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설날②-여행 보따리에 들어간 차례상

서울-이현주, 김태산, 문성휘 xallsl@rfa.org
2012-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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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 마지막날인 지난 24일 인천시 중구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고향섬에서 설을 보내낸 귀경객들이 백령도발 여객선에서 내리고 있다.
설연휴 마지막날인 지난 24일 인천시 중구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고향섬에서 설을 보내낸 귀경객들이 백령도발 여객선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일꾼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 설날 얘기 이어갑니다.

남쪽의 설날 풍습은 많이 변했습니다. 특히, 설날에 3일을 연이어 쉬면서 설날을 일종의 휴가로 이용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올해 설 연휴 기간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난 사람이 36만 명... ‘설날 차례를 휴가지에서 지냈다’는 얘기는 이미 10년이 훨씬 넘은 얘기입니다.

INS - "설날 전날부터 떠나게 되고 그러면 차례를 못 지내지 않아요?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차례상을 여행 가기 전에 주문하면 여행갈 때 짐으로 같이 부쳐준대요."

사람들의 인식과 생활 방식의 변화에 따라 이렇게 명절 풍속도 바뀌고 있는데요. 북쪽에서 온 탈북자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요지경으로 비춰지기도 합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 남쪽에서 보내는 설날 얘기, 오늘 마지막 시간입니다.

진행자 : 김 선생님은 몇 년 전 설날에 온 가족이 스키장 다녀오시지 않았나요?

김태산 : 네, 다녀왔어요. 사실 돈은 좀 들었지만 이렇게 가족끼리 3박 4일 여행 갔다 오니까 좋긴 좋더라고요.

진행자 : 남쪽에서는 예전엔 설날에 이렇게 차례 안 지내고 놀러가는 행태를 비판 많이 했습니다.

문성휘 : 아니, 왜요?

진행자 : 설날에 차례 안 지내고 가족끼리 놀러간다고요. 휴가지에서 설날을 보내면서 차례까지 거기서 지내는 가정들이 있다고 신문에 보도도 되고 사람들은 그런 기사를 보며 비판하고 그랬는데 이것도 좀 옛날 얘기네요. 시간이 지나니까 이것도 양해가 되는 분위기에요.

문성휘 : 아, 이제 조상님들이 차례상을 먹으러 직접 찾아가야 되는 거네요. (웃음)

김태산 : 자기가 필요한 장소에 가서 차례를 지낸다... 나는 상관없을 것 같은데요?

문성휘 : 그리고 올해부터는 또 새로운 사업이 나왔는데요. 올해 설날 연휴 때 40만 명이 움직인다지 않아요? 태국에도 가고 일본에도 가고... 이렇게 좀 멀리 여행을 가게 되면 설날 전날부터 떠나게 되고 그러면 차례를 못 지내지 않아요?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차례상을 여행 가기 전에 주문하면 여행갈 때 짐과 함께 비행기로 부쳐준대요.

김태산 : 와.... 진짜 누군지 머리를 참 잘 썼네요. 그러니까 차례 음식을 여기서 다 포장해서는 설날 아침에 착착 풀어서 상에 올려 절만 하면 된다는 거네요. 세상 참.... 조상님들도 외국 구경도 하고 나쁘지 않겠는데요? (웃음) 살아서 못 가본데 다 가보시겠네...

진행자 : 저도 이 얘기를 지금 처음 들었는데요. (웃음) 저도 놀랐습니다.

문성휘 : 참, 한국은 해마다 이렇게 눈에 띄는 변화가 있어요. 진짜 대단한 거죠. 근데 그렇게 비행기로 차례상을 갖고 나가는 것이 많이 비싸지 않고 음식도 집에서 차리는 비용의 절반 값에 차려준 답니다. 진짜 설날 연휴에만 40만 명이 해외로 나가니 이런 사업이 나오는 거죠.

김태산 : 요 며칠 전에 텔레비전 뉴스보도 보니까 동남아 비행기 표가 다 매진돼서 할 수 없이 국내에 주저앉는 사람이 많다더라고요.

문성휘 : 맞아요. 참, 딴 세상 얘기죠. 북쪽에서는 얘들이 아직도 설날 되면 차례상에 올릴 음식 맛보려고 차례가 끝날 때까지 목을 빼고 기다리는데요. 제사는 밤늦게 끝나잖아요. 우리 조카들도 막 졸음이 와도 끄떡끄떡하면서 그거 끝나길 기다리던 생각이 나네요. 엄마한테 제사 끝나면 꼭 깨우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잠이 들고... 아휴, 참 그 생각을 하면 저 세상이 언제가 돼야 여기처럼 좀 자유롭고 풍요롭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아, 그리고 북쪽도 그렇지만 남쪽도 이젠 세대가 바뀌면서 제사상 차리는 법을 다들 잘 몰라요. 어디에 뭘 놓고 하는 걸 잘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드물어요.

진행자 : 기본으로는 홍동백서 이런 방식이 있지만 가정마다 다 조금씩 다르잖아요.

