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남한에서 보내는 10번째 설날, 5번째 설날

서울-이현주, 김태산, 문성휘 xallsl@rfa.org
201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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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서울 잠실동 롯데월드에서 연기자와 관람객들이 함께 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플래시몹을 벌이고 있다.
23일 오후 서울 잠실동 롯데월드에서 연기자와 관람객들이 함께 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플래시몹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 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설 연휴 잘 보내고 계십니까? 남쪽은 24일 설 연휴가 모두 끝나고 수요일부터는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토, 일, 월, 화요일까지 4일이나 쉬었지만 그래도 끝나는 휴일이 못내 아쉽습니다. 아, 명절 동안 음식 마련하랴 가족들 뒤치다꺼리 하랴 지친 주부들은 명절이 끝내는 것이 오히려 반가울지도 모르겠습니다.

ACT - 우리 탈북자들은 설날 아침엔 임진각 합동 차례에 가요. 단체들에서 조직해서 같이 버스 빌려서 함께 타고 가서 합동 차례를 지내는데요. 저는 가봤는데요. 내년부터는 집에서 지내려고요.

김태산 씨는 남한에서 와서 이번이 10번째 맞는 설이고 문성휘 씨는 이번이 5번째 설이랍니다. 남북이 오랜 세월 나눠져 있어서 많은 것이 다르지만 그래도 설 같은 명절을 함께 쇠면서 우리가 같은 민족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남한에서 보내는 설날 얘기,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에 담아 봅니다.

진행자 : 설들 잘 쇠셨습니까?

김태산 : 예, 우리야 나름대로 술 좋아하니까 설날이 술날이라고 술 좀 많이 마셨죠. (웃음)

문성휘 : 얘들 가는 데 따라가면 설을 잘 쇠는 것 같아요. 걔네들이 어린이 대공원이고 이런데 돌아다니니까 그런데 같이 돌아다니면 서울 구석구석 잘 구경할 수 있어요.

김태산 : 문 선생은 아이들하고 공원 같은 데 가는 것 좋아하는 모양이요?

문성휘 : 그런 건 아닌데요. 제가 잘 돌아다니는 성격이 아니니까 잘 몰라요. 얘들은 우리가 온 뒤에 남한에 왔으니까 사실 남한에 산 세월은 저희 절반인데 알긴 더 잘 알아요. 그러니까 졸졸 따라 다니면 몰랐던 곳도 잘 알게 되고 그래서 부러 따라다니죠. 근데 스키장 가자고 자꾸 애를 먹여서 겨우 말렸어요. (웃음)

진행자 : 이번에 남쪽에 와서 몇 번째 설이세요?

김태산 : 난 열 번째 설입니다.

문성휘 : 전 다섯 번째요. 세월이라는 게 너무 빨리 지나니까... 처음 왔을 때는 몇 년은 음력설이라는 생각도 못하고 그냥 지나쳤어요. 아마 좀 음력설에 대해서 좀 의미 있게 보내자 한 것은 한 3년 전?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근데 그때도 기껏 나간 것이 집사람하고 같이 서울 광장 있잖아요? 거기 갔었어요. (웃음)

김태산 : 근데 나는 낚시를 가면 갔지 그런 데 잘 안 가요. 오히려 저희 집 얘들도 아버지가 같이 간다면 기절을 하죠. 하지 말라고 통제하는 게 많으니까 싫어해... (웃음) 나는 진짜 그런 건 안 반갑고 북쪽에서 말하는 대로 설날은 술날이라고 이집에 하루 가서 모여 마시고 다른 집에 하루 가고... 그러면서 나름대로 즐겁게 보냅니다.

진행자 : 북쪽에서는 설날을 술날이라고 하시는 군요. (웃음)

문성휘 : 네, 그렇게 불러요. (웃음) 중국은 정말 천지개혁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설날 하면 이 생각이 많이 나는데요. 북쪽에서는 우리 있을 때에도 고저 신의주 쪽도 가보면 중국과 차이가 얼마나 엄청난지 대단하죠. 특히 밤에는 그 불빛이란 게 정말 사람 마음 안 좋게 합니다. 북쪽은 밤에는 가로등 하나 없어요. 캄캄한 절벽 같은 데를 사람들이나 짐승들이 큰일 본거 피해가며 조심조심 걷다가 강 건너를 넘어 보면 정말 그 기분이란 건.... 아마 김 선생은 평양에서 사셨으니까 이런 거 잘 모를 겁니다. 평양은 설에 24시간 전기 주잖아요?

