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세요.
조현:네. 안녕하세요.
MC: 11월에 들어섰는데요. 한국에서 11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라고 합니다. 지금 한국의 농업인구가 4%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사실 모르는 분도 많아요. 소장님은 알고 계셨습니까?
조현:네. 당연히 압니다. 한국 분들은 실용적인 걸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본인과 관계없으면 관심이 없지만, 북한 분들은 사상이나 의미를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런 날이 존재하는 이유를 생각하면서 받는 감동도 남다릅니다. 농업인의 날은 농민의 자부심을 키우고 그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라는데요. 그런데 왜 11월 11일로 정했는지 그 배경을 알고 나니 큰 감동이 오더라고요. 그 이유는 한자 열 십(十)자와 하나 일(一)을 합치면 흙 토(土)가 되기 때문이랍니다. 농민이 흙에서 나고 흙을 벗 삼아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나타낸 거죠. 이게 진짜 농민인데 북한 농민들은 이것보다 정권 유지를 위해서 기념일에도 전투적인 삶만을 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농업인의 날에는 주로 획기적인 연구로 수확량을 높인 농업인들을 표창하고 또 지역 농축산물을 함께 나눠 먹는 행사들이 열립니다. 또 재미있는 건 한국의 농림축산식품부는 2006년부터 이 날을 '가래떡 데이'라고도 지정했습니다. 숫자 11자가 가래떡처럼 생겼잖아요? 그래서 이날 쌀 소비를 촉진하고 전통의 맛도 알리기 위해 가래떡 나눔 축제도 벌이고 있습니다.
MC: 네. 말씀 들으니 갓 쪄낸, 따뜻한 가래떡이 생각나네요. 북한에도 농업근로자절이 있는데요. 혹시 한국과는 의미가 다른 건지요?
북한의 농업근로자절은 노동당을 기념하는 날?
조현:네. 일단 축하의 대상이 다릅니다. 한국은 농업인구가 4% 남짓인데 반해 북한은 40% 정도로 추산합니다. 그러나 어떤 작물이든지 한국 농민들이 더 많이 생산하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이유는 농민에게 자율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농업근로자절은 농민의 노고를 치하하는 날이 아니라 1946년 3월 5일, 북한 내 토지개혁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말로는 농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결국 노동당 치적을 기념하는 날이죠. 이때가 농민들은 한창 파종하느라 바쁠 때 아닙니까? 기념일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는 현실인데요. 제가 방송을 통해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 농업근로자절을 한국처럼 추수할 때, 농민이 즐길 수 있는 시기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그것만 해도 농민을 위한다고 말은 할 수 있으니까요.
MC: 네. 사회를 지탱하는 기반인 농민이 대접 받는 게 당연한 사회가 되어야겠죠. 지금이 추수철인데 북한 당국은 올해 풍작을 거뒀다고 대대적인 선전을 하고 있습니다. 농민들이 시름을 좀 덜어낼까요?
수확량 늘었어도 군량미와 빚으로
농민들 한숨만 늘어
조현:정말 딱 시름을 덜 정도만… 입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작년보다 20% 정도 수확량이 늘었지만, 대부분 농장이 사전 목표량을 채우지 못했고요. 또 북한은 '군량미'처럼 각종 명목으로 국가에서 떼어가는 부분도 많습니다. 아마 작년에 농사가 너무 안 되어서 농장 대부분이 기름 사고 장비, 농약, 비료 사느라 빚을 많이 졌을 겁니다. 추수했으니 그거 갚고 나면 사실 남는 것도 없습니다. 북한 농민의 삶이 그렇거든요. 아쉽지 않을 만큼, 넉넉한 만큼이 전혀 아닙니다. 그걸 가지고 농사가 잘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죠.
MC: 네. 정말 살기 위해선 농민들의 개인적인 노력이 필요하겠네요. 소장님이 작년 이맘때쯤 식량난을 피하기 위해서 개별적으로 무를 많이 심어보라는 조언도 하셨는데요. 실제로 이런 방법이 시도되고 있습니까?