김태산 : 전 그래서 배우려고 안 합니다! 그냥 밥은 오른쪽, 국은 왼쪽 그리고 사과, 배 이렇게 척척 놓고... 산 사람도 딱딱 맞춰 놓고 먹는 법이 없는데 왜 죽은 사람에게는 그런 틀을 차려놓고 산 사람들이 고심을 합니까?

진행자 : 예법이고 전통이지 않습니까?

문성휘 : 맞습니다. 그래서 올해 새로 나온 것이 있어요. 이제는 스마트 폰 시대가 아니에요?

김태산 : 아니, 스마트 폰 시대에 그걸 왜 지키려고 해요...

문성휘 : 제 말을 들어보세요. 이제 차례상 차리는 법을 배울 필요가 없어요. 차례상 차리는 법을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이 나왔습니다. 그 어플을 스마트 폰으로 딱 켜면 동서남북을 알려주면서 차례상에 어디에다가 뭘 놓는지 알려준다니까요.

김태산 : 그러니까 시대가 발전하면 좀 간소화할 건 하고 해야지 왜 자유 민주 사회에서 독재국가인 북쪽보다도 제사상 하나에 그렇게 구속을 느끼는지 난 이해가 안 돼요. 살았을 때 좀 잘 차려주라요! (웃음)

문성휘 : 사실 한국이 조상 전례 예법은 북쪽보다 더 많아요. 근데 그래도 전 좋던데요... 합동 차례제랑 가보니까 구경하는 것이랑 재밌더라고요.

김태산 : 편하게 놓으라... 조상님이 손이 없어서 못 집어 잡수겠나? 살아생전에도 참 잘 드셨다... 그냥 풍성하게 차리면 되는 거 아닙니까?

진행자 : 제가 정리해 드릴게요. 김 선생님은 김 선생님 방식대로 문 선생은 문 선생의 방식대로 하시면 됩니다. (웃음) 어쨌든 이런 의견도 있고 저런 의견도 있고요. 차례를 지내는 집들도 있고 해외여행에 가는 집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남쪽의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정성으로 손수 음식을 만들어서 설날엔 차례를 지내고 있습니다.

문성휘 : 그리고 김태산 선생은 동감하시겠지만 남쪽은 참 새해를 독특하게 맞는 사람이 많아요. 저희들도 아이들이 새해 첫 달을 봐야한다고 밖으로 잡아끌어서 나가봤는데 그 밤중에 지팡이를 짚고 배낭을 메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저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물어봤더니 산을 올라가 산 정상에서 새해를 맞는데요. 근데 그렇게 하는 사람들이 꽤 많더라고요.

김태산 : 우리가 보건 데는 배 불리고 등 따시니까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아... 추운데 새해 첫날 해 뜨는 걸 보겠다고 몇 시간 운전해서 바닷가를 가지를 않나... 북쪽에서 온 우리는 이해가 안가요.

문성휘 : 그게 그렇지 않아요. 새해 자정에 종로에 나와 타종 행사장에 직접 와서 종치는 소리 들으면 자기절로 소리가 ‘와...’ 나오고 기분이 참 좋아요. 아마, 그 일출 행사에 가는 사람들도 그런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겠죠.

진행자 : 새해는 좀 특별하게 맞아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나가는데요. 나이든 분들보다는 솔직히 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김태산 : 못 살 때 같으면 자기 차가 어디 있어요? 지금은 거기까지 타고 갈 수 있는 내 차가 있고 휘발유 값이 넉넉하니 갈 수 있는 것이죠. 북쪽 사람들같이 먹고 살기 힘들면 그런데 가란들 가겠습니까!

문성휘 : 아, 진짜 내년 설에는 저도 좀 일출을 보러 가봐야겠어요.

진행자 : 내년 설에는 일출뿐 아니라 좀 더 잘 돼서 김 선생이 바라는 대로 북쪽에 택배라도 좀 보낼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김태산 : 그러게 말입니다.

문성휘 : 내년 음력설은 그렇게 지내게 되겠는지... 정말 한 해 한 해 지나갈 때마다 고대해봅니다.

오늘 문성휘 씨, 김태산 씨의 의견이 유독 달랐습니다.

문성휘 씨는 남쪽 사회가 지키는 전통과 예법이 좋다고 했지만 김태산 씨는 첨단 사회이며 자유 사회라는 남쪽이 너무 전통 예법에 얽매인다고 비판합니다. 바닷가까지 해돋이 보러 가는 것도 문성휘 씨에겐 한번 따라 해보고 싶은 일이지만 김태산 씨는 등 따시고 배불러 하는 일이라고 비판하는데요.

이렇게 의견이 다른 두 분도 돌아오는 새해에 고향에 갈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은 같았습니다. 아마 이 방송을 듣고 계신 청취자 여러분, 그리고 이 방송을 진행하는 저는 물론 남쪽 사람들까지 모두 같은 마음일 것 같은데요.

다양한 모습으로 설날을 보냈어도 같은 마음으로 시작하는 2012년, 지난해 보다 더 좋은 한해가 되기를, 새로운 시대로 가는 계단이 될 수 있길 빌어봅니다.

지금까지 <내가 사는 이야기>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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