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판 노예 선발 조직, 중앙당 5과

김주원∙ 탈북자
201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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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만수대 언덕에서 군인과 주민들이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상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다.
평양 만수대 언덕에서 군인과 주민들이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상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녘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탈북자 김주원입니다. 김일성 봉건세습왕조는 북한 주민들속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계층을 선발해 자신들의 사치스러운 비밀생활을 유지하는데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충성계층은 ‘중앙당 5과’에서 선발하는데 ‘중앙당 5과’는 북한의 특수기관에서 활동하게 될 인원을 선발하는 조직으로 알려졌습니다. ‘중앙당 5과’에 선발된 사람들에게 차례지는 직업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입니다.

‘중앙당 5과’에 선발된 젊은 청년들은 호위사령부 내부에서 김씨 일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위하는 ‘친위대’에 보내집니다. 남한이나 다른 나라에 파견하여 간첩활동을 하는 대상들도 ‘중앙당 5과’에서 선발했습니다.

그 외에 특권족속으로 살다 망령이 될 인물들의 뒷시중을 들거나 중앙당 비서급 고위 간부들의 ‘안마사’나 ‘개인비서’, 식모나 담당간호사도 있습니다. 김씨 일가의 초대소나 별장에서 근무하는 인원들도 전부 ‘중앙당 5과’에서 선발했습니다.

1990년대 이전까지 북한은 내부 비밀이 새나가지 못하도록 ‘중앙당 5과’에서 뽑혀 온 사람들을 외부세계와 철저히 단절시켰습니다. 실수로 내부비밀을 발설한 사람은 조용히 없애치우고 대신 가족들에게 전사자로 통보하고 훈장과 선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 이후 주민들은 ‘중앙당 5과’에 뽑혀가 외부세계와 단절된 생활을 하기를 꺼려했습니다. 더욱이 ‘중앙당 5과’에 뽑혀 올라간 여성들의 비참한 사연들이 알려지며 딸자식을 가진 부모들은 ‘중앙당 5과’를 외면했습니다.

저에게는 ‘만수무강연구소’에서 일한 연고로 하여 ‘중앙당 5과’에서 선발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일명 ‘5과 대상’이라고 불리는 그들 가운데는 정찰총국에 배치돼 간첩훈련을 받고 남한에 드나들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제가 담당했던 ‘만수무강연구소’ 산하 ‘운곡종합농장’의 농장원들도 ‘중앙당 5과’에서 뽑혀 온 인원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북한에서 김씨 일가와 관련된 비밀스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모두 ‘중앙당 5과’에서 선출됐습니다.

‘중앙당 5과’는 인물심사를 할때 미모와 키를 중시했고 몇 차례에 걸치는 건강검진을 진행했습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엔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가정토대가 우선이면서도 키와 인물이 특별히 뛰어나야 했습니다.

아마 청취자 여러분들이 사는 동네에도 ‘중앙당 5과’에 뽑혀 간 자식들을 둔 가정들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중앙당 5과’에 뽑혀 가면 호강한다고 생각하는 게 북한 인민들의 생각입니다.

북한 인민들 중엔 ‘중앙당 5과’는 호위사령부에서도 김정은을 직접 호위하는 군인들만 선발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생각들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 옳다고도 말 할 수도 없습니다.

김정일은 환갑이 되던 2002년, ‘5과 출신’들을 특별히 간부로 등용하고 그들을 북한의 골간으로 양성할 데 대해 지시했습니다. 이러한 지시는 각 시, 군들에서 ‘중앙당 5과’과정을 마친 사람들을 불러 놓고 비공개로 전달했습니다.

북한에는 김씨 왕조를 지키기 위해 8만 여명의 정규무력으로 조직된 호위사령부가 따로 있습니다. 호위사령부에서도 김씨 일가를 근접에서 호위하는 무력은 ‘제1호위총국’인데 여기에는 ‘친위대’로 불리는 수백 명의 군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중앙당 5과’를 거쳐 선발되는데 제대되어 사회에 진출하면 ‘5과 출신’으로 불리게 됩니다. 호위사령부 ‘친위대’ 말고도 해마다 ‘중앙당 5과’는 고급중학교나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여학생들을 따로 뽑아 가곤 하였습니다.

‘중앙당 5과’ 선발과정에 있는 사람들을 북한 주민들은 흔히 ‘5과 대상’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아는 한 여성은 ‘5과 대상’으로 선발돼 평양시 모란봉기슭에 있는 한 초대소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는 늘 바깥세상이 그립다고 했습니다.

