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전자결제법과 국가재정

김연호-조지 워싱턴 대학교 한국학연구소 부소장
2021.11.15
북한의 전자결제법과 국가재정 북한의 황금의삼각주은행이 지난 2015년 발행한 '선봉' 전자결제카드.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김연호입니다. ‘모바일 북한’, 오늘의 주제는 ‘북한의 전자결제법과 국가재정’입니다.

지난주에 북한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채택한 전자결제법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오늘은 국가재정 강화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북한이 현금결제를 대신할 전자결제 도입에 힘을 쏟고 있는 데는 원활한 금융활동을 보장한다는 목적도 있지만 국가의 돈주머니를 더 두둑하게 만들겠다는 목적도 있습니다.

원활한 금융활동 보장이나 국가재정 강화나 그게 그거 아니냐, 둘다 경제발전하자는 거 아니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원활한 금융활동 보장은 이용자의 편리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결제체계를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어서 돈이 잘 돌게 하겠다는 거죠. 그런데 전자결제로 국가재정을 강화하자면 세금을 많이 걷어야 합니다. 북한은 국가가 직접 통신과 금융 봉사를 제공하기 때문에 봉사료라는 이름으로 돈을 받아도 결국 세금과 똑같은 효과가 나타납니다. 국가는 전자결제 봉사료를 어떻게든 더 많이 받아내고 싶을테고, 주민들 입장에서는 봉사료가 올라가면 못마땅하겠죠.

사실 어느 나라나 전자결제 봉사를 받으면 그게 국가든 민간기업이든 이용자는 요금을 내야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전자결제체계를 운영하기 위한 비용, 새로운 투자, 인건비를 감당하고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는 봉사료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누구에게 얼마나 받느냐 입니다. 초기에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이용자 수가 얼마 안되서 투자한 만큼 바로바로 이윤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봉사료를 높게 매기지만, 이용자 수가 많아지면 봉사료를 낮추더라도 총액으로는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습니다. 여러 전자결제체계가 있어서 서로 경쟁한다면 지나친 이윤추구를 자제해야 손님을 뺏기지 않겠죠.

조선중앙은행이 전성카드의 발급기준을 완화하고 전국 지방도시까지 현금 입출금 봉사를 확대하고 있지만 경쟁이 없으면 봉사료를 낮출 이유가 없을 겁니다.

전자상업봉사체계에서 쓸 수 있는 결제체제 울림 2.0이 지난해 10월에 개발됐는데요, 전성카드와 나래카드 뿐만 아니라 지방 무역 카드, 무역기관이 발급한 카드도 쓸 수 있게 했습니다. 카드발급 기관끼리 손님을 더 끌기 위한 경쟁을 과연 어떻게 벌일지 두고 볼 일입니다.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전자결제가 확대되면 돈의 흐름을 신속정확히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습니다. 2009년 화폐개혁으로 국돈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면서 주민들이 달러나 위안화를 주로 쓰고 있는데요, 북한 당국 입장에서는 나라 안의 돈 흐름을 파악하고 관리하는데 큰 구멍이 생긴 겁니다.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는 국돈의 유통이 다시 활발해져야 하는데요, 주민들이 전자결제를 많이 이용하면 국돈의 역할도 그만큼 커지겠죠. 돈주들이 장악하고 있는 이관집들의 견고한 망을 지능적으로 깨버리겠다는 의지도 읽힙니다.

하지만 전자결제를 전국 곳곳으로 확대하는 건 말만큼 쉽지 않습니다. 전자상업봉사체계는 교통이 좋은 평양과 신의주 같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방으로 갈수록 통신설비가 미비하고 컴퓨터와 손전화를 갖고 있는 사람도 많이 없겠죠. 물건을 주문하면 제때에 잘 배달할 수 있는 체계도 대도시를 벗어나면 찾아보기 어려울 겁니다. 현금 대신에 전자결제 체계를 쓰는 이유는 편리하고 빠르기 때문인데, 이걸 뒷받침할 기술과 제도가 약하면 차라리 현금이 더 편하겠죠.

북한 당국으로서는 전자결제를 확대할 경우 나올 수 있는 부작용도 생각해야 합니다. 돈이 잘 돌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이 얼마나 풀리게 하느냐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돈이 너무 많이 풀리면 너도나도 부자가 된 기분에 이것저것 사다보면 물건이 동나고 그만큼 값이 크게 오를 수 있습니다. 북한이 전자결제라는 큰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궁금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다음 시간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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