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입니다. 진행에 홍알벗입니다.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북한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욱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탈북 소설가 도명학 선생님과 함께 한국의 문학에 대해 이야기 나눕니다.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도명학: 네, 안녕하십니까.
MC: 선생님, 2023년 계묘년 새해 첫 작품으로 어떤걸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도명학: 네, 오늘은 선우휘 작가의 '단독강화'라는 소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 소설은 6.25 한국전쟁 시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MC: 소설가 선우휘는 어떤 인물인지 궁금합니다.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도명학:네, 소설가 선우휘는 일제강점기였던 1922년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1946년 남한의 일간지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입사해 활동하다가, 인천중학교 교사를 거쳐 1949년 여순사건 이후 남한 육군에 정훈장교로 입대했다가 1959년 대령으로 예편합니다. 그때부터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1986년 조선일보에서 정년퇴임할 때까지 언론인으로서의 활동을 활발히 했습니다.

MC: 그럼 소설가로서의 활동은 어떻게 시작된건가요?
도명학: 네, 선우휘 작가는 1955년 단편소설 '귀신'이라는 작품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1957년에는 소설 '불꽃'이 문학예술 신인특선에 당선돼 제2회 동인문학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언론인 활동을 하면서도 꾸준히 창작활동도 한 거죠.
MC: 그런데 특별히 새해 첫 방송을 위해 선우휘 작가의 작품을 고르신 이유가 있을까요?
도명학: 네, 마침 최근에 제가 회원으로 소속되어 있는 한국소설가협회가 선우휘 작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월간지 "한국소설" 2022년 12월 호에 특집을 실었습니다. 사실 저는 선우휘 작가의 존재에 대해 몰랐는데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고 특집에 실린 그의 소설 "단독강화"를 읽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보니까 언젠가 TV문학관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얼핏 본 기억이 나더군요. 그때는 별 생각 없이 흘려봤는데 선우휘 작가에 대해 알고 난 뒤 원작 소설을 보니까 느낌이 확연이 다르더군요. 거기다 저와 같은 북한출신 월남작가라는 점에 마음이 더 끌린 것 같아 꼭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그의 소설 "단독강화"를 고르게 되었습니다.
MC: 선우휘 작가의 활동을 되짚어 보면 반공주의 운동가로도 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작품 속에 그러한 부분도 녹아있지 않을까 싶은데, 선우휘 작가의 문학세계는 어땠나요?
도명학: 네, 선우휘 작가는 "전후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의 한 명으로 80여편에 이르는 중장편소설들과 1,000여편의 사설 및 갈럼과 수필을 남겼습니다. 그의 작품 경향은 사실주의적 기법에 바탕을 둔 행동주의 계열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전후의 많은 작품 주인공들이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에 침묵하거나 내면세계로 도피하는 소극적 순응주의를 드러낸 데 비하여 그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현실에 맞서 적극적으로 싸워나가는 인물이 많습니다. 또한 선우휘 작가는 휴머니즘에 대한 강한 지향과 함께 역사에 대한 문학적 관심의 회목을 꾀함으로써 선이 굵직하고 스케일이 웅대한 그의 작가적 개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편 선우휘 작가의 세계관적 기반을 이루는 강한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하여 역사에 대한 그의 문학적 해석이 더러 객관성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가져오기도 했다는 평이 있습니다. 또 그것 때문에 만년에 이루어진 그의 언론활동에도 늘 찬반의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고 하는데, 글쎄요, 아직 그의 작품을 한편밖에 읽어보지 못했고 그가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쓴 기사들도 본적 없어서 저로선 딱히 이렇다저렇다 평가하기 적절한 것 같지 않습니다.

MC: 오늘 소개해 주실 선우휘 작가의 '단독강화'라는 소설은 어떤 작품인가요?
도명학: 소설 "단독강화"는 6.25전쟁시기 전선에서 어떤 이유에선지 대오에서 이탈한 국군 병사와 인민군 병사가 눈 덮인 산중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MC: 그렇군요. '단독강화'의 줄거리는 어떻게 되나요?
