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실체] 북한 유명작가 리진우의 비참한 최후

장진성∙탈북 작가
2011.11.22
nk_film_for_country-305.jpg 조선중앙텔레비젼이 방영한 기록영화 '조국광복을 위하여'의 한 장면. 김일성이 6.25 전쟁에서 10대의 혁명가 유자녀들로 '친위중대'를 조직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탈북자 장진성 씨가 전하는 김 씨 일가의 실체, 노동당 통일 전선부 대남 정책과 연락소 부원이었고 김정일을 두 차례나 접견한 일급작가 이었던 장진성 씨가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60년 독재 체제와 현대판 봉건 세습에 대한 진실과 배경을 밝힙니다.

오늘은 북한의 유명작가 리진우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리진우는 북한 영화 “이름 없는 영웅들”의 시나리오 작가입니다. 6.25전쟁 시기 김일성 정권에 충성했던 북한 간첩들을 다룬 “이름 없는 영웅들”은 실화가 아닙니다. 김일성이 구소련 정탐영화 “17일 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를 보고 감탄하자 김정일의 지시로 만들어진 허구입니다. 처음에는 10부작으로 완성됐었는데 이후 김정일이 10부를 더 늘리라고 하여 총 20부작이 되었습니다. “이름 없는 영웅들”이 북한 주민들에게 인기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른 영화들과 달리 남한을 배경으로 한 영화여서 이념적 강요에서 조금 자유로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한국인 출신 영국기자로 활약하는 주인공을 그리다 나니 북한 주민들이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외국문화를 접할 수 있어서였습니다. 이를테면 외국영화 같은 북한 영화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더구나 영화에서 외국인 연기를 맡은 배우들도 실제로 북한 내 거주 하는 외국인들이어서 그 실감이 더 클 수 있었습니다. “이름 없는 영웅들” 에서 미군장성 아서 역을 맡은 인물이 6.25 전쟁 때 월북했던 미군 병사 젠킨슨입니다. 그는 몇 년 전 일본인 처와 함께 일본으로 돌아가 북한을 지옥으로 비판하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북한 영화계에서는 “이름 없는 영웅들”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영화를 만든 연출가 류호손, 작가 리진우. 그 두 사람이 모두 소련에서 공부한 유학파 출신들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말입니다. 말하자면 김정일의 주체적 문예이론의 구속을 덜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류호손과 리진우는 “이름 없는 영웅들”이 끝난 후 자신감과 명예를 바탕으로 북한 영화계에서 구소련 식 사실주의 문학을 시도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사실주의 문학이란 삼각연애, 긍정보다 부정이 많은 부정인물형상, 주인공의 성격발전 과정에 있을 수 있는 인간적 나약함과 실수 등 정치화된 전형인물이 아니라 인간의 전형 창조였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당 선전 법규로 정한 주체문예이론은 인간 창조가 아니라 충신창조가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삼각연애는 타락한 자본주의 문화이고, 부정인물에 대해서는 작은 동정도 유발되지 않도록 부정적인 면 만 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 영화의 주인공은 인간전형이 아니라 충신전형으로 만들어야 함으로 실패 앞에선 더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러한 제약들에 대한 극복이 없이는 영화의 혁명이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류호손과 리진우는 주체문예이론에 대한 반발은 곧 당의 도전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체문예이론의 요구들은 일반 현실이 아니라 수령형상 문학에서 구현되어야 수령과 개인과의 차별성도 부각시키고 문학적 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제일 먼저 경고하고 나선 인물이 현재 중앙당 선전부부장으로 일하는 최익규 입니다. 최익규는 1970년대 김정일의 업적 으로 선전되는 5대 혁명가극의 감독으로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김정일이 지도했다는 영화 “유격대 오형제”의 감독도 역시 최익규입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최익규는 김정일의 이론적 영도체계를 세운다며 주체문예이론 집필진을 만들고 지휘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 모든 공로로 최익규는 김정일의 권력 장악과 함께 출세일로를 걸었고, 중앙당 영화담당 과장, 부부장을 거쳐 김일성 사후에는 중앙당 선전 선동 부 제1부부장이 되었습니다. 류호손과 리진우의 도전은 최익규의 선전부분 지위를 부정하는 시도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격화 차원에서 조작한 이른바 김정일 주체문예이론을 부정하는 것이나 같았습니다. 이에 격분한 김정일은 제일 먼저 영화감독 류호손의 감독권한을 박탈시키고 지방으로 추방 시킵니다. 죄명은 북한 문예계에 자본주의 황색문화를 끌어들이려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명 영화감독으로 명성을 얻던 인물이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 거짓을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류호손의 부인이 바로 김정일의 지시로 공개 처형된 미녀 영화배우 우인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인희는 여러 남자들과 복잡한 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총살됐지만 사실 김정일과의 은밀한 관계를 발언한 것이 문제가 되어 그런 비극을 당했습니다. 가정 혁명화의 책임을 용서했는데 아직도 본인혁명화조차 제대로 안 됐다며 류호손을 농촌으로 보내자 리진우는 그 위에 김정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최익규의 음모라며 공개 반발합니다.

당시 대부분 북한 아이들의 꿈은 리진우처럼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리진우는 유명 정탐 영화의 작가이고 4.25인민군영화촬영소 대좌 군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 군인들의 우상이었습니다. 그만큼 영화의 인기와 함께 리진우의 명예도 컸기 때문에 그동안 최익규의 독선과 주체문예이론에 불만이 많던 작가들도 동조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리진우는 류호손 구명을 위해 문예계 여론을 모으는 것과 동시에 군 수뇌부까지 설득시킵니다. 이에 북한군의 최고 정치책임자인 총 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 리봉원을 비롯한 군 핵심 수뇌가 넘어간 것은 리진우가 민간과 군으로 갈라진 선전영역 환경을 이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북한 영화제작기지는 두 개로서 민간은 조선예술영화 촬영소, 군은 4.25인민군영화촬영소인데 리진우는 최익규의 전횡이 단순히 문예이론의 갈등과 대립이 아니라 군부 영화촬영소에 대한 압박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리봉원은 군 정치책임자로서 노골적으로 최익규를 협박하다 못해, 군 명의로 된 신소를 당조직부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일을 화나게 한 것은 무식한 군부의 처사와 여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낸 리진우의 대단한 인기와 도전이었습니다. 김정일은 만약 리진우를 일반혐의로 해임시키게 된다면 사회적인 충격과 여파가 당선전선동부를 위협할 수준임을 직감하게 되었습니다. 하여 단순혐의가 아니라 정치혐의로 리진우를 없애기 위해 동구권 유학생 숙청사건을 주도하던 보위사령관 원응희를 내세우게 됩니다. 그로부터 한 달 후 리진우는 구소련 KGB와 안기부에 매수된 이중간첩으로 체포됩니다. 리진우는 예심과정에 결백을 주장하며 항의했지만 수용소에 갇히게 되자 자살을 합니다. 6개월 후에는 그를 비호 두둔했던 총 정치국 조직담당 부국장 리봉원도 역시 이중간첩으로 체포됩니다. “이름 없는 영웅들” 그 영화의 제목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싶습니다. 북한에서 자기 명을 다 살지 못하고 간 이름 없는 충신들의 숫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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