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종교- 조선불교도연맹

김주원∙ 탈북자
2019-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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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과 조선불교도연맹(조불련)이 2015년 10월 15일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 앞에서 낙성 8주년 기념 조국통일 기원 남북 불교도 합동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과 조선불교도연맹(조불련)이 2015년 10월 15일 금강산 신계사 대웅보전 앞에서 낙성 8주년 기념 조국통일 기원 남북 불교도 합동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북녘 동포 여러분! 지난 시간에 북한의 기독교와 천주교에 대해 여러 시간에 걸쳐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시간에는 북한의 불교를 상징하는 조선불교도연맹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북한당국은 광복 후에 공산이데올로기인 맑스레닌주의(마르크스-레닌주의)를 유일한 사상으로 규정하고 반봉건, 반자본주의사상을 배척한다는 미명하에 종교이념마저 묵살해버렸습니다. 광복 후 1946년 3월 토지개혁을 강행하면서 북한당국은 절간(사찰寺刹)들을 국가소유로 만들면서 중(스님)들이 소요하고 있던 토지마저 모조리 압수하여 국가소유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경제적 기반이 하루아침에 허물어진 사찰들은 폐쇄되었고 불교 이념은 기독교 이념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탄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김일성이 조선반도(한반도)의 공산주의화를 목적으로 일으켰던 6.25남침전쟁으로 남아있던 절간들도 거의 다 파괴되었고 60년대 중반까지 소련파, 국내파 등 반대파 제거를 위한 종파숙청시기에 종교인들마저 정치범으로 취급되어 처형되었습니다.

‘조선불교도련맹’은 1945년에 창립했다가 폐쇄했던 북조선불교도련맹 명칭을 개명한 것입니다. 북한당국은 1945년에 창립된 이 연맹이 1955년에 조선불교도련맹으로 개칭되어 지속적인 활동을 하였다고 하지만 사실은 1972년에 대외 선전용 종교조직인 ‘조선불교도연맹 중앙위원회’가 발족되면서 활동이 재개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50년에 발행된 북한의 [조선중앙연감]에 기록된 자료를 보면 당시까지만 해도 북조선불교총연맹에 가입한 불교 신도가 37만 5,438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북한에 등록하지 않은 불교 신도가 500여만 명 정도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1950년 6월 남침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북한에는 500여\ 사찰이 있었으나 전쟁으로 대다수의 절간들이 파괴되었고 복원이 가능한 사찰은 묘향산의 보현사, 양강도 갑산의 중흥사, 구월산의 월정사, 사리원의 성불사, 평성 봉린산의 안국사 등 수십여 개 뿐이었습니다. 절간들만 무너진 것이 아닙니다. 북한정권에 협조했던 종교지도자들은 연합군과 반공주의자들에 의해 살해되었고 반대로 반공이념을 가진 종교지도자들은 남한으로 내려왔거나 북한군에 의해 체포되어 살해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많은 불교도신자들은 처형과 숙청을 피하여 마음속으로만 부처님을 숭배하면서 집에서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서 인민군에 강제 징집되기를 바라지 않는 청년들이 절간들에 숨었습니다. 북한당국의 절간(사찰)들에 대한 감시와 탄압이 심해졌습니다. 전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은 법도를 거르는 일이라며 반대의사를 표시하는 불교 신도들은 북한당국에 의해 무참히 학살되었습니다. 북한당국의 강요로 불교신앙협회, 불교청년사, 여성불교도회 등 여러 불교단체들이 연합회를 열었고 1,300여 명의 불교신자들이 강제로 인민자위대에 징집되기도 하였습니다.

전후에 북한당국은 불교신도들도 다른 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반동분자로 취급하였습니다. 사회생활에서 자유를 박탈하였고 대학에 진학하여도 장학금을 주지 않았으며 노동당에 가입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노동당이 되어야 간부가 될 수 있는 북한의 사회시스템에서 배제되었던 것입니다.