함씨 성을 가진 그 여성은 양강도가 고향이었는데 부모와 가족들의 생활형편을 알기 위해 몰래 고향사람을 수소문했습니다. 초대소에서 근무한지 3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던 한 고향남자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와 동창이었던 그 친구는 당시 양강도 후창군당 선전비서인 김호칠의 아들 김종일이었습니다. 만나고 보니 그녀는 김종일과 어릴적 부터 잘 아는 사이었고 중학교 때도 동창생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 사이엔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고향소식을 알기 위해 필요했던 남자친구로부터 어느 날 진정이 담긴 사랑의 고백을 들은 그 여성은 울면서 ‘나는 당에 모든 운명을 맡긴 몸이고 시집도 당에서 지정해준 사람에게 가야하니 부디 잊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사랑의 열정은 이미 막을 수 없게 깊어졌습니다. 함씨 여성은 초대소의 규정을 어기고 잦은 외출을 하게 됐고 얼마 후 그의 행적을 미행한 보위원들에 의해 낱낱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함씨 여성은 흔적없이 사라졌고 그의 외출을 허락해준 초대소 간부도 쫓겨났습니다. 1992년 ‘중앙당 5과’는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 등 여러 대학들에서 2학년과 3학년 여학생 200여명을 선발했습니다.

그들은 대남공작을 전담한 ‘통일전선부’가 비밀리에 운영하는 정치군사대학에서 남한과 외국에 파견될 간첩으로 양성되었습니다. 당시 수천여명의 여성들이 심사를 받았는데 그중 인물 좋고 머리가 비상한 여성들만 합격될 수 있었습니다.

저도 고등중학교 5학년이었던 16살에 ‘중앙당 5과’에 선발돼 시험을 보았습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중학교는 한 학급의 학생수가 40명이었고 같은 학년에 이런 학급이 8개나 되었습니다. 한 학년의 학생은 어림잡아 300명이 넘었습니다.

그중에서 5명이 ‘중앙당 5과’ 시험을 치렀습니다. 교장 방에 한명씩 들어가 탁자에 앉아 이런저런 질문을 받았는데 갑자기 신문으로 탁자를 덮더니 그 위에 있던 물건의 이름과 종류, 색깔까지 기억이 나는 대로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10개를 천천히 한번 말해 주고는 순서대로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속셈도 내고 영어수준도 시험했습니다. 이후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결과는 몇 달이 지나 개별적으로 통지해 준다고 했습니다.

시험을 본 5명중에 2명이 합격되었습니다. 저는 인민군 어느 군단 병원에서 군의소장을 하던 외삼촌이 과오를 범했다는 이유로 떨어졌습니다. 합격한 5명중 정태현은 통일전선부 정치군사대학을 졸업하고 간첩으로 남한에 여러 번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나 훈련 중 허리를 크게 다쳐 제대된 후 평양에 있는 ‘남조선문제연구소’ 연구사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만수무강연구소’에서 근무할 때 그와 몇 번 만났는데 간첩훈련 과정에 영어를 배우기 위해 잠비아에 유학을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1987년 11월 29일에 버마상공에서 한국의 비행기가 폭파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남한의 88년 올림픽을 방해하기 위해 김정일이 조작한 테러였는데 이 사건으로 115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칼(KAL)기 폭파사건’이라 알려진 이 사건의 범인은 북한 공작원 김현희였습니다. 김현희는 어릴 때 북한영화 ‘사회주의 조국으로 돌아간 영수와 영옥’에서 어린 영옥이의 역을 맡았고 평양외국어대학 일본어과를 다니던 중 ‘중앙당 5과’에 선발됐습니다.

이후 북한의 고위군사 간부들을 키워내는 금성정치군사대학에서 간첩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칼기 폭파사건’이 있은 후 김현희와 관련한 신상정보가 평양시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널리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테러를 직접 고안한 김정일은 흔적을 남긴 탓으로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김일성으로부터 호된 추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정일은 국가안전보위부까지 동원해 김현희와 관련된 신상정보가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했습니다.

제가 맡았던 ‘운곡농장’의 농장원들도 ‘중앙당 5과’에 합격한 후 그곳에 배치돼 일하게 됐는데 집에 휴가를 갈 수가 없었고 편지도 쓸 수 없었습니다. ‘중앙당 5과’는 그들을 데려 올 때 “자식을 조국에 바쳤다고 생각하라”고 부모들에게 말해줍니다.

아들딸들을 ‘중앙당 5과’에 보낸 부모들은 조국을 위해, 인민을 위해 지식을 바쳤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믿던 자식들이 김씨 일가를 위한 노예로, 고위간부들의 몸종으로 청춘을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얼마나 원통했겠습니까?

지금도 북한에선 해마다 ‘중앙당 5과’의 인원모집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다만 ‘5과 모집’이 90년대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중앙당 5과’의 실상을 이젠 북한 주민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씨 봉건세습 왕조가 저지르고 있는 인권유린 행위 중에 ‘중앙당 5과’ 선발이 얼마나 잔인한 인권유린인지는 통일된 조국이 반드시 증명할 것입니다. 북한판 노예 선발 조직인 ‘중앙당 5과’, 이제는 김씨 왕조와 함께 역사 앞에서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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