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 진행에 이승재입니다. 농업과 축산업은 세상 모든 국가와 시민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산업이죠. 특히나 자력갱생을 강조하는 북한의 경우 자신의 먹거리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기에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이 시간엔 남과 북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농축산 전문가와 함께, 북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적용 가능한 개선방법도 함께 찾아봅니다.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는 농축산 전문가, 사단법인 굿파머스연구소의 조현 소장과 함께 합니다.
MC: 조현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조현: 네. 안녕하세요.
MC: 벌써 8월 말, 가을걷이를 준비해야 할 시기인데요. 최근 노동신문엔 함경북도에서 농기계 수리와 제작에 힘을 넣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고 또 “백전불굴의 정신으로 풍요한 가을을 기어이 안아오자”며 해주농기계공장의 사진을 실었어요.
조현: 네. 탈곡기 점검하는 사진을 보셨나 봅니다. 점검은 철저히 하는데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가을걷이 때에 가장 중요한 농기계는 탈곡기가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탈곡기 점검에 공들이는 것 보다, 벼를 벤 후 그 자리에서 벼 낟알까지 완벽하게 분리해 내는 한국형 탈곡기를 어서 들여오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은 ‘종합탈곡기’라고 말합니다. 북한 탈곡기는 사람이 힘들여 자른 볏단을 힘들게 운반해서 집어 넣으면 그저 벼를 털어내는 것뿐인데요. 이 과정에서 중간 손실이 10~15%나 됩니다. 이건 보통수치이고 많을 때는 20~30%까지 손실되죠.
7, 80년대 농기계가 대부분
종합탈곡기 도입이 시급한 북한
MC: 소장님 말씀을 들어보면 지난 시기 북한의 농업방식엔 괄목할 만한 발전은 없어 보입니다만, 그래도 매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름의 개선방법을 연구했을 텐데요. 혹시 북한에선 종합탈곡기를 몰랐던 건가요?
조현: 네. 일부 높은 간부들만 알 뿐 거의 모릅니다. 워낙 고립된 세상이잖아요. 하지만 협동농장 간부들이 알았다고 해도 북한 경제사정으론 그 어느 때에도 종합탈곡기를 들여올 여유가 없었을 겁니다. 제가 계속 북한 정권을 비난하는 이유는 비용적인 면에서 어렵다 해도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거든요. 국제사회에선 북한 주민들이 굶지 않도록 수없이 발전된 기계를 북한에 도입시키려 했고 북한 농가의 성장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북한 정권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농민만 생고생을 한 거죠. 노동신문 사진을 보면 한국 농민은 누구나 다 거기 있는 농기계가 1970~1980년대 수준의 제품인 것을 알아봅니다. 지금 북한 농기계 정책은 발전이 아니라 고장 난 기계를 그저 복구하는 것뿐입니다. 외국으로부터 현대적 기술과 설비들을 대담하게 들여와야 북한 농업이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데요. 그러자면 북한 기계기술자들이 세계적인 농기계의 흐름을 이해하고 접근해야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북한 기술자들이 바깥 세상을 본 적이 없거든요.
MC: 저도 아쉽네요. 그래서 저희가 방송으로나마 농민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알려드리고 싶은 건데요. 소장님이 말씀하신 ‘세계적인 농기계의 흐름’이라면 종류의 다양화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식량생산 늘리려면
세계적인 흐름에 맞게 농기계부터 바꿔야
조현: 네. 종류의 다양화도 물론 맞지만 제가 말하는 ‘세계적인 농기계의 흐름’이란 농민이 생산자가 아니라 경영자가 되도록 도와주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기계는 이제 모든 농사 일 자체에 사람 손이 들어가지 않도록 로봇화되고 있습니다. 모든 기계에 숫자가 도입되어 매우 정밀한 수준으로 작동하고 있죠. 땅에 뿌리는 흙, 물, 비료 등등 그 양이 아주 정확합니다. 이런 흐름에 북한도 동참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문을 꼭 닫고 자력갱생하라는 정책 가지고는 절대 세상을 따라잡을 수 없어요.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선 숱하게 농기계 전시회가 많이 열립니다. 북한 기술자들에게 길을 열어주셔서 거기 나와 기술 교류도 하게 해주시죠. 제가 세상 나와 보니 세상은 북한을 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가엾고 불쌍한 민족이라고 생각하더라고요. 쉽게 말하면 도와 달라면 도와주겠다는 나라, 사람들이 넘친다는 겁니다.
MC: 네. 이미 방송을 통해 소장님께서 북한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여러 번 언급하셨는데요. 아시다시피 지금은 유엔의 대북제재가 북한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농기계의 수입이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 않나요?
