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사랑을 받았던 조청미

김주원∙ 탈북자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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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사랑을 받았던 조청미 평양대극장에서 피바다가극단이 공연하는 모습.
연합

북녘 동포 여러분, 북한에는 일본에서 태어나 귀국한 재포들 중에 문화예술계에서 잘 알려진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선 김정은의 엄마인 고영희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1961년에 부모들을 따라 귀국하여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로 활동한 재포출신 배우였죠.

그리고 국립교향악단 지휘자인 김병화 씨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1960년에 귀국하여 평양음악무용대학 작곡학부 지휘과에 입학해 1969년에 국립교향악단 지휘자로 활동한 재포출신 예술인입니다.

오늘 방송에 소개할 피바다가극단 독창가수인 조청미 씨 역시 1957년에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나 16살 나던 해인 1973년에 귀국한 재포출신 배우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 경상도에 살다가 일본에 가서 탄광노동자로 일했던 조청미의 아버지 조봉대는총련상공회 초대회장을 지냈던 총련간부였습니다.아버지 조봉대와 어머니 진영래 사이의 7남매 중 3녀로 태어난 조청미는 규슈(九州)에 있는 조선학교에서 성악소조와 피아노소조, 발레춤소조, 휘겨소조 등에서 재능을 보여주던 소녀였습니다.

북한당국은 1973 7 30일에 일본에 만수대예술단을 파견했고 8 2일부터 9 7일까지 한 달이 넘게 도쿄와 나고야, 오사카, 교토 등 7개의 도시들을 순회하면서 41회의 공연을 하였습니다. 당시 예술에 소질이 있었던 소녀 조청미는 만수대예술단의 공연을 무려 5번이나 관람하면서 감동하였고 무작정 예술단 일행을 따라 귀국하려고 항구도시인 시노모세키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당시 만수대예술단이 일본에서 한 공연종목으로는 합창수령님의 만수무강 축원합니다’ ‘번영하라 조국이여’, 여성중창수령님 높은 뜻 붉게 피였네’ ‘어버이 수령님 고맙습니다’ ‘행복한 내 나라’ ‘수령님은 인민들과 함께 계시네’, 여성2중창조선팔경가’ ‘수령님 모신영예 끝없습니다등이었습니다.

이 공연을 본 소녀 조청미는 북한에 가서 평양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하고 만수대예술단 배우가 되려는 꿈을 가지게 되었고 당시 총련 후쿠오카 상공회 회장이었던 아버지와 여맹간부였던 어머니를 설득해 귀국을 허락받았죠.

169차 귀국선으로 북한에 간 조청미 씨는 평양음악무용대학 예비과를 거쳐 1973 10월에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는 대동강변에 자리 잡은 총련간부 자녀 합숙에서 숙식하면서 열심히 공부하였고 음악적 기질을 높여나갔습니다. 당시 조청미의 지도교원으로는 대한민국의 이화여자대학교 출신의 월북 성악가인 조경 선생과 강시종, 왕혜숙 교수였다고 합니다.

6년간의 대학과정을 거쳐 1979년 최우등생으로 졸업을 한 조청미 씨는 1980년에피바다가극단에 입단했죠. 그리고 1971 7월부터 혁명가극피바다공연이 시작되어 어머니역을 하였던 북한 최고의 성악배우 김기원 씨에 이어 1983 3월부터 는 조청미가피바다가극의 주인공인 을남 어머니 역을 하면서 북한에서도 인기가 상승되었습니다.

평양음악무용대학 연구원(대한민국 대학원 해당)을 다니면서 자신의 성악실력을 쌓아가던 조청미 씨는 1987, 프랑스에서 진행된 툴루즈 국제성악콩쿨(Toulouse International singing competition)에 참가해 수상을 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33차 툴루즈국제성악콩쿨 평가기준은 칸타타, 오페라 아리아, 프랑스 노래 등을 겨루는 것이었고 26개국에서 105명이 참가해 3차에 걸친 공연 결과로 순위가 결정되었습니다. 그는 이 콩쿨에서 소련과 캐나다 배우에 이어 3위로 입상을 했고 특별상까지 수상하면서 북한주민들에게도국제콩쿨수상자라는 이름이 붙어다니게 되었죠.

