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디스코 사랑

김주원∙ 탈북자
2021-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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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디스코 사랑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Saturday Night Fever)’에서 존 트라볼타가 디스코 춤을 추고 있다.
/AP

북녘 동포 여러분, 1980년대 북한에 성행했던 디스코 춤은 김정일도 가장 즐기던 춤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디스코는 빠르고 경쾌한 장단에 맞춰 추는 대중적인 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77년 미국에서 제작된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 (Saturday Night Fever)’에서 존 트라볼타가 보여준 댄스 춤 동작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고 이를 디스코 유행의 시작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도 1979년부터 디스코가 청년들 속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급속도로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면 우선 당시 상영되어 디스코 유행을 이끌었던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한 춤 추는 장면의 곡을 듣고 이야기를 이어가도록 하죠.

(영화 장면 삽입)

이 방송이 라디오방송이다 보니 영화장면은 못보고 곡만 들으셨지만 영화에서 존 트라볼타가 무도장에서 경쾌하고 시원한 디스코 춤을 추는 장면을 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춤을 추고 싶은 충동을 강열하게 느끼게 됩니다.

1980년대 초에 김정일은 세계적으로 유행인 디스코 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외국에서 디스코 춤과 관련된 영상들을 들여오도록 했습니다. 김정일은 디스코 춤 장면이 나오는 미국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를 비롯해 외국영화들도 많이 보았고 영화 보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특별히 중앙당 5과에서 뽑은 어린 배우들로 디스코 무용팀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어느 날, 그날도 김정일은 원산초대소에 새로 조직한 디스코 무용팀 배우들을 불러 그들의 디스코 춤 실력을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 디스코 무용팀은 4명의 배우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디스코 춤곡에 맞춰 경쾌한 춤 율동을 선보이는 그 배우들의 얼굴에는 긴장이 어려있었습니다. 연속으로 두 개의 외국 곡에 맞춰 디스코 춤을 추고 난 그들은 숨이 가빠 헐떡이고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그들을 가까이에 불러 ‘이름은 무엇이냐’, ‘나이는 몇이냐’, ‘고향은 어디지?’ 라는 질문을 했고 “그런대로 추기는 하지만 좀 더 연습하지 않으면 안돼, 외국에 유학을 보내 좀 더 배우도록 해”라고 지시했습니다.

당시 원산초대소에서 진행된 디스코 춤 첫 시연에는 김정일 외에도 중앙당 비서들과 책임서기, 그리고 김정일의 전용요리사인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가 있었습니다. 후지모토 겐지는 그 당시를 회고한 저서에서 그 배우들의 나이는 열 다섯에서 열 여섯 살의 어린 배우들이었고 그들이 신고 있던 신발은 한 컬레 가격이 1천 달러를 넘는 스니커즈 신발이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때로부터 이 북한 디스코 무용배우들은 3개월 동안 디스코 춤을 배우기 위해 외국에 해외연수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김정일이 참석한 연회장에서는 디스코 춤 배우들의 공연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은 1980년대 이후에 노동당에서 제시한 ‘위대한 수령님께 기쁨과 만족을 드리자!’라는 구호가 기억나실 겁니다.

1977년에 김일성의 생일 65돌을 맞으면서 주석궁전을, 1980년대 초에는 김일성을 위한 만수무강연구소인 기초과학연구소를 설립한 김정일은 1980년대 말에는 평양시 보통강구역 신원동에 최신설비를 갖춘 만수무강연구소인 만청산연구원을 내오도록 했습니다.

만청산연구원의 명칭은 만년장수와 영원한 청춘을 뜻한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입니다. 김일성종합대학 생물학부를 졸업하고 만청산연구원에서 근무했던 저는 당시 김정일을 위해 추었던 배우들의 디스코 춤 CD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디스코 무용팀을 비롯한 각종 예술인 기쁨조 팀은 여섯 개의 조로 구성되었다는 것이 13년 동안 김정일의 음식을 전문으로 담당했던 일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의 주장입니다. 그는 김정일은 무용과 노래를 부르는 기쁨조를 6개 조로 나누도록 했고 155센티미터조, 160센티미터조, 165센티미터조, 170센티미터조 등 키에 따라 조를 구성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조들은 진달래조, 감조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반나체 상태의 의상을 입고 출연하는 배우들은 춤을 추면서 다리를 번쩍 들고 몸을 떨면서 파격적인 춤동작을 연출해 김정일을 기쁘게 해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일본에서 나서 자랐던 후지모토 겐지 마저도 자기의 자서전에 “나는 지금까지 그보다 더 화려한 장면을 직접 본 일이 없을 정도로 그들의 의상과 몸짓은 현란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공연을 보면서 김정일은 “이번 춤은 제법 귀엽구만”라는 표현으로 칭찬하기도 했고 안무가에게 자기가 바라는 방향을 지시해 춤동작을 갱신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연회장에서 거나하게 술을 마시고 취한 김정일이 신천초대소에서는 디스코 무용수들에게 “몽땅 벗고 알몸으로 춤을 춰”라고 해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던 기쁨조 무용배우들이 알몸 디스코 춤을 추기도 했다고 당시 그 좌석에 참가했던 후지모토 겐지가 자서전에 공개했습니다.

김정일의 지시로 1989년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전후해 평양과 지방의 도 소재지들과 직할시들에서는 디스코 춤이 잠시 허용된 적이 있었습니다. 수천 명의 외국인들이 축전에 참가하려고 평양에 모여들었고 평양체육관 광장과 4.25문화회관 광장 등 곳곳에서 무도회들이 진행되었고 디스코 춤을 추는 청년들이 생겨났습니다.

자기들만 즐기던 디스코 춤이 확산되는 것이 두려웠던 김정일은 1990년 11월에 ‘무용예술론’에서 “반동적인 무용예술 조류의 침습을 막는 것은 사회주의적 무용예술을 건전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중요한 방도의 하나”라고 강조했습니다.

새 것에 민감하고 진취성이 강한 북한 청년들은 디스코 춤 매력에 빠져 노동당 선전선동부의 감시와 통제를 피해 몰래 디스코 춤을 추었고 이 디스코 춤을 모방해 북한 판 ‘막춤’을 만들어 유행시키기도 했습니다. 일부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디스코 춤을 배워주기 위해 돈을 주면서 춤을 잘 추는 선생에게 자녀들을 부탁하기도 했죠.

김정일 그리고 오늘날 김정은이 북한주민들의 의사를 강제로 막으려고 하지만 통제할수록 디스코 춤에 대한 인기는 젊은 청년들 속에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최근 김정은의 지시로 북한에서 발행되고 있는 잡지 ‘조선예술’에 ‘날라리 춤을 비롯한 퇴폐적인 무용의 침습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내용이 실렸다고 합니다. 예술마저 저들만 독점하려는 김정은의 생각은 반드시 인민들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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