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가의 숨겨진 진실] 민생단 사건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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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 일가의 숨겨진 진실] 북녘 동포 여러분,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상당부분을 날조로 엮어 놓은 가짜 역사 도서이며 북한 주민 세뇌용 자서전입니다.

김일성이 ‘세기와 더불어’에서 수십 차례 언급한 민생단 사건 역시 당시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하였던 독립운동가들과 왕청 등 유격근거지들에서 생활했던 사람들에 의해 그 진실이 드러났지만 북한에서는 여전히 그것을 숨기고 있지도 않은, 김일성의 반민생단 투쟁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김일성은 회고록 1권 2장 ‘잊을 수 없는 화전’, 2절 ‘새로운 활무대를 그리는 마음’에서 “내가 화성의숙을 다니다가 반년만에 중퇴하고 길림으로 간 것은 내 생애에서 처음으로 되는 대용단이었다. 두 번째 용단이 있었다면 그것은 남호두회의 후 새 사단을 조직하면서 민생단 보따리를 불살라버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회고하였습니다.

회고록 1권 10장 ‘자주의 신념을 안고’, 1절 ‘사나운 회오리’에서 김일성은 “민생단조작은 조선에 대한 일제식민지통치의 지능화의 산물이었다”며 “9.18사변 후 만주지방에서 혁명정세의 급격한 발전에 커다란 우려를 느낀 사이토 총독은 간도시찰반성원으로 동만지방에 파견된 박석윤과 연변자치촉진회의 거두 전성호, 연길주재 만주국군군사고문 박두영, 수급반공특무 김동한을 비롯한 친일민족주의세력을 내세워 1932년 2월에 연길에서 민생단을 조작하게 하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일성은 자신도 민생단 올가미에 걸려들뻔 했다며 지난 시간 방송에서 제가 설명드린 도문지주 납치사건도 그 증거 중에 하나였다고 회고하였습니다.

김일성은 12장 1절 새 사단의 탄생에서 부하들에게 “오늘 누가 민생단이고 누가 민생단이 아니라고 결론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내가 오늘 동무들에게 명백히 선언할 것은 지금 이 자리에는 민생단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동무들 자신이 다 민생단이 아니라고 부인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동무들이 한 그 말을 믿는다”라고 말하며 문서보따리를 불살라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회고록에서 김일성이 했다는 업적이 거짓이라는 사실은 당시 왕청 나자구 지역의 당 책임자였던 종자운 등 많은 사람들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민생단으로 몰려 처형 직전까지 갔던 김일성을 빼내어 주보중이 있던 북만주 영안으로 피신 시켰던 사람이 동만특위 위원 겸 왕청현위원회 선전부장이었던 왕윤성이었습니다.

수백 명 당시 증언자들을 취재해서 조선족 출신 재미교포 유순호가 쓴 도서 ‘김일성 평전’에도 “후세 역사학자들은 민생단을 언급하면서 이 사건 중심에 있었던 중국인 간부 동장영과 왕중산 그리고 종자운을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조선인 간부에 대한 불신과 편견이 아주 깊었던 위증민의 손에서도 송일 등 20여 명이 넘는 조선인 간부가 처형당했지만 김일성은 이들을 별로 비판하지 않는다”고 언급했습니다.

김일성은 회고록에서 동장영과 위증민에 대해서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가 하면 김성도나 송일, 김권일 같은 조선인 선배 공산주의자들에겐 화살을 돌렸습니다.

김일성이 회고록에선 자신이 민생단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주장했지만 북만의 주보중에게 갔을 때 했던 당시의 대화내용이 중국공산당 자료에도 남아 있어 김일성의 민생단 보따리 사건도 거짓말임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주보중의 소개로 중국공산당 간부였던 오평과의 대화내용은 회고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 역사자료들과 도서 ‘김일성 평전’에는 그 기록이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당시 오평은 김일성에게 “김일성 동무가 민생단으로 의심받고 마음고생을 많이 하고 지냈다는 사실이 황당하기만 하오”라고 말하자 그 위로에 김일성은 갑자기 울컥 하고 설움이 북받쳐 올라 “그냥 간단한 마음고생 정도가 아닙니다”라며 한참 말을 못했다고 합니다.

민생단 혐의를 받다가 탈출해 북만으로 온 김일성은 중국공산당 간부였던 오평의 요청으로 주보중의 산막에서 이틀간 머물면서 동만에서의 반민생단 투쟁에 관한 이야기를 설명했고 오평은 수첩에 받아 적었다고 합니다.

김일성은 왕청현위원회 서기 이용국과 군사부장 김명균에 대해서도 “제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두 분은 왕청 유격근거지를 건설하는 일에 제일가는 업적을 세웠습니다. 그런데도 이용국 서기는 처형당했고 김명균 군사부장은 감금되었다가 도주하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보중이 오평에게 “김일성 동무 이야기를 들어보니 특위 상무위원이 민생단숙청위원회도 함께 책임지고 있었다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특위에서 직접 처형을 비준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자 김일성은 “근거지에서 탈출하여 결국 적들에게 가버린 변절자들을 변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확실한 근거나 증거 없이 그냥 의심하며 민생단으로 몰아 처형하고 감금했기 때문에 결국 그 사람들을 변절의 길로 가게끔 만들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제가 북만으로 나올 때 바로 저희 독립사단 윤창범 독립연대 연대장이 민생단으로 몰려 감금되었는데, 그와 한 감방에 갇혀 있던 동무들이 매일 저녁마다 하나 둘씩 끌려 나가서 처형당하고 돌아오지 못하니 결국 윤 연대장도 감방에서 탈출해 어디론가 달아나버렸습니다”라면서 자신이 왕청에서 체험한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주보중은 김일성에게 “이제 김 동무가 다시 동만에 돌아가서 혹시 민생단으로 의심받고 부대를 탈출한 동무들을 찾아내면 모두 나한테로 보내주오. 내가 그들을 데리고 있겠소”라고 말하자 김일성은 난색을 지으며 “저보고 동만으로 다시 돌아가란 말씀입니까?”라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김일성은 자신이 민생단으로 몰려 처형당할 뻔했던 동만으로 다시 가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회고록에서는 김일성이 민생단으로 몰린 사실에 대한 언급보다는 김일성이 반민생단투쟁을 반대하여 투쟁한 활동에 대해서만 여러 장들에 걸쳐 길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 민생단 보따리를 자신이 직접 지시하여 불태우게 한 것처럼 묘사하고 있으며 북한의 혁명영화들에도 그 장면을 연출하게 하였고 미술작품으로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진실을 연구하는 역사전문가들은 중국공산당의 비밀문서 자료들과 당시 직접 유격근거지에서 살았던 사람들, 반일투쟁부대들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거짓과 진실을 가리고 있습니다. 역사왜곡을 당연시하는 북한의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와 당역사연구소는 사실과 거짓을 잘 알면서도 북한주민들에게 진실을 숨기기 위해 우상화 선전영화들과 도서, 강연들을 통해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숨길 수도 없애버릴 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에디터 양성원,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