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찬양가

김주원· 탈북자
2019-07-09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노동신문에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 사진과 함께 실린 가요 '그이 없인 못살아'.
노동신문에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 사진과 함께 실린 가요 '그이 없인 못살아'.
사진-연합뉴스

북녘 동포 여러분! 북한 김씨 일가의 3대세습은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북한주민들이 외부세계를 알지 못하게 하고 그들을 찬양하는 노래만 부르도록 하면서 사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노예적인 근성으로 살아가도록 강요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설명 드린 김일성의 혁명송가와 김정일의 찬송가에 이어 현재 북한에서 강요되고 있는 김정은 찬양가 창작과 보급의 반동성과 반인민성에 대해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북한에서 1967년 박금철 부수상을 중심으로 하는 국내파 세력의 대대적인 숙청이 강행되고 나서 김일성의 유일영도체제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하고 1970년 9월에 중앙당 선전선동부 사업을 맡아보면서 김정일이 강하게 내민 사업이 북한주민들의 사상을 예속시키기 위해 벌인 ‘예술정치’입니다.

1970년대에 가요정치라고 할 정도로 많은 김일성 혁명송가들이 ‘피바다’와 ‘꽃파는 처녀’, ‘밀림아 이야기하라’ 등 혁명가극을 통해 창작보급되었습니다. 행사 때마다 서두에 부르던 애국가대신에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수령님 만수무강 축원합니다’가 불려졌고 흔히 부르던 러시아노래나 중국노래 대신 소위 ‘불멸의 혁명송가’들을 부르도록 강요하였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김정일은 후계자로서의 지위가 확고히 자리잡자 자기자신을 칭송하는 찬송가들과 충성가요들을 창작하여 부르도록 하면서 김일성 송가보다 김정일에 대한 충성가요들이 더 많이 창작되었습니다. 각종 행사 때에도 ‘김일성 장군의 노래’에 이어 ‘김정일 장군의 노래’도 함께 불러야 했고 행사마감에는 김정일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우리는 친위대, 돌격대’노래도 목청껏 불러야 했습니다. 1994년 7월에 김일성이 사망하자 김정일은 김일성 영생가요들과 함께 영원히 대를 이어 충성 다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노래들을 창작하여 부르도록 하였습니다.

고난의 행군시기에는 굶주림으로 쓰러져가는 북한주민들에게 배급 대신 충성가요를 부를 것을 강요하면서 ‘정신적인 양식’을 강조한 김정일입니다. 김정일은 1995년 1월에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꾼들과 한 담화에서 “음악은 사람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투쟁에로 고무, 추동하는 힘있는 무기”라며 음악예술의 정치적 역할을 강조하였습니다. 당시 노래 중에 ‘쪽잠에 줴기밥을 먹으면서 인민들의 안녕을 위한다’는 내용이 든 가요를 굶주린 인민들이 부르면서 죽어가는 동안에 김정일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급한 식재료들을 수입하여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자기 배만 불렸습니다. ‘벌’은 ‘죄’를 따라 갑니다. 결국 김정일은 비만성 심혈관계통질환으로 중풍에 걸려 2008년에는 운신할 수 없게 되었고 프랑스를 비롯한 선진국들에서 의사들도 불러들이고 좋은 약을 써보았지만 완치되지는 못하였습니다.

병이 조금 호전되자 김정일은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위압감이 들어 급기야 후계자문제에 대해 고심하게 되었고 세 아들 중에 막내인 김정은을 자기의 후계자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고모부인 장성택을 마구 처형하고 큰형인 김정남을 독살해 죽인 김정은의 기질은 어릴 적부터 남달랐습니다. 둘째 형인 김정철도 동생인 김정은에게 꼼짝 못하는 것을 보면서 김정일은 병세가 조금 완치된 2008년 말에 김정은을 후계자로 선택하였습니다. 김정일의 지시로 2009년 1월에 처음으로 김정은 찬양가 ‘발걸음’이 창작되어 군부대들부터 보급되었습니다.

