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야기] 공휴일 (2) 최장 노동, 최저 생활

서울-이현주, 김태산, 문성휘 xallsl@rfa.org
2012-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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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에서 추진되는 10만세대 아파트 건설현장.
평양에서 추진되는 10만세대 아파트 건설현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사는 이야기> 이 시간 진행에 이현줍니다.

<내가 사는 이야기>는 평양 무역 일꾼 출신 탈북자 김태산 씨와 자강도 공무원 출신 탈북자 문성휘 씨가 남한 땅에 정착해 살아가는 진솔한 얘기를 담고 있습니다.

남한 직장에서도 세대별로 생각이 다른 부분이 많습니다. 특히, 휴가 문제가 그렇습니다.

남한 노동법에서는 1년 8할 이상 일한 직원에게 15일의 휴가를 주도록 돼있는데 기성세대들은 휴가가 있어도 일 때문에 휴가를 포기하거나 직장 분위기상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휴가를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사회적으로도 휴가도 포기하고 늦게까지 남아 일하고 직장에 헌신하는 성실성을 높이 평가해줬는데요. 요즘 분위기는 좀 다릅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은 상사가 남아 있건 말건 정해진 퇴근 시간에 맞춰 칼 같이 퇴근, 일명 칼퇴근을 하고 15일 휴가에 아플 때 쓰는 병가까지 다 챙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놀고 정해진 시간에 열심히 일해서 높은 능률을 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어떤 쪽이 더 바람직해 보이십니까?

북쪽은 사실 세계 어느 국가보다 긴 시간 노동하고 가장 짧게 쉬는 국가인데요. 극빈국에 속하는 것을 보면 노동 시간이 작업의 효율과 비례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 지난 시간에 이어 공휴일과 휴가 얘기 이어갑니다.

문성휘 : 남한은 처음에 와서 진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다들 휴가를 비슷한 기간에 가는 것이요. 아니 왜 다 한꺼번에 갑니까? 이건 북한은 이렇게 같이 노는 법이 없어요. 남한은 가족 친척끼리 같이 휴가를 받아도 갈 곳이 많은데 실상 북한은 갈 곳도 없고 그러니 같이 휴가를 받는 경우가 별로 없죠. 저희들은 주로 아주 추운 겨울에 휴가를 많이 받았어요. 겨울 휴가를 받으면 뭐가 좋은가 하면 ‘새해 첫 전투’를 빠질 수 있습니다.

진행자 : 새해 첫 전투가 뭡니까?

김태산 : 1월 1일, 2일 명절 쇠고 2일 자정부터 3일 날까지 일하는 걸 새해 첫 전투라고 합니다. 즉 새해 첫 작업 날을 말하는 겁니다. 이날은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는데 농장에서는 비료를 얼마나 생산했고 직장에서는 작업량이 얼마나 되고 이런 것이 중요하죠. 제가 있을 때는 새해 첫 전투에서 어느 작업장에서 얼마나 성과를 냈나를 통계 내서 벽보도 붙이고 작업량이 좋은 곳에서 최고의 충성심을 발휘했다고 막 떠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날 성과를 내기 위해서 어느 작업장이나 12월 25일경부터는 제품을 검사에 넘기지 않고 모아둬요. 그리고 그걸 1월 3일에 검사에 넘겨서 새해 첫 전투 생산량에 포함시키죠. 그날 일을 많이 하기도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게 한계가 있으니까요.

진행자 : 그런 분위기가 또 있었군요. 저는 처음 들어봅니다. 새해 첫 전투...

문성휘 :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새해 첫 전투도 바뀌었어요. 공장들이 다 멎었으니까 그저 농촌 지원을 가요. 설날 다음 날엔 농촌으로 가느라고 사람들이 줄을 쫙 섰어요. 여기 같으면 자동차를 타고 가겠는데 자동차가 없으니 썰매 같은 걸 끌고 사람들이 끝도 없이 줄을 서서 농촌으로 갑니다.