도명학: 소설의 첫머리에 보면 미군 비행기가 공중에서 뭔가를 낙하산으로 떨어뜨리고 지나갑니다. 그때 굶주림에 지친 총멘 군인 두명이 한명은 이편에서 다른 한명은 저편에서 각기 비행기에서 떨어뜨린 물건을 향해 눈판을 기어갑니다. 죽을 힘을 다해 낙하된 물건까지 다가간 둘은 서로를 알아볼 념도 못한 채 그것을 함께 끌고 동굴에 들어갑니다. 허겁지겁 물건을 헤쳐보니 미군 보급물자인데 맛있는 음식이 가득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국군병사는 그 음식들을 막 먹어대는데 인민군 병사는 난생 처음 보는 것이어서 먹을 줄 모릅니다. 국군병사는 상대가 인민군 병사임을 감지 못하고 이런 음식도 모르는 촌놈이라고만 여깁니다. 그러다 문득 인민군 병사가 "동무"라고 부르는 소리에 놀라 다시 보니 상대가 인민군입니다. 적과 적이 맞다들었으니 당연히 격투가 벌어집니다. 하지만 나이도 많고 덩치도 큰 국군병사가 보기에도 가냘픈 인민군 병사를 제압하고 결박합니다. 이젠 죽여야 하나 포로로 끌고 가야 하나 과제가 남았는데 국군병사는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들어 서로를 해치지 않고 하룻밤 지내고 날이 밝으면 각자 자기 진영을 찾아 떠나기로 약속합니다. 둘은 무기를 한곳에 묶어놓고 잠을 자는데 인민군병사가 자기를 누가 해치는 꿈을 꾸면서 옆에 누운 국군병사를 건드리면서 놀란 국군병사가 본능적으로 인민군병사에게 주먹을 날려 코피가 터집니다. 하지만 잠결에 꿈을 꿔서 그랬다는 것을 알고는 미안해 합니다. 그렇게 둘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게 되고 이해하면서 하룻밤 사이에 혈육의 정 같은 것을 느끼며 형과 아우로 부를 정도가 됩니다. 이튿날 날이 밝자 각자 자기 진영을 찾아 떠나는데 인민군 병사가 한발 먼저 동굴을 나와 떠나고 뒤늦게 국군병사가 동굴을 나섭니다. 그런데 이때 뜻밖에도 동굴 쪽으로 몰려오는 중공군을 보게 되고 국군병사를 발견한 중공군이 총을 쏘며 공격해 옵니다. 국군 병사는 혼자서 중공군을 상대할 수밖에 없는데 별안간 먼저 떠났던 인민군 병사가 되돌아옵니다. 국군병사는 왜 돌아왔냐면서 당장 돌아가라고 소리 지릅니다. 그러나 인민군 병사는 형을 혼자 두고 못간다며 중공군을 향해 총을 쏩니다. 이렇게 되어 둘 다 중공군 총탄에 숨지고 함께 엉켜 쓰러진 두몸에서 뿜어나오는 피와 피는 서로 엉키면서 하얀 눈속으로 배어들어가는데, 이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됩니다.
MC: 그런데, 소설의 제목인 '단독강화'라는 말이 이 소설과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건가요?
도명학: 단독강화, 문자 그대로 누구의 지시나 참견, 허락 같은 것이 없이 스스로 평화를 약속한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 어느 한 국가가 자국의 동맹을 제외한 적국과 단독으로 조약를 맺는 것을 의미하죠. 예를 들자면 1차 세계대전 당시에 러시아가 독일이랑 단독으로 맺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들 수 있죠. 작가가 이 소설 제목을 "단독강화"라고 붙인 이유는 그런 의미를 개별적 인물들에 적용함으로써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나타내려는 시도였을 것입니다. 이런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있는데,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마크 트웨인이 그랬고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의 주인공도 단독강화를 맺고 스위스로 도피합니다.

MC: 이 소설이 어느 정도 실화에 기반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설명 좀 해 주시죠..
