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혁명의 나팔수-공훈국가합창단

김주원· 탈북자
2019-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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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민군 창건 기념일인 지난 4월 25일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공훈국가합창단의 공연이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북한 인민군 창건 기념일인 지난 4월 25일 평양 4.25 문화회관에서 공훈국가합창단의 공연이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녘 동포 여러분! 북한의 3대세습이 70년 넘도록 이어져 올 수 있었던 이유 중 김씨 일가의 우상화 세뇌 선전이 한몫을 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우상화 선전에서 김씨 일가에 대한 찬양가요들은 북한주민들에게 노예적인 굴종을 강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찬양가요들은 독창, 중창, 합창, 노래이야기 등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의 노래는 북한주민들에게 맹목적인 충성심을 강요하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7년 2월 22일 로동신문에는 공훈국가합창단 창단 70주년을 맞아  '영원한 혁명의 나팔수'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기사내용 중에 김정은이 공훈국가합창단에 대하여 “합창단예술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핏방울 같고 살점 같다”며 그래서 “애지중지 아끼고 사랑한다”고 강조하는 내용이 실렸습니다.

공훈국가합창단은 구소련의 붉은군대 합창단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음악예술단체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와서야 전 세계에 이렇게 많은 군복 입은 예술인들이 씩씩하고 격조 높은 노래들 수백 명씩이나 부르는 나라는 오직 북한에만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러시아도 지금은 이렇게 규모가 큰 군인합창단이 없습니다. 군복 입은 군인들이 수령결사옹위나 찬양을 종용하는 노래를 합창으로 불러 국민들을 겁박하고 충성심을 강요하는 나라는 독재국가들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북한의 연속간행물잡지인 『조선예술』 2001년 12호에 실린 ‘세계적인 공훈합창단’이라는 제목의 기사내용에 김정일이 “선군정치의 기둥으로 인민군대를 내세운 것처럼 음악정치에서는 공훈합창단을 핵심으로 내세웠다”고 주장한 것만 봐도 이 합창단이 김씨 일가를 위한 '선군혁명의 나팔수'로 역할을 해온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남성배우들로 구성된 공훈국가합창단은 1947년 2월 22일 조선인민군 협주단의 전신인 보안간부훈련대대부 협주단의 소속 합창단으로 창단되어 창단 45주년이 되던 1992년에는 공훈합창단 칭호를 수여 받았습니다. 그리고 창단되어 48년 동안 조선인민군 협주단 소속으로 활동하였던 합창단은 1995년부터 조선인민군공훈합창단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하였습니다. 1995년 11월 김정일은 공훈합창단이 조선인민군 협주단 음악무용종합공연에 포함되던 공연형식에서 벗어나 합창곡목만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공연하도록 지시하였고 이를 계기로 협주단에서 독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사회주의 나라들이 붕괴되어 자본주의로 복귀한 후 체제 위협을 느낀 북한 당국에게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의 사망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1994년 12월 24일에 공훈합창단은 김정일 참석하에 첫 합창음악연주회를 진행하였고 1997년 7월 27일 전승절(휴전협정체결일) 44돌을 맞으며 만수대예술극장에서 ‘영원한 승리의 노래’합창종합공연을 하였습니다.

공훈합창단에 ‘국가’라는 이름이 더 추가된 것은 2004년부터입니다. 그때부터 합창단 명칭은 ‘조선인민군협주단공훈합창단’에서 ‘조선인민군공훈국가합창단’으로 불렸습니다. 문학예술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조선문학예술연감(2001년)』에는 김정일이 당시 협주단에 대해 강조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김정일은 “나는 수령님을 잃고 온 나라가 피눈물속에 잠겨 있을 때 신심과 낙관을 주는 혁명의 노래로 인민군 군인들과 인민들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인민군 협주단에 있던 합창단을 독자적인 정예화된 예술 단체로 새롭게 꾸리고 전문적으로 합창만을 창작형상하도록 하였다”고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김정일은 1995년 12월부터 2011년 사망 전까지 63회에 걸쳐 합창단 공연을 참관했습니다. 그때마다 김정일은 “공훈합창단의 공연을 볼 때가 제일 좋다”며 “조선인민군공훈합창단은 혁명의 가장 준엄하고 간고하였던 시기에 언제나 나와 함께 있으면서 인민군 군인들과 인민들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활력을 준 혁명의 기수, 진격의 나팔수”라고 치하하기도 하였습니다.

