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월북작가들 작품 속 '계급투쟁 의식'
2024.09.14
MC: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서울의 탈북 소설가 도명학 작가와 함께 남한과 북한의 문학세계를 들여다 보는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미국 워싱턴의 홍알벗입니다.
이번 주부터는 월북작가 또는 카프(KAPF) 출신 작가의 작품 및 창작활동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도명학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제가 앞서 간단하게 언급했습니다만, 오늘은 월북작가나 카프 출신 작가에 관해 이야기를 해 주시겠다고요? 먼저 월북작가가 얼마나 되는지 그 규모가 궁금하네요. 선생님, 얼마나 됩니까?
도명학: 정확한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도 그렇고 남한에 와서도 그렇고 월북작가 규모를 집계한 자료를 본 적 없습니다. 또 제가 해방 직후나 6.25전쟁 시기에 살았다면 대략 짐작이라도 하겠지만 1960년대 중반에야 태어났으니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상당수 작가 예술인들이 8.15 광복 후 월북했고, 당시 북한 지역에는 실력 있는 작가 예술인들이 거의 없었다고 할 정도였다는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38도선 이남 서울이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였기에 북한이 출신 지역인 작가 예술인들 대부분이 이남에서 활동했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김일성은 이남 지역에서 작가 예술인들을 평양에 데려와야겠다는 절박감이 있었고, 또 가능성도 컸습니다. 왜냐면 그 당시 명성 높은 작가들 대다수가 카프 출신이고 이들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성향이어서 북에서 당근만 주면 쉽게 북으로 갈 판인데, 실지로 김일성은 월북한 작가 예술인들에게 집도 주고 생계도 보장해 주면서 특별 우대했습니다. 그러니까 긴가민가하면서 상황을 지켜보던 이들도 먼저 북에 간 동료들의 소식을 듣고 월북 길에 오르는 도미노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6.25 전쟁 시기에 북으로 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 시기 북에 올라간 작가, 예술인, 학자들을 남한에서는 거의 다 납북자, 즉 북에 강제로 끌려갔다고 하는데, 제가 알기론 억지로 간 사람보다 자진해 간 사람이 더 많습니다. 제가 북에 있을 때 알고 지낸 남반부 출신이라고 불리는 인재들 대부분이 남로당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었고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인공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고 의용군에 자진 입대하거나 인천상륙작전 후 후퇴하는 인민군을 따라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언제 한번 얘기한 것 같은데 한국의 유명 소설가 이문열 작가한테 직접 들은 얘기에 따르면 인텔리였던 부친이 자진하여 후퇴하는 인민군을 따라 북으로 갔는데 그때 타고 간 트럭에 자리가 많은데도 왜 가족들을 태우지 않고 혼자만 갔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북으로 간 부친은 김일성종합대학 교수가 되었고 거기서 재혼해 낳은 아들이 이문열 작가의 이복동생인데 그를 중국에서 만난 사연을 담은 소설이 “아우와의 만남”인데, 꽤 유명한 작품이죠.
MC: 그럼 카프(KAPF)라는 단체는 어떤 단체였었나요?
도명학: 카프는 1925년 8월에 결성되어 1935년 5월 20일에 해체된 사회주의 성향의 문학 단체로, 계급의식에 입각한 조직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계급혁명 운동을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정식 명칭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인데 제가 북한에서 알던 명칭은 약간 다른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예술동맹”이었는데, 제 기억이 틀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MC: 그렇다면 오늘 소개해 주실 작가는 누구인가요?
도명학: 예, 카프 출신인 이기영, 한설야 작가입니다.
MC: 먼저, 이기영 작가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볼까요? 찾아보니까, 이기영 작가는 북한의 소설가라고 나오네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이기영 작가는 어떤 인물이었고, 또 어떤 작품들을 썼는지 좀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사실 이기영 작가는 워낙 유명한 작가라서 남한에도 그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시 상기해 본다면 이기영 작가는 1895년 생이고 충청남도 아산에서 출생했고 호는 민촌, 필명은 성거산인, 양심곡인, 양심학인 등을 사용했습니다. 도쿄 세이소쿠학교를 중퇴했고, 1924년 현상문예에 〈오빠의 비밀 편지〉가 당선되어 등단했습니다. 그 후 “서화”, “인간수업”, “고향”, “땅”, “두만강”, 등을 발표했고, 희곡 “그들의 남매”, “월희” 등이 있다. 해방 후 월북하였고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 등 각종 기관의 책임자로 활동했습니다.
MC: 그럼, 이기영 작가의 문학세계는 어땠습니까?
