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중앙당 재정경리부 부장이었던 리봉수 부장의 실각 사건

장진성∙탈북 작가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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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_convention_nk-305.jpg 지난 9월 8일에 열린 북한 창건 64주년 경축 중앙보고대회.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2011년 9월 중앙당 재정경리부 3호 청사 담당 부원이 탈북했습니다. 그는 탈북자 인터넷 신문인 뉴포커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신분을 처음으로 공개했고, 최근 북한의 권력변화에 대해 많은 증언을 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그의 여러 증언 중 중앙당 재정경리부 부장이었던 리봉수 부장의 실각 사건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중앙당 재정경리부는 김일성 정권 때에는 사실상 북한의 최대 재정권력 기관이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당 조직부를 맡아보면서부터 김일성 신격화 차원에서 주석궁을 담당하는 만수대의사당 관리국이 새로 신설되고, 이후 당 조직부 2과 소속으로 호위사령부 안에 의례국이 생기면서 중앙당 재정경리부는 명칭 그대로 중앙 기관들과 직원들만을 위한 제3위의 재정조직으로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앙당 재정 경리부는 비밀스러운 김일성, 김정일 관련 재정업무와 달리 북한의 합법적 재정기구로서는 최고의 권력 기관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조직의 부장 이라면 김정일의 오른팔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리봉수 사건이 터진 것은 2008년경입니다. 당시 북한에서는 중앙당을 축소하라는 김정일의 지시로 중앙당 개편에 돌입했습니다. 사실 중앙당 축소문제는 김일성 때부터 제기됐던 사안입니다. 1992년경 김일성은 자기는 고작 200명의 중앙당 직원들을 갖고 북한을 이끌었다며 현재 2만명이나 되는 중앙당 직원들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고 공개 비난 했었습니다.

김일성의 그 교시 내용이 일반에 알려지며 중앙당 직원 숫자가 2만이라는 사실도 처음으로 대외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은 중앙당 축소는 곧 자기 권력의 축소로 생각했기 때문에 김일성의 지시를 대외에 유출시킨 관계자들을 색출하여 엄벌에 처하면서까지 2만이라는 숫자를 굳건히 지켜왔었습니다. 그런 김정일도 중앙당이 비효율적으로 커졌고 또 그 부작용에 피로감을 느꼈었던가 봅니다. 하여 2007년부터 중앙당 매 부서들의 권능과 실용적 업무실태를 검토하는 작업에 돌입했고, 이후 많은 사람들의 직제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듯 중앙당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상임위원회와 내각, 그리고 각 중앙기관들에 배치 되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꺼번에 너무 많은 간부들이 중앙당에서 나가게 되자 우대공급의 박탈은 물론 중앙당 사택을 비워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중앙당 재정 경리부에서는 리봉수 부장의 지시라며 중앙당 사택에서 그들을 무자비하게 내쫓았고, 졸지에 집을 잃은 전직 중앙당 간부들은 배치된 기관 사무실들에 가산을 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중앙당 전직 간부들의 반감은 거세졌고, 마침내 중앙당에서 나온 9명의 사람들이 2007년 11월경 김정일에게 항의 신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과오를 범해 중앙당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국가조치에 의해 직장 이동된 것인데 한겨울에 집을 몰수하는 것은 과도한 처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요구는 새집이 해결될 때까지 중앙당 사택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집을 몰수 하도록 지시한 재정경리 부장은 정작 자기의 아들과 딸은 중앙당에서 근무하지 않는데도 중앙당 집을 쓰고 살며 중앙당 정치국 위원들처럼 매일 식료품을 공급하는 1일공급 특혜를 주었다는 등 중앙당 재정경리부가 부정 비리 행위가 많다는 항의 신소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정일은 거꾸로 신소편지를 쓰는데 가담한 9명의 사람들을 종파주의자들 이라고 하면서 온가족과 함께 관리소로 보내도록 했습니다. 김정일이 화난 것은 중앙당 전직 간부들이 쿠데타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집단항의 행동을 보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9명에 대한 처리 후 중앙당 직원들 내 에서까지 불만 여론이 확산되자 김정일은 당 조직부가 좀 알아보라는 단순 지시를 하게 됩니다. 하여 2008년 1월부터 중앙당 재정경리부는 당 조직부의 집중 검열을 받게 되는데 리봉수 부장의 문제는 비단 자녀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재정 경리부가 당 자금을 마련한다고 하면서 21개의 외화벌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만큼 비리도 컸습니다. 김정일은 중앙당을 팔아 자기이익을 챙겼다며 재정 경리부장 리봉수를 출당 철직시켜 함경북도 김책시 농장원으로 추방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재정경리부 외화벌이 담당 15과 담당 부부장 김형을 제외한 부부장들과 과장급이상, 이렇게 재정경리부 간부 80%를 해임시켜 버렸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중앙당 재정 경리부 1국 담당1부부장이었던 리수복을 비롯한 3호청사 담당 재정경리부 간부들도 모두 해임시켰습니다. 그 중 안창항 부부장은 딸이 김정은 저택 피아노 교사라는 이유로 완전 해임 명단에서 제외시켜 재정 경리부 89과과장으로 강등 조종했습니다. 중앙당 재정경리부 집중 검열이 끝나자 김정일은 당 재정을 관리하는 재정경리부 부장을 이제부터 자기가 직접 겸직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하여 김정일은 사망 전까지 국가보위부, 통일전선부, 당 조직부에 이어 당 재정경리부 부장까지 겸직하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의 처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중앙당 재정경리부 운수과장이 김책지방으로 출장을 갔다가 그래도 한때는 상급이었던 리봉수에게 찾아가 위로를 해주고 올라 온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보고 받은 김정일은 그것이야말로 가족주의이고, 끼리끼리하는 종파행위라며 운수 과장과 그 가족, 그리고 리봉수 부장 일가까지 정치범 수용소로 수감시키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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