대북제재에도
농기계 수입 가능하다?
조현: 그렇죠. 문제 되겠죠. 기계, 철류는 대북제재 항목에 당연히 들어갑니다. 하지만 지금의 강력한 대북제재를 근거하는 유엔안보리결의 2397호에는 면책조항도 있습니다. 2397호 25항에는 “유엔 제재는 북한 민간인들의 인도주의 상황에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기 위한 것이 아니며,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해 금지되지 않은 식량 지원이나 인도주의 지원과 같은 활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거나 이를 제약하기 위한 것도 아니”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북한 정부는 이를 근거로 국제사회를 설득시켜야죠. 농기계는 북한 주민의 생존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유엔에 가 있는 북한 대표들 그런 거 하라고 거기 있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이런 제재가 시작된 이유가 바로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핵무기 때문이잖아요. 핵무기 안 만들면 되죠.
MC: 결국은 북한정권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북한주민들의 민생고도 해결되기 어렵다는 거네요. 아무쪼록 농기구의 현대화가 시급해 보이긴 합니다. 한국 TV에서도 북한 농업 현장을 볼 때가 간혹 있는데요. 이젠 아무도 쓰지 않을 법한 쟁기나 호미 가지고 농사 짓는 모습이 너무 힘겨워 보이긴 했어요
북한 농기계의 현실
해외에선 박물관 전시용에 불과
조현: 국제사회에선 웃을 일입니다. 쟁기 얘기하셨는데 북한에선 여전히 나무 대에 쇠꼬챙이 보습을 달아 쓰죠. 다른 곳에서 그건 이미 전시용이 된 지 오래입니다. 지금 국제사회에서 쟁기(plow)라고 말하는 것들은 이미 기계 수준이 되었습니다. 쟁기의 종류가 몇 가지가 있는데 조금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원판(disk) 쟁기라는 게 있는데요. 청취자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바닥 쇠를 갖고 있진 않고요. 접시모양 오목구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판쟁기는 작업이 어려운, 마르고 단단한 땅도 갈아낼 수 있고요. 나무뿌리나 돌멩이에 부딪쳐도 파손될 위험성이 적어서 개간지와 같이 나무뿌리가 남아 있는 경지의 경운작업에 적합합니다. 북한에서 쟁기로 땅 한번 갈려면 10번 이상 내리쳐야 하잖아요. 미국에서 개발된 이 원판쟁기는 딱 한번만 땅에 내리꽂아도 80∼90%의 겉흙을 반전시킵니다. 두 번째는 치슬(chisel) 쟁기입니다. 치슬쟁기는 이미 파종된 농작물이 있는 상태에서 기존의 식생을 유지하면서도 땅을 갈 수 있습니다. 잡초 제거, 덧뿌림, 시비 및 새로운 풀 종류를 도입할 때 사용하는 쟁기죠. 기존의 작물을 그대로 두면서 땅을 갈아낸다는 사실이 믿겨지시나요?
MC: 말씀하신 대로 용도에 따라서 다른 쟁기만 사용해도 훨씬 일이 수월해질 것 같네요. 이 외에도 소장님께서 북한에 당장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농기계가 있으신지요?
조현: 네. 영어로 해로(harrow)라는 진압기입니다. 대단위 포장에서 쟁기로 경운한 흙을 부수는 데 사용됩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땅에서 써레질을 이 진압기가 단번에 해낸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쟁기는 흙 부수기, 잡초 절단 등의 작용은 우수하지만 미세한 흙 부수기는 할 수 없어서요. 때에 따라선 진압기로 2차 작업을 해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호밀, 보리, 목초 같은 동계 작물은 겉흙이 얼고 녹음을 반복하면서 뿌리들이 절단되고 겉흙이 부슬부슬해서 말라 죽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런 경우 늦가을과 이른 봄에 진압기로 땅을 진압해주면 고사와 동해 방지 및 토양수분 보유에 효과가 있으며 일부 뿌리 번지기도 촉진되는 효과를 보입니다. 이런 농기계 한두 대만 농장에 도입되면 북한 농사는 지금에 비해 ‘땅 짚고 헤엄치기’만큼 쉬워집니다.
MC: 선진 농업국으로 갈수록 일손은 줄고 경작 면적은 커지는 경향을 보이는데요. 이게 모두 농기계 발달 덕분이죠. 이런 이유로 요즘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이 부농을 꿈꾸며 농업에 뛰어들기도 합니다. 물론 북한에선 불가능한 일이겠죠. 다만 북한 농민들이 수고로움을 덜고 생산량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는 농기계들이 어떤 식으로든 빨리 보급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지금까지 <농축산, 현장이 답이다>였습니다.
기자 이승재, 에디터 이예진,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