김태산 : 1월 첫날 얼마나 추워요. 양강도 이런 데 새벽 추위라는 건 상상도 못할 겁니다. 이런 날씨에 새해 전투라고 그 농촌의 허허벌판에 거름 같지도 않은 거름을 만들어서 끌고 가고... 그래도 사람들은 그런 와중에도 살아갑니다.

문성휘 : 근데 이것 말고도 2월 10일까지 새해 첫 전투 기간을 정해요. 이때는 하루도 못 쉬고 매일 나와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내가 스스로 좋아서 자원봉사하는 것 외엔 시켜서 일하면 다 돈을 받지 않습니까? 쉬는 날 부득이하게 나와서 일하게 되면 1.5배 급료를 주고요. 북한은 이런 동원은 다 공짜 노동입니다. 작업 시간에 해당하지 않아요.

진행자 : 왜 그렇습니까?

김태산 : 사회 로동... 사회주의, 애국주의 노동이라고 공짜로 나와서 바쳐야 하는 거예요. 연휴 얘기하다가 북쪽에 연휴가 없으니까 새해 첫 전투 얘기까지 왔는데...

진행자 : 올해는 설날에 3일 쉬었지 않습니까? 이건 연휴지 않습니까? 물론 그걸 다 쉴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또 있지만요. 남쪽에서는 쉰다는 개념이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날, 뭘 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나는 날인데 그런 의미에서 북쪽은 이런 설날에도 동상에 꼭 가야하고 그렇죠?

김태산 : 이건 좀 다른 얘기가 될 수 있는데 북한은 1월 1일 설날에 휴식해도 공동 사설이 나오면 당원들이랑 청년 조직에서는 그걸 또 다 외우고 공부해야 합니다.

문성휘 : 통달 경연도 있어요. 저도 거기 한번 나갔다가 죽다 살았어요.

진행자 : 아니, 그걸 다 외워야 합니까?

김태산 : 그건 약과죠. 문답식 경연도 해요. 사설 내용으로 질문을 만들어서 조직별로 붙어서 경기를 해요. 여기서 지면 비판받으니까 자기 당원들 달달 볶죠.... 어때요? 남쪽 분들 한번 가서 살아보시면 어떨까요? (웃음)

진행자 : 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는 사회네요.

문성휘 : 한 가지 좋은 점도 있어요. 설날이나 태양절 같은 때는 아침에 김일성 동상에 올라가거든요? 그때 기업소별로 모여서 가요. 그러니까 남쪽은 명절을 가족끼리 친척끼리 보내지만 북쪽에서는 직장별로 모여서 보내고 또 그게 아주 재밌었습니다. 조선 중앙 텔레비전 보면 만수대 앞에 죽 늘어선 사람들을 비춰주는데 무슨 충성심에서 거길 가겠습니까? 이런 재미가 있으니 가는 거죠.

김태산 : 직장장이나 작업반장은 그 전날 부인한테 미리 일러두죠. 음식이랑 술 좀 준비하라고요. 인간사는 재미는 여기에 있죠.

문성휘 : 그게 좋은 게 아니에요. (웃음)

김태산 : 왜? 그래도 그런 건 좋잖아요?

문성휘 : 아휴 김 선생님 생각을 해봐요. 집에 먹을 건 없는데 사람은 온다고 하죠. 집안 여자들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 사람들의 뒤치다꺼리도 해야 하고요.

김태산 : 보오... 근데 가면 직장장 아주머니 좋아 그러잖아? 이 집 노친네(안주인) 음식 맛이 좋아 오지, 영감이야 볼 거 있어? 우리 아주머니 때문에 오지... 막 이러면 다 풀려서 내년에 또 오라고 하고 그런다고요.

문성휘 : 아... 김태산 선생님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요! (웃음) 옛날에 잘 살 때 얘기만 하고요. (웃음) 고난의 행군 이후에 생각해 보세요. 직장 사람들이 다 온다는 게 얼마나 끔찍했을지?

