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숨겨진 고향집

김주원∙ 탈북자
202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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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u_bd_calendar_b 2020년 북한 달력에 김정은생일(1.8)이 공휴일로 표기되지 않았다.
/RFA Photo

북녘 동포 여러분, 올해도 1월 8일, 김정은의 생일에 북한당국은 그의 고향이 어딘지 공개하지 못한 채 조용히 지냈습니다. 달력에도 여전히 김정은의 생일과 고향에 대해 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젠 일반주민들도 김정은의 생일이 1월 8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가 몇 년도생인지, 고향이 어디인지는 딱히 모르고 있으며 이에 대해 친구들이나 가족끼리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김정일이 2011년 12월 17일 사망하고 3일이 지난 12월 20일 노동신문에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와 백두산에서 잉태되시였다’는 황당한 내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2년에 들어서면서 북한당국은 만경대 고향집과 백두밀영 고향집에 대한 교양을 강화할 데 대한 지시를 당조직들에 포치했습니다. 당시 북한에서 당일군을 하였던 한 탈북민은 이런 지시가 하달되면서 간부들 속에서 김정은의 고향집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고 합니다.

이미 죽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을 경축하면서도 새로 영도자로 등장한 김정은의 생일을 당국에서 공개하지 않자 주민들 속에서도 김정은의 고향집에 대한 의혹이 퍼져나갔습니다.

현재 국내외에서 전해지는 김정은의 고향은 강원도 ‘원산초대소 설’과 평양시 ‘강동초대소 설’입니다. 최근 북한에서 한 주민이 김정은이 평양시 강동군에 있는 초대소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했다가 보위부 정보원의 신고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는 강동초대소에서 호위사령부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제대된 친구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다고 조사과정에 실토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조사과정에 김정일이 2008년에 중풍에 걸려 후계자에 대해 고민하면서 2009년에 김정은을 지목할 당시에 갑자기 1여단 군인들이 강동초대소 내부공사와 외부공사를 한 사실과 7총국 25여단이 강동군 읍 주택공사와 도로공사를 대대적으로 한 사실을 고백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원산초대소가 김정은의 고향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합니다. 아시는 것처럼 김일성은 해방 후 평양시 중구역 봉화역 인근의 당창건기념관에서 주거하였고 전후에 평양시 보통문인근의 저택에서 살다가 생일 65돌이 되던 1977년부터는 주석궁전이라고 불리던 지금의 금수산태양궁전에서 살았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김정일이 김일성을 위한다면서 전국 곳곳에 초대소를 짓도록 하고 이곳들에서 자기의 이성욕구를 충족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닙니다.

김정일이 자신의 본처였던 김영숙과 살면서 원산초대소 등에서 당시는 부인이 아닌 여성들과 이성관계를 가졌고 당시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였던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도 이렇게 김정일의 3번째 부인으로 선택되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재일동포로 부친과 함께 북한에 귀국한 고영희는 무용에 소질이 있어 음악무용대학을 졸업하고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로 된 후 공연지도를 자주 나오곤 하던 김정일의 눈에 들게 되어 원산초대소에서 처음 동거하면서 김정철과 김정은, 김여정을 낳았지만 본처인 김영숙이 있는 관계로 정식부인으로 나설 수는 없었습니다.

김일성은 후처인 김성애를 데리고 외국 방문을 가거나, 외국 수뇌자들이 오면 부부로 나서기도 했지만 김정일은 언제 한번 자신의 부인이라고 내세운 여성이 없었던 것은 성혜림, 김영숙, 고영희, 김옥 등 여러 여성들과 동거하다보니 어느 여성도 부인이라고 공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본처인 김영숙은 김일성이 지정해주고 찬성한 정실부인이어서 고영희나 다른 여성들은 북한주민들은 물론 김일성 앞에도 부인이라고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결국 고영희는 원산초대소에 머무르면서 사생아에 불과한 세 자녀를 키워야 했고, 김정은 형제들은 김정일이 김일성의 눈에 띄지 않게 하려고 초급중학교와 고급중학교를 스위스에 보내 유학을 하도록 했습니다.

김정일은 재일동포 출신의 고영희의 입맛을 살리려고 일본에서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를 데려왔습니다. 그는 3년간 김정일과 김정은을 보아온 일들을 엮은 도서 ‘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에서 원산초대소에서의 고영희와 김정은 일가의 생활을 보여주었고 이로써 김정은의 고향이 원산초대소이며 출생년도도 1984년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김정은이 원산초대소에서 태어나 김일성의 눈을 피해 살다보니 김일성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김정일도 본처가 아닌 고영희를 지방 초대소에 숨기고 이성생활을 하다보니 아들이라며 함께 찍은 사진이 없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도 북한당국이 지금까지 김정은이 김정일, 김일성과 어릴 적에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으리라 봅니다. 김정일의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시절에 방학이 되면 이곳 원산초대소에 와서 지낸 사실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은 자신의 어릴적 추억이 있는 원산을 대규모 관광단지로 만들 구상을 세우고 실천해가고 있습니다. 송도원 유원지에 물놀이장과 대형 수족관이 건설되었고 송도원 국제소년단야영소도 새롭게 단장되었습니다. 호위사령부의 24시간 무장보초가 상주하고 있고 외부와의 차단이 철저한 원산초대소에는 한 대의 가격이 700만 달러가 넘는 여러 대의 초호화요트와 10여 대의 제트스키라고 불리는 수중오토바이도 정박해 있습니다.

김정일은 1941년 2월 16일 당시 소련군 극동군사령부 산하의 88저격여단 대위로 복무하던 김일성과 김정숙 사이에 장남으로 러시아의 하바롭스크에서 출생하였지만 백두혈통을 선전하기 위해 백두밀영을 조작해 가짜 고향집과 정일봉을 만들었습니다.

김정일의 정실부인이 아닌 이성욕구를 위한 동거대상으로 원산초대소에 머물면서 고영희에게서 태어난 김정은의 고향을 원산초대소라고 밝히기에는 여전히 북한당국에게는 부담인 듯 합니다. 그래도 고향이라고 공개하려고 김정은이 원산 송도원에 물놀이장을 건설하게 하고 갈마지구를 관광지구로 개발하도록 했지만 언제 원산초대소를 고향집이라고 공개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만약 원산초대소가 고향이라는 것이 공개되면 북한주민들도 김정은의 출생의 비밀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 것이고 김정은이 김정일의 본처자식이 아니었기에 평양이 아닌 원산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이 김정은에게는 큰 부담인 것입니다.

강연회와 해설담화에서 북한당국이 온 나라 인민들이 생일을 쇨 것을 간청하고 있지만 김정은이 ‘사회주의 조국의 부강과 번영을 이뤄내 인민들의 허리가 펴지면 생일을 기쁘게 쇠겠다’고 말씀하신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흑막에 가린 내막은 이렇듯 김정일이 본처가 아닌 여성과 동거하면서 태어난 김정은, 숨겨진 고향에 대한 고민은 커져만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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