조현:아쉽게도 아닌 것 같습니다. 북한에선 지금 같은 가을엔, 김장용으로 이미 심어 놓았던 무를 뽑고는 더 심지 않습니다. 아마 지금쯤 마늘과 시금치 종자 뿌리고 끝냈을 겁니다. 하지만 겨울을 대비해야 하거든요. 꼭 월동 무 심기를 추천해드립니다. 다 알다시피 무는 김치, 깍두기, 동치미, 시래기, 국거리 등으로 다양하게 이용되잖아요. 한국은 북한과 달리 재배기술의 발달로 무의 연중 생산이 가능한데요. 2019년 기준으로 채소 재배면적이 약 18헥타르였는데 겨울에만 재배하는 월동 무 재배 면적이 5.8헥타르나 됩니다. 전체 채소 면적의 31%나 차지합니다. 월동 무는 1~5월에 거래되는데 주로 9월 말에서 10월에 파종해서 다음해 2월경에 수확하지만, 북한에선 지금 심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월동에 유리한 재배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니까 관수 및 배수가 잘 되는 곳, 부드러운 토양층이 좋고요. 얕은 밭은 이랑을 높게 만들어 주고 퇴비를 충분히 주면 효과적입니다. 농업 성장의 핵심은 농가소득의 증산입니다.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지요.
MC: 말씀 들어보니 무도 좋겠지만 상황에 따라선 겨울을 나기 위해 생육 길이가 짧은, 다른 작물을 심어도 농가에 충분히 도움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조현:네. 그런 작물이 많죠. 11월엔 부추가 딱 입니다. 또 들이나 개천에 야생하는 돌미나리를 작은 텃밭에 옮겨 심고 적당한 거름과 물을 줘도 잘 자라고요. 그걸로 돌미나리 녹즙을 만들어 팔아도 돈을 벌 수 있겠네요. 청경채, 상추, 봄동, 쑥갓 등도 추천합니다. 단 겨울 재배의 주의점으로 보온 처리를 잘 해줘야 하거든요. 작은 비닐하우스를 만들거나 막을 덮으면 좋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낙엽, 볏짚 같은 다른 작물의 부산물을 덮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 농민들은 때에 따라 이것저것 작물을 심어보는 게 일상화 되어있어서 이게 특별할 일은 아닌데요. 북한에선 주체농법대로만 살기 때문에, 이런 게 굉장히 새로운 시도처럼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MC: 그렇군요. 주로 추천하시는 작물이 무, 부추 등의 채소인데요. 사실 지금이 김장철이라 그런지 김치 생각이 많이 나네요. 소장님도 북한 김치 생각 많이 그리우실 것 같은데요?
조현:안 그립습니다. 여기 한국에서도 북한 김치를 더 맛있게 먹곤 합니다. 일단 재료가 훨씬 좋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 김치는 겨울에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집집마다 꼭 해야 하는 '전투'였는데요. 그런데 한국 오니 김치는 전투가 아니라, 나눔과 배려의 잔치더라고요. 일단 서울에선 김장하는 집이 많이 없어요. 이젠 50대들도 잘 안 담그는 것 같습니다. 제가 김치를 나눔과 배려의 잔치라고 한 이유는 집에선 잘 안 담그지만 한국에 수없이 많은 복지단체에선 가을에 봉사자들이 단체로 담그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 나눠주고 베풀면서 같이 먹습니다. 전투가 아닌, 넉넉하고 따뜻한 김장철 분위기가 북한에도 잘 전달되면 좋겠네요.
MC: 그렇군요. 하지만 북한에선 아직까지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인 김장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요. 올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진정한 전투는 겨울 먹거리 준비
관습을 떠나 새로운 방법 시도해야
조현:네. 어려운 질문이네요. 일단 김장 전투는 다들 열심히 하고 계실 거예요. 다만 중요한 것은 겨울 내 먹을 채소를 충분하게 준비해 놓는 것, 그것이 진짜 전투적으로 해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이걸 북한 농민들께서 꼭 시도하시면 좋겠습니다. 초겨울에 씨를 뿌려 겨울에도 재배하는 작물의 특징은 아삭하고 달달하다는 장점이 있고요. 늦가을과 겨울엔 벌레가 없어서 상품성도 더 좋습니다. 기존 관습과 달리, 새로운 시도해 보는 것 그것이 북한 농민들이 살아남는 법이며 혹독한 겨울을 쉽게 나는 방법이라고 꼭 말씀드립니다.
MC: 네 오늘도 유익한 말씀 감사합니다. 청취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까지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