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의 친솔악단-청봉악단

김주원· 탈북자
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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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봉악단이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공연을 펼치는 모습.
청봉악단이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공연을 펼치는 모습.
/연합뉴스

북녘 동포 여러분! 2015년 7월 김정은의 지시로 창단된 청봉악단(靑峰樂團)은 금관악기 위주의 경음악단입니다. 2015년 7월 28일 노동신문에 실린 기사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구상과 직접적인 발기에 의하여 우리시대 예술을 대표하고 선도해나갈 또 하나의 국보적인 예술단체 청봉악단이 조직되었다’에서 북한당국은 청봉악단을 ‘우리식의 경음악단’, ‘우리당의 또 다른 친솔악단’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청봉악단이 김정은의 원대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사상의 척후대’, ‘혁명의 나팔수’, ‘사상의 기수’의 역할을 다 할 데 대하여 강조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구상에 북한처럼 할아버지로부터 손자 대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국가지도자를 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역사를 반대로 거슬러 이런 반인민적인 독재국가체제를 유지하는데서 북한의 음악정치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이 본처인 김영숙을 제쳐놓고 만수대예술단 무용배우였던 재일본귀국동포 출신인 고영희와 원산초대소 등 특각들에서 동거를 하면서 김정은과 그 형제들인 김정철, 김여정이 첩의 자식인 서자, 서녀로 출생하였습니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에 김정은은 중학교 나이인 10대 초반의 소년이었지만 김정일은 첩의 자식에 불과한 김정은을 김일성 앞에 손자라고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김일성의 질책이 두려워 김정은 형제들을 스위스에 빼돌려 유학을 보냈던 사실도 비밀이 아닙니다. 결국 김정은은 김일성을 할아버지라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었고 함께 찍은 사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김정은은 후계자로 등장하면서 할아버지라고 말할 수 없었던 지난날을 덮어버리고 외모부터 말투, 걸음걸이, 심지어 필체까지 김일성을 흉내내더니 이젠 김일성이 반일투쟁을 하면서 흔적을 남겼다며 북한당국이 선전하는 청봉숙영지의 이름을 도용하여 예술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가짜 백두혈통을 청봉이라는 이름을 따서라도 가려보자는 심산이었던 것입니다.

청봉은 북한의 양강도 삼지연군 리명수노동자구에 있는 백두산의 서남쪽 봉우리로서 이 일대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입니다. 봉우리가 사철 푸르다고 하여 청봉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김일성빨치산이 1939년 5월 18일 하룻밤을 숙영하였다고 하여 청봉숙영지라고 불리는 이곳은 북한당국이 김일성의 혁명역사가 깃든 곳이라고 선전하는 곳입니다.

청봉숙영지에는 김일성이 잤다고 하는 ‘사령부자리’와 김정일의 생모인 김정숙이 밥을 지었다는 ‘취사장자리’, 빨치산대원들이 묵었다는 ‘대원실자리’, ‘우등불자리’, ‘샘물터’, ‘칼도마’, ‘구호나무’ 등이 사적자료라며 보존되어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청봉악단의 창단배경에 대해 “김정은이 비상히 높아진 인민의 지향과 문화 정서적 요구를 깊이 통찰하고 천만의 심장을 드높은 혁명열, 투쟁열로 더욱 불타게 하고 예술 부문의 침체와 부진을 불사르는 척후대 역할을 수행할 새로운 악단인 청봉악단의 창단을 선포했다”며 악단의 역할에 대해 “당의 전략적 의도를 수행하는데서 나팔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결국 김정은 시대에 체제선전을 위한 노동당의 나팔수로, 친솔악단으로 설립된 청봉악단은 모란봉악단과 쌍두마차처럼 등장하여 주민들을 음악정치로 세뇌시키는 역할을 수행한 것입니다.

