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종교-한국 불교단체의 지원

김주원∙ 탈북자
2019-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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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3일 대한불교천태종과 조선불교도연맹이 개성 영통사 보광원 앞에서 '영통사 복원 10주년 기념 조국통일 기원 남북 불교도 합동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법회에는 120명(남측 70명, 북측 50명)이 참가했다.
2015년 11월 3일 대한불교천태종과 조선불교도연맹이 개성 영통사 보광원 앞에서 '영통사 복원 10주년 기념 조국통일 기원 남북 불교도 합동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법회에는 120명(남측 70명, 북측 50명)이 참가했다.
사진 - 연합뉴스

북녘 동포 여러분!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것처럼 북한당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며 그 증거로 조선불교도연맹을 통하여 북한 내 60여개의 절간(사찰) 300여 명의 중(스님)들이 항상 상주하고 있으며 1만여 명의 불교신도들이 자유롭게 절을 찾아가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의 주장과는 달리 북한의 스님들은 노동당에서 김일성종합대학 종교학과와 신학교들에서 체계적으로 양성한 대외선전일군들이며 노동당원들입니다.

오늘은 북한당국이 조선불교도연맹을 내세워 대한민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 지원을 받았던 실태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북한당국은 처음에는 절간보수작업이나 재건축을 위해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북한의 절들은 국가 소유인데다가 관리도 내각의 산하조직인 문화보존총국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나 다른 나라들은 절간과 그 주변의 토지, 지어 산들도 해당 불교단체의 소유이지만 북한에서는 토지개혁을 하면서 절간과 그 주변의 토지를 몰수하여 국가소유로 만들다 보니 국가가 관리하는 체계로 만들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외부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조선불교도연맹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당국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절간과 성벽 등 민족문화유산 보존관리문제를 애국주의 발현이라고 칭하면서 1992 12월 최고인민회의 제9 6차 회의에서 ‘민족문화유산을 옳게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사업을 더욱 강화하는데 대하여’라는 의제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1994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화유물보호법’을 제정·공포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복원된 문화유적들로는 동명왕릉, 단군릉, 왕건왕릉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 이조봉건시대(조선시대)에 세종대왕에 의해 편찬된 인문지리도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북한지역의 절간(사찰) 수는 561곳이지만 현재는 59곳만 남아있습니다.

남한의 불교단체가 북한의 절간복원을 도와준 첫 사례는 금강산 신계사복원사업입니다. 금강산의 외금강 온정리에서 옥류동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신계사는 1951 6·25남침전쟁으로 건물이 모두 불에 타 없어지고 3층석탑만 남아 있었습니다. 2004 11월에 남한의 불교단체인 대한불교조계종과 현대아산 주식회사가 신계사 복원을 시작하여 2007 10월에 복원이 완료되었습니다. 2004 6월 남한의 대한불교조계종이 금강산 신계사 복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고 대웅전 복원 및 낙성식을 진행하였습니다. 신계사 복원사업의 도감으로 제정스님을 파견하여 북한에 최초로 남한의 스님이 상주하게 되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스님이라는 호칭이 생소하겠지만 이는 북한에서 말하는 중을 남한에서 부르는 호칭입니다. 남한의 불교단체의 지원과 현대아산의 지원으로 2005년에 만세루와 산신각, 최승전이 복원되었고 2006년에는 극락전, 축성전, 칠성각, 나한전, 종각, 어실각이, 2007년에는 수승전, 수각 등이 복원되어 그해 10 13일에 남북 합동 준공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남한의 불교단체들의 지원으로 사찰의 단청작업도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남북한 단청문화교류의 첫 행사로 2003 7 29일에 금강산 온정각에 위치한 김정숙휴양소에서 남북 단청문화 전시회 및 학술토론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이 행사는 남한의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와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회가 공동주최하고 남한 대표단 25, 북한 대표단 2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남북공동 시범단청 공동작업은 2003 8 5일부터 8 19일까지 평양 법운암 대웅전에서 진행되었는데 참석한 기술자들로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3호 단청장인 김준웅, 한국문화재청 단청기술자 박영석, 북한 문화보존총국 부국장 리의하, 문화보존총국 조선문화보존사 연구사 변룡문 등 남북의 전문가들이 참가하여 남북의 단청기술을 교류하였습니다. 북한의 신포지구 경수로발전소 건설을 진행하면서 2002년에 금호지구 불교사찰 복원에 지원한 돈이 한국돈으로 1천만원, 1만달러에 달했으며 2003년에 단청안료와 재료로 지원한 15톤에 해당한 지원금은 약 3억원, 30만달러였습니다. 2004년에도 2차례에 걸쳐 단청안료 25톤을 지원하였고 2005년과 2006년에도 단청안료와 백색페인트를 지원하였습니다.