도명학: 그의 문학세계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월북 이전과 월북 이후로 구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월북 이전,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 그의 작품세계는 자신이 겪은 가난한 삶을 당대 현실의 총체성과 관련시키는 방향으로 열려져 있고, 특히 묘사에서 탁월한 성과를 나타냄으로써 당대 플로레타리아 문단의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는데, 소설 “농부 정도룡”, “민촌”, “홍수”, “서화” 등에서는 농촌 현실의 발견과 새로운 인물유형의 창조를 통해, 농민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창출해 냄으로써 농촌 현실의 총체성을 구현하는 리얼리즘 소설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작가적 역량이 내적인 성숙 과정을 거쳐 종합적이고도 완결하게 표출된 것이 바로 '경향소설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대작 “고향”입니다. 이 작품은 식민지 시대 농민의 형상을 전형적으로 창조해 내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월북 이후 이기영 작가의 문학세계 특징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북에서도 농촌 현실에 대한 작품을 썼고, 묘사, 구성 등 창작기법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보입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월북 후 그의 작품에는 계급투쟁 의식이 더 강렬하게 들어가고 김일성과 북한 정권을 구세주처럼 그린 점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본인 스스로 마음이 우러나서라기보다 북한에서 살아가는 처지에 달리 어쩔 도리가 없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기영은 북한 지도자를 직접적으로 추앙하는 작품을 별로 쓴 것이 없습니다. 특히 김정일의 동거녀이자 김정남의 친모 성혜림은 원래 이기영의 맏며느리였는데 김정일이 이혼시키고 데려갔습니다. 졸지에 뜬 눈으로 맏며느리를 빼앗긴 이기영은 이때부터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MC: 이번에는 카프 출신 작가인 한설야 작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저는 이름만 듣고는 여성 작가인줄 알았습니다. 소개해 주시죠.
도명학: 네, 한설야 역시 카프 출신 중 이기영과 마찬가지로 잘 알려진 인물이고 북한 문단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긴 거물급 작가였습니다. 한설야는 함흥에서 출생하였고, 1915년 서울에서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가 고향 함흥에 돌아가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한설야는 중국과 일본에서 유학한 뒤 1925년 이광수의 추천으로 첫 작품 “그날 밤”을 발표하며 등단했습니다. 그는 1927년 카프 창립 초기부터 가담하여 계급문학의 이론적 확립과 문학적 실천에 앞장섰습니다. 그는 작품들에서 당시 농촌의 현실인 빈궁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면서 몰락해 가는 농촌사회를 묘사했습니다. 그러다 1934년 다른 카프 문인들과 일제 경찰에 의해 검거되는데, 이 시기를 전환점으로 그의 창작은 보다 두드러진 계급투쟁 성향을 나타내며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장편소설 “황혼”에서는 당대 자본가의 삶과 노동자의 삶을 대조적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일제강점기 한설야는 두 차례 투옥되었습니다.
MC: 선생님께서는 이 두 작가를 만나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북한 주민들은, 독자들은 이 두 작가 어떻게 평가하는지요?
도명학: 저와는 세대 차이가 너무 커 만나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북한 주민 중에도 젊은 층은 이기영, 한설야를 아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이기영, 한설야는 이미 옛사람이 된 만큼 50~60대 이상 돼야 기억하는데 두 작가 모두 대단한 인재들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MC: 우리가 월북작가와 카프 출신 작가와 그 작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도명학: 월북작가와 카프 작가를 통해 우리 근대사, 특히 분단 이후 남북 간 이념 대결과 체제경쟁, 그 속에서 살아낸 굴곡진 삶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또 월북작가 카프작가 그들이 남긴 작품과 생애는 한국 문학사라는 큰 범주에서 빠뜨릴 수 없는 큰 몫을 차지합니다. 반대로 탈북 작가까지 포함하는 월남 작가와 작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MC: 이 두 작가의 작품 가운데 남한의 독자들에게 각각 추천해 두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고 왜 그런지 이유를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명학: 이기영 작가의 작품으로는 북한에서 창작한 장편소설 ‘두만강’이 좋을 것 같고, 한설야 작가의 경우엔 숙청된 후 그의 작품이 대부분 사라져 북한에서 창작한 작품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해방 전에 쓴 오래된 작품이긴 하지만 그의 문학세계와 성향을 들여다볼 수 있는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장편소설 “황혼”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만 이기영 작가의 ‘두만강’은 마지막 부분은 주인공들이 온갖 우여곡절 끝에 김일성 항일 빨치산에 희망을 찾고 유격근거지로 찾아가는 내용인데 북한에서는 그렇게 써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점만 제외하면 상당히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이 “두만강”입니다.
MC: 벌써 마쳐야 할 시간이 다 됐습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함께 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힌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