2009년 6월경에는 북한의 모든 주민들이 조직별로 김정은 찬양가인 ‘발걸음’을 보급받고 불러야 했습니다. 김정일이 2011년 12월 17일에 사망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2012년 설날에 북한의 <조선중앙TV>에서는 처음으로 노래 ‘발걸음’을 주제로 한 ‘화면음악’이 방영되었습니다. ‘발걸음’ 노래 선율이 김정은의 업적으로 선전되고 있는 CNC(컴퓨터수치제어)기계들과 인공위성발사, 열병식대오, 땅크(탱크)와 전투기 군사훈련 등의 장면과 함께 방영된 화면 음악은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의 극치를 위한 음악정치의 한 사례입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사망하자 3년 상을 치르는 동안 그 어떤 행보도 하지 않고 은둔의 정치를 했지만 후계자 세습 과정이 짧고 지반 세력이 부실한 김정은은 김정일 3년 상이 다 끝나기를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김정은은 당선전선동부분 일꾼들에게 “문학예술은 강성국가건설에서 혁명적 진군의 나팔수, 힘있는 추동력입니다. 문학예술부문에서는 우리 혁명의 전진 속도와 들끓는 현실에 발맞추어 사상예술성이 높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시대적 명작들을 많이 창작하여야 합니다”라고 강조하였고 김정일처럼 음악정치에 몰입할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김정은의 지시로 중앙당 선전선동부는 김정은을 찬양하는 노래들을 경쟁적으로 창작보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인민이 사랑하는 우리 령도자’, ‘운명도 미래도 맡긴 분’, ‘우리는 당신밖에 모른다’, ‘혁명무력은 원수님 령도만 받든다’, ‘그이 없인 못 살아’ 등이 당시에 창작된 대표적인 김정은 찬양가들입니다.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하고 국제사회가 김정은의 인권유린행위를 규탄하고 북한주민들 내에도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자 인민의 지도자임을 나타내기 위한 찬양가요들을 창작하도록 하였습니다. 김정은은 2014년 5월 16일에 모란봉악단이 창단 2주기를 맞으며 열린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참가자들에게 ‘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주체적 문학예술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자’라는 제목의 서한을 보냈습니다.

북한주민들이 김씨만을 칭송하는 노래 대신 생활을 진실하게 반영하는 내용이 담긴 남한노래나 연변노래들을 많이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김정은은 그 근본원인이 “문예부문 지도일꾼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이 당과 수령의 문예전사로서의 영예로운 사명과 본분을 다하려는 사상적 각오와 입장이 투철하지 못한 데 있다”고 강하게 지적하였습니다. 그리고 ‘명작폭포로 당의 선군령도를 받들자!’, 이것이 현 시기 문예부문에서 들고나가야 할 전투적 구호‘라고 역설하기도 하였습니다.

문학예술창작가들의 충성 경쟁이 김정은찬양가 창작으로 이어졌고 ‘인민의 환희’, ‘인민은 부르네 친근한 그 이름’, ‘어쩌면 그리도 친근하실까’, ‘정으로 따뜻한 미소’, ‘가리라 우리의 보폭도 리상도 그이와 함께’ 등 많은 노래들이 창작되었습니다. 김정은 찬양가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가 친근함이었던 이유는 고위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으로 불안 속에 시간을 보내던 간부들과 그 가족들, 주민들에 대한 달래기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김정은은 핵과 미사일발사시험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이 심해지자 내부결속을 위해 김정은 찬양가들을 창작하여 <조선중앙TV>를 비롯한 언론매체들을 통하여 방송하였습니다. 김정은을 극찬하는 가요 ‘이 땅에 밤이 깊어갈 때’의 가사 내용인 “조국의 운명과 인민을 위해 심장을 바치는 김정은 동지, 한마음 따르며 일편단심 모시리”를 봐도 북한 당국의 내심을 잘 읽을 수 있습니다. 노래 ‘운명도 미래도 맡긴 분’에서는 ‘일편단심 충정을 다해 김정은을 따르자’고 호소하였고 노래 ‘복 받은 인민의 노래’에서는 ‘우리에겐 강하신 원수님이 계신다’고 역설하기도 하였습니다.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한다며 군인들과 군부대 가족 공연을 많이 보았다면 김정은은 국가적인 행사를 통해 행사대표들을 평양으로 초대해서 대규모 공연장에서 많은 인원이 함께 음악회를 관람했습니다. 음악정치를 통한 정신적인 통치에 관심이 많은 김정은은 모란봉악단을 화려한 무대에서만 공연할 것이 아니라 화선공연도 하도록 하였습니다. 양강도를 비롯한 각 지역으로 순회공연을 하도록 하였고 가는 곳마다 그들의 정서에 맞는 노래들과 공연복을 입고 공연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전 세계는 대한민국의 가수들이 부르는 대중음악인 케이팝(K-POP)음악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예술적인 감정과 뛰어난 음악적 재주가 대한민국에서는 마음껏 발휘되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한사람을 위한 노래만 부르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먹는 음식은 체하기 마련입니다. 북한 당국은 더 이상 북한주민들의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막지 말고 그들의 눈과 귀, 입을 마음껏 열도록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