김태산 : 그렇죠. 음력설에는 24시간 불을 주니까 사람들이 항상 명절이면 좋겠다고 하지요. (웃음)

문성휘 : 우리는 항상 장군님이 왔으면 좋겠다고 해요. (웃음) 음력설에도 전기를 전혀 안 줘요. 갑자기 김정일 온다 해서 1호 행사하면 불을 주죠. 사람들이 그 1호 행사가 있는 걸 어떻게 아느냐 하면 갑자기 불을 줘서 아는데 갑자기 불이 들어오면 가정들에 전등이 막 터지고 전압기 같은 데서 막 불나고 그래요.

진행자 : 아이고, 설에도 전기가 안 옵니까?

문성휘 : 안 오죠. 다들 떡 방아를 쿵쿵 찧다가 설날 0시가 딱 되면 중국 쪽에 그 폭죽 터뜨리는 소리가 굉장하거든요. 야, 이젠 폭죽도 발전해서 예전엔 좀 팡팡 소리만 났는데 지금은 굉장해요. 밤하늘이 대낮같죠. 그 소리가 나면 방아 찧다가 아파트 복도로 다 달려 나가는 거예요. 압록강 너머로 보이는 그 불빛을 구경하는 거죠... 아, 그때의 그 상실감! 북한이 늘 그러죠? 조선 민족으로 된 긍지... 아, 나 왜 조선민족이 됐는지 그때는 긍지는 고사하고 진짜 장군님 원망하게 되죠.

진행자 : 그렇군요. 그 심정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명절은 어떻게들 지내세요?

문성휘 : 아무리 국가가 김일성, 김정일 생일이 민족의 큰 명절이라고 해도 그건 국가가 정한 것이고 개인들한테는 이런 명절과 자기 생일이 최고죠. 그러니까 아무리 없는 사람들이라도 어떻게 하든 조금씩 조금씩 모아서 명절은 즐겁게 쇠자 그러죠.

진행자 : 남쪽은 그런 의미에서 명절의 의미가 좀 퇴색이 됐죠?

김태산 : 그러니까요. 맛있는 게 따로 없고 명절에만 먹는 게 따로 없으니까 구태여 명절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명절은 북쪽에서의 명절이 더 기억에 남아... 근데 여기 분들은 추석이나 설에 고향에 가고 막 그러는데 우리는 갈 곳도 없고 똑같은 음식 먹으니까 명절이 뜻에 남고 기억에 남고하진 않는데 대신 명절이 오면 고향에서 어떻게들 지내는지 궁금하고 걱정도 되고... 아, 진짜 내가 가진 못해도 내가 좀 술이랑 고기랑 쌀이랑 다 싸서 택배로 그쪽에 좀 보낼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문성휘 : 북쪽에선 누구나 설날 아침이 되면 의무적으로 김일성 동상에 인사를 가야하거든요? (웃음) 그러니까 모이지 말라도 다 만나게 돼있어요. 그렇게 만나서 이제 끼리끼리 헤어지는 거죠. 한국처럼 식당들에 가는 게 아니라 누구네 집으로 가는 거죠. 그러니까 북한에서는 여자들 진짜 고달파요. 아, 그리고 중국에서 나온 지총이란 게 있는데 설에는 이걸 사서 동상에 올라갈 때 갖고 갔다가 동상 구역을 벗어나는 즉시 여성들 외투 모자에 불 붙여 넣어서 놀래키죠. (웃음) 음력설 그때는 그런 게 참 재밌었는데요.

김태산 : 인간들이 사는 재미지요. 근데 한국은 참 그게 없어요. 재미없어요. (웃음) 진행자 : 근데 저는 그게 좀 아쉬운데요. 북쪽에서 오신 분들이 여기 남쪽에 가족이 있으신 것도 아니니까 남쪽에서는 그런 문화나 풍습들이 있어도 그걸 경험을 못 하신다는 거죠... 근데 진짜 명절 같은 때 제일 아쉬운 건 사람이네요.

문성휘 : 우리 탈북자들은 설날 아침엔 임진각 합동 차례에 가요. 단체들에서 조직해서 같이 버스 빌려서 함께 타고 가서 합동 차례를 지내요.

김태산 : 난 안가... 나는 나이가 있는데 이제 거기 끼어서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문성휘 : 올해도 다녀왔지만 참, 내년부터는 그냥 따로 해야겠다 싶어요. 가면 나이든 어머니들은 많이 우시는데요. 그걸 보면 참 서글프기도 하고요. 금방 온 사람들일수록 많이 울거든요. 하여튼 기분 쓸쓸하고 설날 아침인데 슬프고 그래요. 이제 그런 기분을 좀 털어내고 싶어서 내년부터는 집에서 지내려고요.

남쪽에서의 명절은 이제 오랜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날, 모처럼 푹 쉴 수 있는 날의 의미가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명절 휴일에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가정들도 많습니다. 그럼 제사는 어떻게 하나.... 이 얘기가 또 재밌습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가지요.

<내가 사는 이야기> 오늘 설 명절 얘기 해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다음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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