김정일은 공훈국가합창단을 ‘보천보전자악단’이나 ‘왕재산경음악단’이 경무기라면 인민군 공훈합창단은 중무기라고 강조한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합창단을 중시하였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의 유일한 TV 채널인 조선중앙텔레비죤과 3방송의 시작을 알리는 노래도 모두 공훈국가합창단의 노래입니다.

공훈국가합창단은 선창가수라고 불리는 남녀 독창가수들과 성악배우들로 구성된 합창가수, 관현악 연주자들로 이루어졌으며 합창단의 규모는 약 250여 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는 합창 인원은 70명에서 많기는 140여 명입니다. 선창가수로 잘 알려진 배우들로는 인민배우 리성철과 석지민, 홍경훈, 백지영, 황은미 등이며 공훈배우로는 김기영, 그 외에도 황림송, 리충일, 김광명, 정영만, 한송희, 신혜영, 최진혁, 임지성, 강경훈, 김태룡 등입니다.

공훈합창단의 기악은 관현악으로 구성되었으며 남성이 대부분이지만 현악부와 하프, 플루트, 전자악기 연주자 중 한두 명 정도는 여성연주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합창단의 악기편성은 1928년에 창단된 구소련의 붉은군대합창단의 알렉산드로프 앙상블의 악기편성과 비슷한 방식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입니다. 북한의 공훈국가합창단보다 규모가 작은 붉은군대의 합창단은 제16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여 북한찬양가요들인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김정일장군의 노래’ 그리고 북한주민들이 잘 아는 소련노래들인 ‘정의의 싸움’, ‘까츄샤’, ‘모스크바의 밤’ 등을 불렀습니다.

공훈국가합창단의 대편성은 남성합창입니다. 그들이 부르는 합창은 군복을 입은 배우들이 여러 성부로 나누어 함께 부르는 성악연주형식이며 이 노래들은 무대에 구애 받지 않고 대열행진곡으로도 부를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2003년 전승기념일(휴전협정체결일)에는 합창단 경축음악회를 처음으로 야외에서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9월 8일에는 공화국창건일(국경일) 55돌을 맞으며 개선문광장에서도 공연을 하였습니다. 배우들의 의상도 국방색과 함께 흰색 군복을 입도록 하여 위엄을 더 돋구었습니다.

공훈합창단이 부르는 노래는 최준경, 윤두근, 김정훈, 리지성, 신운호, 강용복 등 작가들이 지은 가사들이며 작곡은 계훈경, 엄하진, 리광호, 김광훈, 도영섭, 강숭웅, 김영남, 조경준 등이 지은 곡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곡들로는 ‘불패의 강국이여 앞으로’, ‘장군님은 위대한 수호자’, ‘총대로 받들리 우리의 강성대국’, ‘천리방선 초병들은 아침인사 드리네’, ‘우리의 장군님은 강철의 령장’, ‘수령님은 밝은 미소 보내시네’, ‘우리는 잊지 않으리’, ‘불패의 무적장군 나간다’, ‘최고사령관동지를 위하여 복무함’, ‘백두산 총대는 대답하리라’ 등입니다.

공훈국가합창단은 합창조곡도 창작하여 공연하기도 하였습니다. 북한의 백과사전에 합창조곡에 대하여 서로 다른 여러 개의 합창곡들을 묶어서 만든 연결곡 형식의 성악작품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2003년 김정일의 생일 61돌을 맞으며 창작된 합창조곡 ‘선군장정의 길’과 2004년에 창작한 ‘백두산아 이야기하라’가 대표적인 합창조곡입니다.

다른 나라들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인민군 공훈국가합창단은 지금은 김정은의 우상화선전의 나팔수가 되어 북한주민들을 더 세뇌시키고 있습니다. 귀청을 찢어 놓을 것처럼 부르짖는 합창곡에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관현악의 굉음, 위압적인 군복을 입고 부르는 공훈국가합창단의 공연은 북한주민들을 김정은의 영원한 노예로 만들기 위한 선전선동의 나팔수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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