정권심리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 완충역할이나 선동을 하는 것이 조선중앙텔레비전총국의 정서성입니다. 북한의 가요들은 모두 정책가요로서 주제별 가사의 구속을 받기 때문에 가능한 정서전략인 것입니다. 조선중앙텔레비전총국은 정권의 정책적 목적과 인내심, 의도에 맞게 반미주제, 사회주의주제, 선군주제, 전쟁주제, 계급투쟁주제, 등의 분야별 주제를 시기별로 나누어 주민들에게 주입시킬 국가 정서를 조작합니다. 때문에 속보를 제외한 3대 언론의 모든 프로그램은 일주일 전에 미리 짜여집니다, 그 다음 당조직부를 통해 최고지도자의 결제를 받아 선전선동부가 주도적으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제도는 북한 정권이 변하지 않는 한 절대 바뀔 수가 없습니다. 바뀌는 순간 체제 유지의 혼란은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3대 세습은 무엇이든 3대 상습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김정은 정권이 무엇을 생각하고 또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사실상 3대 언론의 기능별 행위에서 잘 표출되고 있습니다.

북한 3대 언론 프로그램 목록의 제목을 주 별, 월별로 쭉 펼쳐놓고 비교 대조해보면 정론성과 대외성, 정서성의 역학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일체감이나 분리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 진행 과정 속에서 구체성, 반복성, 호소성, 상대성의 기법들이 추구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는 대외성과 대내성의 좌우 어느 쪽으로 무게가 더 기울어지는가에 따라 정책적 방향도 결정됩니다. 세상에 그 어떤 치밀함도 자연스러운 것보다 자신감 있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북한 독재의 언론은 차단하기 위해, 거짓말하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온갖 술수를 쓰지만 오히려 그 왜곡의 기술이 스스로를 폭로하는 고발의 창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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