20살에 국제콩쿨 수상자 반열에 오른 조청미 씨는 같은 해인 1987 12월에는 공훈배우 칭호를, 1997 11월에는 인민배우 칭호를 수여받았고 김정일의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김정일은 1990 6월 보천보전자악단 예술인 독창회 공연을 관람하면서 여기에 참석한 조청미에게서 잠시도 눈길을 떼지 못하였고 문학예술분야 일꾼들에게 조청미의 독창회를 열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일의 지시로 1990 12 3일에 북한에서는 처음으로 조청미 독창회가 열렸고 이 조청미 독창회에 참석한 김정일은빛나라 정일봉을 부른 녀성독창가수 조청미가 노래를 참 잘한다, “노래를 중음으로 색깔 있게 잘 형상했다고 칭찬하였고, 1991 6월 두 번째 독창회, 1993 10월 세 번째 독창회까지 개최하게 되면서 조청미는 북한주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습니다.

김정은의 엄마인 고영희는 김정일에게 졸라서 김정은 형제들을 데리고 자기가 살았던 일본을 갔다 왔지만 조청미 배우는 북한에 귀국하여 13년만인 1990 9월에 국립평양예술단 단원의 한 사람으로 일본을 공식 방문하였습니다.

당시 혁명가극피바다의 주역을 맡은 그는 자기가 태어난 일본에서 조총련계 재일동포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거리들에는 그를 환영해재일조선인의 꽃’, ‘후쿠오카의 자랑이라는 플랜카드들이 걸려있었습니다. 당시 북한의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들에도 조청미 배우에 대해이역 땅에서 나서 자라 조국의 품에 안겨 인민의 사랑을 받는 인민배우로 성장했다고 소개하기도 했죠.

김정일은 시원시원한 조청미의 노래를 들으려고 연회석에 그를 자주 부르곤 했습니다. 조청미의 대표적인 곡으로는임진강’, ‘조선아 너를 빛내리’, ‘위대한 그 영상 영원하리’, ‘천리마선구자의 노래’, ‘축원’, ‘매봉산의 노래’, ‘그리워등이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다부작영화인민족과 운명카프작가편에서 나오는 노래아 조국아와 여러 외국노래들도 조청미 배우의 인기곡이었습니다.

김정일은 밤파티 때에도 조청미를 불러서 노래를 부르게 했고 그의 노래에 만족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김일성이 급사한 후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초대소들과 연회장에서 술을 마시면서 세월을 보내던 김정일의 마음을 달래는 데는 조청미의 감정적이고 격조 높은 노래는 큰 은을 내는 듯 싶었죠. 이에 만족했던지 김정일은 조청미에게 미국의 고급승용차인 캐딜락을 선물로 주기도 했습니다. 승용차 한 대의 가격이 6만 달러에서 최고 9만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고급승용차는 북한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고급승용차였죠.

당시 김정일의 전용요리사였던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도김정일이 1995년경부터 조청미를 자신의 연회장에 불러들어 노래를 부르게 했고 놀랍게도 고급승용차 캐딜락을 선물로 주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소문은 삽시에 피바다가극단 전체로 퍼졌고 조청미를 상대로 한 전화사기사건도 발생했습니다.

사기꾼은 조청미에게 전화로나다. 김정일이다. 갑자기 일본 엔이 필요하니 30만 엔을 만수대예술극장 정문에서 다섯 번째 소나무 아래에 놓고 돌아가라고 말했고 이 말을 곧이 믿은 조청미는 김정일의 게임놀이로 착각하고 10분 만에 일본 돈 30만 엔을 봉투에 넣어 시키는 대로 했던 것입니다. 이 일화는 지금도 북한의 간부들 속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올해로 조청미의 나이는 64살이 되었죠. 그리고 그는 현재 김원균명칭음악종합대학 성악학부 교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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