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김치① 양념맛 vs 국물맛

서울-이현주, 김태산, 문성휘 xallsl@rfa.org
2011-11-29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에서 열린 '숙명,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에 참가한 학생 및 교직원들이 김치를 담그고 있다.
서울 청파동 숙명여대에서 열린 '숙명,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에 참가한 학생 및 교직원들이 김치를 담그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 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김장이 막바지입니다. 지난주말, 김장을 한 가정들이 많았는데요. 다들 따뜻한 날씨가 반갑기도 하고 또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서 일하기엔 좋지만 버무려 놓은 김치가 쉽게 쉬어 버리니 그건 또 걱정거리입니다.

점점 가족 구성원이 적어지는 남쪽에선 김장이라고 해야 40-50포기 정도 합니다. 북쪽에 비하면 정말 적은 양이죠? 그래도 이 정도면 4인 가족이 겨울나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노인들이 계신 가정에선 얘기가 다릅니다. 더 많이 합니다. 우리 집에서 먹고 남아 옆집, 뒷집 다 퍼주는 일이 있어도 김장은 넉넉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남쪽에선 김치 인심, 나쁘지 않습니다.

ACT - “지역에서도 주고 복지관, 적십자에서도 주고... 냉장고가 꽉꽉 찼었어요. 그런데 이젠...”

배추, 무, 소금, 고춧가루... 재료는 풍성한데 북쪽에서 오신 탈북자들은 직접 김장하는 경우가 많지 않네요.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 김장 얘깁니다.

진행자 : 김장하셨어요?

김태산 : 아니요. 집사람은 학원일 때문에 천상 김장을 하려면 내가 직접 해야 하는데 시끄러워서 안 했어요. 그리고 올해는 고춧가루값이 너무 비싸져서...

문성휘 : 맞아요. 올해 고춧가루가 굉장히 비싸죠. 근데 북한에 이런 속담이 있잖아요? 김치는 꼭 옆집 김치가 맛있다고... 저는 그 속담이 있어서 그런지 우리 집사람이 담근 김치는 맛없고 사서 먹는 김치가 오히려 맛도 괜찮고 값도 싼 것 같아요. 그래서 애초에 김치를 안 담가요.

김태산 : 우리는 올해, 김장을 안 했는데 원장 집이 김치를 안 담갔다니까 선생들이 조금씩 자기 집에서 한 김치를 갖다 줬어요. 그게 냉장고로 가득하네요. 근데 이자, 문 선생 말마따나 김치 맛이 다 제각기인기야. 그래서 김치를 먹어보고 맛이 없으면 그 선생, 참 솜씨 없네! 이러면서 얻어먹는 주제에 막 평가를 해요. (웃음)

문성휘 : 김 선생은 어디서 갖다 주는 데도 있고 좋겠어요.

김태산 : 아유, 일전에도 적십자사에서 전화 와서 김치를 보내 주갔다고 해서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어요. 이제 김치 받아먹을 때는 지났잖아요. 참, 이 나라는 자본주의 사회인데도 나눠주는 게 많아요. 지역 복지관에서 주고 교회에서 주고 적십자도 주고... 그러니까 집에 있는 탈북 여성 중엔 겨울 한 철 김치를 열키로(10kg)짜리 다섯 개, 50 kg씩 받은 사람도 있다고 하잖아요.

문성휘 : 저희 집은 열키로(10kg)밖에 못 받았습니다! (웃음) 지역 복지관에서 보내줬는데 김치통을 아주 좋은 가방에 담아줬어요. 집사람은 김치보다 가방을 더 반가워하더라고요. 그것도 선물이었나 봐요. 근데 이제 정착한 기간이 오래되다 나니 한국 사람이 다 됐다고 지원하는 것들이 점점 줄어요.

김태산 : 처음에 왔을 때는 교회에서도 김치를 보내주고 동회에서도 보내주고 설날 되면 떡국 떡도 주고 했는데 이제 10년 되니까 어디서 뭘 가져가란 것도 없고 주는 데도 없어요. (웃음)

진행자 : 이젠 여기 사람 다 되셨다는 얘기죠.

문성휘 : 공짜가 덜 생기면 좀 불편하긴 해요. 좀 더 생기면 좋겠는데요. (웃음)

진행자 : 공짜 좋아하면 머리 벗겨진 답니다.

문성휘 : 저 지금도 많이 벗겨졌어요. (웃음) 작년에 국회에서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를 했어요. 국회의원들이 다 장갑 끼고 나와서 김장을 했는데 거기서 담근 김치 한 통을 보내줬어요. 어떻게 저에게도 지함(박스) 하나를 보내줬더라고요. ‘대한민국국회’라고 쓴 김치를 받고 나니 참 기분이 좋았는데 집사람이 먹어보더니 국회의원들의 손맛이 다 이래요? 그러는 거예요. (웃음) 맛이 없대요. 열어보니 파를 너무 많이 넣었어요.

김태산 : 파를 많이 넣으면 인차 물러지고 김치 맛이 씁쓸하지.

진행자 : 북한 김치와 남한 김치, 차이가 있어요?