청봉악단의 성악가수들과 연주자들은 은하수관현악단 출신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성악가수들은 은하수관련악단의 모란봉중창조 배우들이, 연주자들은 왕재산경음악단과 은하수관현악단 기악배우들이 포함되었습니다. 청봉악단이 창단되어 2개월이 지난 2015년 10월 조선노동당 창건 70돌 경축공연에 등장한 악단배우들로는 가수로 송영, 김주향, 김청, 김성심, 리수경, 리류경, 김향미, 유봉미, 김옥주 등이었고 바이올린은 김수명, 백현희, 박명진, 서국성, 색소폰은 황승철, 트럼펫은 김철준, 베이스는 전혜련, 바얀은 김선아, 드럼은 리혁철 등입니다. 바이올린 악장인 김수명과 백현희, 박명진, 서국성은 은하수관현악단에서 함께 배우생활을 하던 배우들이었습니다. 공연무대에 오른 성악가수들 중에 중심역할을 한 김주향은 2000년 5월 평양학생소년예술단의 성원으로 8살 나이에 서울을 방문하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노래를 불렀던 배우입니다.

은하수관현악단은 악기구성에서 전자악기보다 클래식악기 비율이 높았고 이 배우들이 청봉악단 구성원으로 되면서 인물구성에서도 클래식의 우아함을 살려 전자악기 중심의 모란봉악단과 차별화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란봉악단에는 없는 금관악기 편성을 부각시켜 음악의 화려함과 재즈 효과를 강조하였습니다.

성악가수들은 여성배우들이며 중창형식의 화음조화로 우아함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모란봉악단과 마찬가지로 현악4중주가 기악의 중심을 맡고 있는데 모란봉악단과는 구별되는 점은 전자악기를 쓰지 않고 클래식악기를 그대로 사용하며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한 것입니다. 드럼과 금관악기, 현악기에는 남성연주자들이 포함되어 전체 배우들이 여성으로 구성되어 전자 현악기 중심으로 공연하는 모란봉악단과는 차별화되었습니다.

청봉악단이 창단되던 2015년을 북한당국은 조로(북러)친선의 해로 선포하고 공동결의문을 채택하였습니다. 청봉악단은 2015년 8월 31일 공훈국가합창단과 함께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음악당에서 조로친선의 해 기념공연을 하면서 악단의 존재를 알렸습니다. 북한의 악단이 창단되어 첫 공연을 북한 내에서 하고 외국공연은 그 후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청봉악단만은 창단 후 첫 공연을 러시아에서 하였다는 점은 이례적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김정은의 지시로 청봉악단의 국내 첫 공연은 2015년 10월 11일부터 18일까지 평양시 중구역 만수동에 위치한 인민극장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모란봉악단이 첫 시범공연에서 미국 만화영화 주제곡을 부른 것처럼 청봉악단도 미국의 대중 민요를 불렀습니다. 미국의 흑인들의 정서생활을 소재로 다른 포스터(Foster, S.C)의 ‘오! 수잔나(Oh, Susanna)’와 ‘시골의 경마(Camptown Races)’를 7명의 가수들이 현악기와 금관악기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습니다. 북한당국은 미국가요를 소개하면서 외국노래라고만 자막에 띄워 소개함으로서 북한주민들이 미국노래인 줄 모르게 했다는 것도 의아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러시아노래 ‘떠도는 새’, ‘레드강 골짜기’, ‘처녀는 서있네’, ‘처녀들은 왜 미남자만 좋아하오’ 등도 외국노래로 소개하여 미국노래와 러시아노래가 어느 것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하기도 하였습니다.

청봉악단은 2016년 신년경축공연을 4.25 문화회관과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하였고 2016년 2월 16일 광명성절 경축공연은 봉화예술극장에서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2016년 5월 11일 7차당대회 경축 모란봉악단, 청봉악단, 공훈국가합창단 합동공연은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2016년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 사회주의청년동맹 제9차대회 참가자들을 위한 공훈국가합창단과의 합동축하공연은 4.25문화회관에서 진행하였습니다.

2017년 7월 9일부터 4일 동안 대륙간탄도로케트 화성-14형 시험발사성공 축하 모란봉악단, 청봉악단, 공훈국가합창단, 왕재산예술단 합동공연과 7월 27일 전쟁승리 64주년 경축 합동공연은 류경 정주영체육관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청봉악단의 성악배우들은 삼지연관현악단 일원으로 한국에서 진행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성공기원 특별공연을 (남)강원도 강릉아트센터와 서울 국립중앙극장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앞으로 남과 북이 더 많은 합동공연을 통하여 음악정치를 떠나 통일음악으로 한민족이 상생하는 시대가 열리길 기원하며 오늘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지금까지 탈북민 김주원이었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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