1950년대에 이어 1960년대까지 불교에 대한 탄압은 계속되었으며 결국 1965년에는 북조선불교도연맹 해체를 통하여 불교는 비법화되었고 불교신도들의 조직체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북한당국은 1970년대에 들어와서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을 내세워 종교이념을 비롯한 다른 사상이념들에 대해 용납하지 않으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는 여러 가지 기만적인 제안들을 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1972년 7월 4일에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합의한 조국통일 3대원칙에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 제정한 ‘사회주의 헌법’에도 “공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고 명시하면서 마치나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대외에 선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북한당국은 1983년 4월에 평양에서 열린 조선불교도련맹 제8차대회에서 기존에 불교도연맹이 제정한 강령과 규약을 현실발전의 요구에 맞게 개정하였다면서 “발고여락(拔苦與樂)을 기본이념으로 삼고 현세에 지상정토(地上淨土)건설을 기본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여기서 발고여락은 자비로써 중생의 괴로움을 없애 주고 즐거움을 주는 일을 행한다는 뜻이고 지상정토는 현실세계에 있는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을 건설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이 강령과 규약실현의 목적이 사회주의제도를 옹호고수하고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고 다른 나라의 불교도 조직들과의 친선협조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노골적으로 강조하였습니다. 결국 조선불교도연맹이 철두철미 조선노동당을 위해 복종하는 정치조직임을 드러냈던 것입니다.

김정일의 지시로 1985년 12월 25일에 열린 조선불교도련맹 제8차대회에서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회 박태호 위원장은 대회에 앞서 보고문을 발표하였습니다. 당시 노동신문에 실린 그의 보고내용에는 “조선불교도연맹 앞에 나서고 있는 중요과업은 련맹 각급 조직과 신도들이 공화국북반부에서의 사회주의 완전승리를 촉진하며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 참가하며 세계 모든 나라 불교도들과의 친선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조선불교도연맹의 중요과업이 조선노동당 규약의 서문에 있는 내용과 너무도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동당원이나 불교도인이 해야 할 임무, 중요과업이 같다는 것은 종교인은 정치적인 조직에 가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을 내세우고 있는 대한민국이나 다른 나라의 실정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불교도연맹은 철저히 조선노동당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조직, 수족(手足)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은 이 연맹의 간부들이 1981년 7월에 노동당의 지시로 조선불교도연맹 참관단을 구성하여 인도, 스리랑카, 타이(태국), 미얀마(미얀마)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방문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시 방문목적이 불교성지들과 절간(사찰)들을 둘러보며 불교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대외에 북한도 종교의 자유가 있어 불교도인들이 자유롭게 종교활동을 할 수 있다는 거짓 선전을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북한당국은 1990년 7월과 1991년 11월에도 조선불교도연맹 대표단이 대승불교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베이징, 상해, 소주, 복주, 하문 등 중국의 여러 절간(사찰)들과 불교유적들을 방문하도록 하였습니다.

조선불교도연맹이 대외선전용 기구라는 것은 김일성의 저서로 잘 알려진 북한도서 ‘사회주의 문학예술론’ 내용을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김일성은 “불상조각 같은 것도 지난날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숭배하던 우상의 하나라는 것을 똑똑히 인식시키는 한편 불상조각 자체는 잘된 조각품이라는 것을 새로 자라나는 새세대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새 세대들이 부처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게 하는 것보다 부처라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여 그 허위성을 똑똑히 깨닫도록 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북한당국은 1973년에 조선사회과학출판사에서 출간한 도서를 통해 “불교는 봉건시기에 침습하여 봉건지배계급의 사상적 도구로 리용되면서 계급의식과 투쟁의식을 마비시키는 해독을 끼쳤는데 북조선에서는 이미 없어졌으나 남조선에서는 계속 남아있으면서 인민들의 혁명의식을 마비시키는데 적지 않은 해독적 작용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만 봐도 지금의 조선불교도연맹의 허위성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다음시간에는 1980년대 이후 북한정권이 한국의 불교단체들을 통하여 경제적인 지원을 꾀했던 사실과 그 실체들에 대해 얘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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