김태산 : 북한은 김치에 양념을 별로 안 해요. 재료가 적어서 그러는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북쪽은 남쪽보다 김치 양념을 적게 씁니다. 대신 남쪽은 굉장히 많이 넣죠. 무, 고춧가루, 파, 마늘 같은 것에 젓갈, 명태, 굴 같은 거 잡아넣고 새빨갛게 버무려서 저린 배추에 밖에서부터 매닥질을 해요. 그리고 매 줄거리마다 양념을 많이 넣고요. 근데 북한 김치는 포기를 한 장 한 장 들춰서 배추의 노란 부분에만 양념을 수저로 떠서 잡아넣고는 꼭 다물어서 장독을 채우죠. 김치에 독에 다 찼으면 무도 크게 썰어 넣고 국물도 많이 붓습니다. 그 국물이 정말 시원하고 쩡한 게 정말 끝내주게 맛있어요. 근데 남쪽 김치는 양념에 잘 버무려서 담근 다음에 딱 뜯어먹기는 참 맛있죠. 대신 양념이 많으니 인차 물러요.

문성휘 : 북쪽도 김치 담그는 법이 지방별로 달라요. 자강도 같은 곳은 김치 움이라는 걸 만들고 개성이나 황해도 지방은 독을 반쯤 땅에 묻어요. 북한의 김치는 다 장독에다 담그는데 한국은 다 김치냉장고를 쓰잖아요. 지금은 제일 다른 부분이 바로 이 것입니다. 남쪽은 독을 쓰는 게 아니라 작은 비닐통에 김치를 담근다는 것. 그 비닐통에 담근 김치는 김치물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질 않잖아요? 장독에서 담근 김치는 김치 물을 부어놓으면 추운 날엔 국물이 줄어들었다가 더운 날엔 또 위까지 차올라오고.... 이러면서 배추 속 양념이 골고루 스미는 거죠.

진행자 : 얘기 듣는 것만으로도 막 군침이 도는 데요? (웃음) 그런데 안타까운 부분이 있어요. 사실 남쪽에서도 가정들에서 담그는 김치는 그렇게 양념을 엄청나게 넣지 않아요. 집안 특색에 따라 나중에 고기국물로 육수를 붓는 가정들도 있고요. 그런데 단체들에서 보내주는 김치는 보통 여러 사람들이 함께 담그거나 아니면 행사에서 담근 김치들이 많잖아요. 그런 행사에 가정부인(가정주부)들도 참여하지만 김치 한번 못 담아본 학생들도 참여해요. 처음 김치를 담가 보니 과하게 양념을 넣고 바르게 되는 거죠. (웃음) 국회의원들도 남성분들이 많은데 어디 김치 담가 보았겠어요?

김태산 : 맞아요. 국회의원들이 어디 김장을 해봤겠어요. (웃음)

진행자 : 그런데 저희가 사실, 국회의원들 김치 못했다고 좀 꼬집긴 했지만 북쪽 같으면 어디 간부들이 김치 담가서 가정들에 갖다 주겠어요?

문성휘 : 책임비서, 조직비서들은 배가 나와서 팔을 뒤로 휘젓고 다니거든요. 그 사람들이 김치를 담근다... 참, 대단한 광경일 것 같습니다.(웃음)

진행자 : 그렇긴 해도 김장, 정말 큰 잔치인 것 같아요. 어머니들이 힘들긴 해도 그날만은 좀 신나는 날 아닙니까?

문성휘 : 그건 잘 못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한국은 김장 행사에는 숱한 사람들 불러서 웃고 난리 나잖아요? 북한은 고달픔의 연속이에요. 배춧값이 비싸고 양념값도 장난이 아닙니다. 북한이라는 나라에서는 김치가 겨울 양식의 절반이에요. 그런데도 양념이 비싸고 (심)지어 올해는 소금 값도 1,200원이 넘는다니까요. 김장을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북쪽에는 정제되지 않은 소금이 많아서 배추 절이는 소금물도 좀 시커멓습니다. 이걸 이집에서 쓰면 또 다음 집에서 받아쓰고 그렇게 돌려쓰다 보면 마지막엔 이게 간수인지 석탄물인지 알 수 없어요. 또 이렇게 절인 배추는 강에 가서 씻어야 해요. 그나마 못사는 사람들은 고춧가루도 없어서 배추에 무 넣고 소금 좀 뿌려서 그냥 백김치를 담그죠.

진행자 : 그렇군요. 남쪽에서는 사실 북쪽 김치가 시원하고 맛있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북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이 고향 생각하며 한 얘기인 것 같은데 북쪽의 경제 사정이 힘들어지고 식량상황이 긴장되면서 이런 전통 음식들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태산 : 그렇죠. 여기 온 탈북자 중 20, 30대 젊은 세대들은 그쪽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에 밥도 못 먹고 학교도 못 다니다가 남쪽에 온 사람들이 많아요. 그 사람들에게 북쪽에서, 고향에서의 생활을 회상해보라고 해보세요. 아마 전통 문화, 전통 음식 같은 건 기억 속에 전혀 없을 겁니다. 우리같이 오래 산 사람들은 그나마도 옛날부터 봐왔던 것, 해왔던 것이 있지만 그 친구들은 진짜 아무것도 없는 거죠. 이자, 문 선생 얘기를 들어봐요. 맨 배추를 남의 썼던 소금물에 절여서 무나 좀 탕쳐서(조각내) 넣고 그냥 익혀 먹어요. 이게 북쪽 전통 김치는 아니거든요. 그전부터 잘 내려오는 것들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라진 것이죠.

추운 날 김칫독에서 퍼오는 시원한 김치 한 사발... 국수도 말아먹고 술 마시고 속 안 좋을 때, 머리 아플 때도 이거 한 사발이면 모든 것이 괜찮다는 두 분의 김치 국물 예찬은 계속됐는데요.

김치 얘기, 다음 시간에도 이어갑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