북한당국이 2000년대에 들어와서 노동당의 민족문화유적 보존사업성과로 대대적으로 선전한 불교사찰들에 대한 복원사업이 결국 대한민국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지만 북한주민들은 이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남한 불교단체들의 지원은 절간이나 문화유적 복원에만 그친 것이 아닙니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리고 있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인도주의 지원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으며 이 지원금액은 천문학적 숫자에 달합니다. 고난의 행군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1995년 대홍수가 국제사회에 피해심각성이 알려지면서 한국의 불교단체인 조계종은 ‘북한수재민돕기 모금본부’를 설립하였고 그해 10 20일에는 6개 종단의 연대기구로 ‘범종단 북한수재민돕기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습니다. ‘북한동포돕기 옥수수 10만톤 보내기 범국민캠페인’이 추진되어 1997 1월에 북한동포돕기 기금 5,000만원을 대한적십자사에 전달하였습니다. 1997년에는 옥수수 2천톤이 중국 도문을 거쳐 조선불교도련맹에 지정 기탁되었고 한국 돈으로 3억원, 달러로 약 30만 달러에 해당하는 의약품과 분유도 지원되었습니다.

남한의 불교단체들은 1998년에는 북한에서 병으로 앓고 있는 환자들과 어린이들의 병치료를 위해 의약품 지원으로 약 5만 달러를 지원하였고 밀가루 250톤을 인천항에서 남포항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옥수수 천 톤을 살 수 있는 2 7천만원, 25만달러의 돈을 중국 대련항을 통해 조선불교도연맹에 지정기탁하였습니다.

1999년에는 추위에 떨고 있는 북한주민들을 도와 대형짐함(컨테이너) 3대에 겨율용품을 보냈는데 금액으로 따지면 10만달러에 해당하였습니다. 노동당의 배려보다 남한의 불교도 신자들이 보낸 지원물자들이 따스한 동포애가 스민 채 북한에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주민들이 남한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것이 두려워 이러한 사실들을 속였습니다.

1990년대에 이어 2000년대에도 한국 불교단체들과 불교신자들의 사랑의 손길은 계속되었습니다. 2000년에는 승용차 300대를 살 수 있는 돈을 조선불교도연맹에 전달하였고 그 외에도 식용유 300, 의류 약 5 5백여점, 비료 430, 겨울외투 524, 내의, 신발, 이불, 담요 등 약 1 8천만원, 달러로 약 16만달러에 해당하는 인도주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001년에는 1.8리터짜리 식용유 6480, 밀가루 17, 겨울외투 1575벌 등 5개의 대형짐함에 지원물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2002년에는 윤이상 음악연구소에 타악기 173점을 지원했는데 이것은 10만달러를 넘었습니다.

2000년대에 이어 2010년에도 지속적으로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해마다 옥수수와 밀가루, 식용유 등 식품들이 지원되고 있으며 의약품, 담요, 이불, 외투, 비닐온실에 사용되는 비닐박막, 생활용품들이 동포애의 사랑을 품고 북한에 전달되고 있습니다.

인도주의는 정치나 이념, 인종, 종교 등을 떠나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그들의 복리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행위이며 대북지원은 북한 주민이 직면하고 있는 생존권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입니다. 북한당국은 동포애의 사랑이 담긴 인도주의 지원물자들에 대한 공개가 체제수호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고 숨기려고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고마워해야 할 것이며 간부들만 배를 채울 것이 아니라 일반 주민들에게도 제공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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