김태산 : 그래. 그건 맞아...

문성휘 : 술이 5리터는 있어야 하죠? 국수도 말아 놔야지... 이게 고문인 거죠. 그러니까 여자들의 구호는 그거에요. 제발 명절이 없었으면...

김태산 : 그럴 수 있어요. 맞아요. 나는 그저 공장 생활을 79년에 끝냈으니까 그 때는 명절 때만 되면 합숙생들이 모여서 명절 날 어디 갈까, 어느 직장장네 집에 갈까 고민하고 그랬던 기억이 있는 거죠.

문성휘 : 80년대 말까지는 그런 풍경이 많았어요. 아, 그 바라 맥주(포장 안 한 맥주)라는 것 생각나시죠? 명절이면 바라 맥주... 한국 사람들은 이 바라 맥주가 뭔지 모르실 겁니다.

진행자 : 모릅니다. 바라 맥주가 뭡니까?

문성휘 : 포장을 안 하고 그냥 퍼서 파는 맥주요. 큰 탱크에 맥주를 싣고 와서 파는 거죠.

김태산 : 바가지 들고 가면 바가지에 팔고 비닐봉지 가져가면 비닐봉지에 담아주고 배만 가져가면 배 채워오는 거고... (웃음)

문성휘 : 오면서 김이 다 빠져가지고 오줌 맥주라고 해요.

김태산 : 매 맞은 맥주라고도 하는데 차에 싣고 오면서 한번 매 맞고 맥줏집에 와서 옮기며 한 번 더 매 맞고... 두 번 매 맞은 맥주까지는 괜찮은데 세 번 맞는 건 못 먹어요. (웃음)

문성휘 : 아휴 그 바라 맥주 생각나네요. (웃음) 그래도 고난의 행군 이전엔 맥주라도 먹었는데요... 고난의 행군이 이제 13년이 됐어요. 그때 한번 넘어진 걸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고난의 행군은 자연 재해부터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왔다지만 사실 오랫동안 북한의 경제는 계속 하락했고 그런 문제점이 쌓여 터진 것이 고난의 행군이라고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김태산 : 결국 체제가 바뀌어야 고난의 행군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지요.

진행자 : 이런 휴가나 명절에도 좀 잘 챙겨 놀고 즐겁게 보낼 수 있으려면... 이것도 경제가 나아져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하네요.

김태산 : 옛날 말에 쌀독에서 인심 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문성휘 : 인사말도 바뀌었어요. 옛날엔 누가 오면 식사는 했나? 물어봤는데 이제는 식사는 했지? 이렇게 됐으니까요. 어쨌든 휴식을 해야 일할 재미도 있지 않습니까? 진짜 일요일까지 다 동원해 나가고 월요일부터 일주일 내내 쉴 틈 없이 돌아가는데 일 능률이 안 나거든요. 농촌 동원을 아무리 나갔다고 해도 밭은 다 풀밭이고 어느 게 밀이고 어느 게 잡초인지 알 수 없어요.

김태산 : 그러니까 농사하는 방법이 틀린 게 아니라 그 체계가 잘 못 된다는 얘긴 거죠. 다른 나라들은 5일 일하고 이틀 쉬는데 또 어떤 나라는 이것도 많다고 금요일엔 종일 근무를 안 한답니다. 근데 북한은 규정이 48시간... 일요일까지 몽땅 내미니까 56시간 이상 일하면서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축에 들잖습니까? 제일 오래 일하는 나라가 제일 못 살고 지어는 국민이 굶어 죽고 경제가 바닥을 치고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결코 일을 더 시킨다고 잘 사는 나라로 될 수 없다는 얘기죠...

남쪽에 유명한 텔레비전 상업 광고 문구가 있는데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일할 의무도 중요하지만 쉴 수 있는 정당한 권리도 당연히 보장돼야 하겠습니다.

오늘 <내가 사는 이야기> 두 차례에 걸쳐 공휴일과 휴가에 대한 얘기 해봤습니다. 지금까지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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