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최고 실세들의 식당 청류관

김주원∙ 탈북자
201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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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보통강변.
평양의 보통강변.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지난 시간에 저는 권력이 있는 고위간부 자녀들을 위해 김정일 정권이 만들어 놓은 경흥관 결혼식당에 대하여 이야기해드렸습니다.

오늘은 평양냉면을 자랑하는 옥류관과 경쟁을 하면서 평양시민들 속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청류관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청류관은 보통강기슭의 체육관 옆에 1982년에 건설되었습니다.

아직 북한주민들 속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옥류관은 평양시인민위원회 봉사관리국 산하이지만 청류관은 금수산의사당경리부 산하로 지어졌습니다. 요리도 옥류관과는 달리 북한의 간부들과 돈 많은 귀족층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평양시 중구 역 동성동에 자리 잡고 있는 청류관은 김일성의 생일 70돌을 기념하여 1982년 4월 17일에 개관되었습니다. 대형 함대모양의 건물은 4층까지인데 연건평은 1만1천4백여 평방미터로 그 중 실내가 천 여 석, 야회가 6백여석입니다.

한번에 1천6백여 명이 식사를 할 수 있어 규모나 현대화 수준으로 볼 때 북한에서 큰 식당 중의 하나입니다. 1층은 청량음료실과 민족음료실, 민족당과실, 고급차실 등으로 주로 음료를 맛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꾸려졌습니다.

1층의 큰 중앙 홀은 15명 정도가 동시에 식사할 수 있는 식탁 20개가 놓여 있어 300여 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습니다. 2층과 3층에서는 청류관의 특별메뉴인 전골과 신선로, 숭어탕, 녹두지짐, 구이요리들을 맛볼 수 있습니다.

4층에는 불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식사실과 연회장들이 있는데 이 연회장들에서는 고위층 간부자녀들과 돈 많은 외교관 자녀들의 결혼식과 특권층들의 환갑과 진갑(칠순잔치)을 비롯하여 가정적인 대사들을 치를 수 있도록 설계됐습니다.

하루에 5천 여명 이상의 다양한 손님들을 받을 수 있는 청류관에는 종업원만 300여 명에 이릅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려면 돈도 있어야 하지만 반드시 금수산의사당경리부에서 발급된 예비 표부터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예비 표는 금수산의사당경리부 봉사과에서 적당한 수요에 맞게 발부해 평양시인민위원회와 대외봉사 위원회 등에 배정되는데 해당 간부들과 친인척들을 거쳐 대부분은 평양시에서 음식값의 5배 이상으로 암거래되고 있습니다.

지방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쩌다 평양을 방문해 옥류관이나 청류관에서 한번 식사를 하려면 힘 있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예비 표를 얻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주변에서 암거래되고 있는 예비 표를 비싸게 구입해야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평양에서 소위 손재주가 있다는 일부 사기꾼들이 옥류관이나 청류관의 가짜 예비표를 만들어 돈을 버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사기꾼들로 하여 암시장에서 구입한 예비표를 가지고도 식사를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합니다.

저는 금수산의사당 경리부산하 만청산 연구원에서 근무하였기에 자주 청류관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명절날이면 연구 실 별로 예비 표가 제공되었고 연구 성과가 있을 때마다 배려차원으로 청류관에서 식사를 하도록 했습니다.

해마다 송년회도 청류관에서 진행했는데 신선로를 비롯해 다양한 요리들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청류관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예비표의 가격의 음식값의 5배 이상이다 보니 1장만 팔면 그 돈으로 5명이 공짜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힘 있는 간부들이나 ‘줄이 있는’ 사람들은 예비표를 팔아 공짜로 식사를 하면서 돈도 많이 벌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북한에서 날로 더해가는 부익부 빈익빈의 이면에는 이런 내막이 숨겨져 있습니다.

1992년 2월 김정일의 생일 50돌을 맞으며 만청산연구소의 모든 연구원들이 청류관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비서가 ‘오늘은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의 배려로 그 동안 연구성과를 낸 동무들을 축하하기 위해 당에서 베풀어준 식사이니 잘 먹고 힘을 내자’고 건배제의를 하였습니다.

그날 청류관에 연구원 담당보위원도 함께 동행했는데 그가 식사 전에 할 말이 있다며 지금 ‘남조선괴뢰 대표단이 청류관에 식사하러 왔으니 개별행동을 하지 말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남조선 괴뢰들과 마주치면 피하지 말고 노동당의 정책과 사회주의 우월성을 설명하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의 연이은 붕괴에 당황한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하여 국무원(현 내각)총리인 연형묵을 내세워 1988년부터 남북고위당국자회담을 시작했습니다. 1992년까지 회담은 10차례 진행됐습니다.

남북한 사이의 ‘비핵화 공동선언’과 ‘분과위원회 구성•운영 합의서’ 등이 합의되고 ‘남북기본합의서’ 문건을 교환하였던 제6차 회담이 1992년 2월에 평양에서 진행되었는데 여기에 참석하러 온 한국의 고위대표들이 청류관에서 식사를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2층에서 식사를 하였는데 담당보위 원은 문 가까이에서 식사를 하면서 외부출입을 단속하였습니다. 화장실에 가는 사람을 따라 다니며 연구원들을 감시하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떠올라 쓴 웃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과 공화국창건기념일, 설 명절 등 4대 명절에는 명절특별봉사로 청류관은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운곡목장에서 기르는 꿩을 수 백 마리 잡아서 평양냉면에 올렸고 노루고기를 비롯한 특별요리들이 봉사됩니다.

이날에는 다른 날보다 거의 2배가 되는 예비 표가 배정됩니다. 청류관이 늘 경계하고 있는 평양 옥류 관과는 해마다 진행되는 요리경연에서 대결합니다. 옥류관의 평양냉면은 청류관을 늘 앞섰지만 신선로와 전골, 동서양의 유명한 외국요리에서는 옥류관이 청류관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청류관과 옥류관의 예비표는 돈벌이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잃고 있습니다. 달러와 일본의 엔, 중국의 위안화 등 외화가 있으면 예비표 없이도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류관 입구는 외화만 취급하는 입구가 따로 있으며 음식메뉴에 따라 외화를 결제하면 출입할 수 있습니다. 북한 관광의 중심이 평양시인 관계로 이름난 최고급 식당들 대부분은 평양에 몰려있습니다.

청류관, 옥류관 외에 청춘관, 경흥관과 해맞이식당, 해당화관 등 외국과 지방특산물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15개 정도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식당들도 예전엔 청류관과 마찬가지로 예비 표가 있어야 했습니다.

일반노동자가 한 달 일해서 받은 생활비로는 온 가족이 한번 가서 식사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이런 음식점들도 돈과 권세가 있는 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출입하며 고급요리들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지금 평양에서 1달러가 북한 돈 7천 원 이상인데 일반노동자의 월급은 북한 돈 3천 원 정도입니다. 김정은 시대 들어 빈부 격차가 더욱 심해져 일반 주민들은 고급식당들에서의 식사를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같으면 일반 노동자도 아무 때나 청류관 수준보다 더 고급인 음식들을 가족들과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일반 노동자들도 수요에 따라 근심걱정 없이 고급음식들을 즐길 수 있는 사회, 큰 돈 안 들이고도 한국음식은 물론 세계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한국사회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당국에서 늘 말하던 인민들을 위한 사회주의는 어디로 가고 권세 높고 돈 많은 특권층들을 위한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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