도명학: 거기에 대해 저도 어떻게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저는 실화에 기반했다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한국전쟁은 동족상쟁이었던만큼 친혈육이 서로 적의 군복을 입고 맞다든 사례가 너무나 많은 만큼 설사 소설 "단독강화"가 순수 작가의 허구에 의해 쓰여졌다고 해도 그것을 두고 실화니 아니니 하고 논하는 건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됩니다. 또 실지 선우휘 작가의 회고에 의하면 실제로 중공군이 제압한 어느 동굴에서 인민군과 국군 시체가 발견되었고중공군이 인민군까지 사살했다는 이유로 북한당국이 중국 당국에 항의했다는 기록을 보고 떠올린 이야기라니 말입니다.
MC: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또 뭘까요?
도명학: 작가는 소설을 통해 동족상잔의 비극이 얼마나 참혹하고 부질없는 것인지를 말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국군병사와 인민군병사의 하룻밤 이야기를 통해 그들 몸에 흐르는 동족의 피가 얼마나 진한 것인지, 그러면서도 왜 서로 죽이기를 해야 하는지, 전쟁을 일으킨 자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국군병사의 대사에서 그것을 진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또 굳이 인민군이나 국군이 아니라 중공군에 의해 국군병사와 인민군병사 둘 다 죽는 장면을 통해 한국전쟁이 동족상잔에 그치는 내전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 농락당하는 한민족의 운명을 통탄하고 있습니다.
MC: 이 작품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장면인가요?
도명학: 작품의 매 장면 장면이 인상적이어서 꼭 집어 어느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기보다는 저에겐 모든 장면이 뇌리에 각인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한 장면 고른다면 마지막에 한발 먼저 떠나 보냈던 인민군 병사가 중공군이 몰려오는 것을 보고 국군병사를 위해 다시 돌아오고 그런 그에게 바보라고 소리치며 어서 손들고 중공군한테 가라고 하는, 그야말로 아우를 향한 형제의 정이 표출되는 장면을 고르겠습니다.
MC: 작품 속에서는 인민군이 항복하지 않고 국군과 함께 중국군에 저항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도명학: 그것 역시 형을 생각하는 아우의 마음이랄까. 비록 친형제가 아니지만, 서로가 다른 군복을 입은 처지임에도 적어도 동족이 아닌 중공군 앞에서는 한편이 된 거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듯 인민군 병사에게 있어 중공군은 같은 이념을 공유한 군대일지 언정 동족인 국군병사와 하룻밤 동안 쌓은 정을 넘어설 만큼은 안되는 존재였을 것입니다.
MC: 북한 주민이 이 작품을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도명학: 북한주민들도 이 작품을 보면 생각이 많아질 것입니다. 북한에선 이런 작품을 쓰면 혁명전쟁을 폄하하고 계급적 원칙을 흐리멍텅하게 만드는 반동작품이라고 처벌받을 것입니다.왜냐면 혁명전쟁에서 동족 간의 정이라는 감상적인 생각을 가지곤 승리할 수 없으며 적의 군복을 입었으면 이미 같은 민족이 아니라 소멸해야 할 계급적 원쑤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굳이 국군과 인민군이 한편에 서게 되는 얘기를 써야 할 필요가 있다면 국군이 미군의 총알받이 처지가 된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인민군의 편에 서서 미군에 총부리를 돌리는 것으로 써야 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민족적 양심이 남아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작품만 보던 북한주민들이 소설 "단독강화"를 본다면 생각이 좀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족상잔의 비극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동족상잔이 김일성에 의해 저질러진 반민족적 범죄임을 모르고 미국 탓으로 알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MC: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감상평을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작품이 전반적으로 잘 짜여져 있고 읽을 재미도 있게 쓰여졌습니다. 줄거리가 단순하면서도 장면과 묘사가 생동합니다. 또 작가의 말하고자 하는 사상을 생경하게 드러내지 않고 작품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한 것도 재치가 느껴집니다. 비록 1950년대에 나온 오랜 작품이지만 예술성에 있어서만은 지금도 손색없어 보입니다. 선우휘 작가의 생애를 보여주는 사진들을 보면서도 참 재능있고 훌륭한 분이셨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MC: 네, 도명학의 남북문학기행. 오늘은 선우휘 작가의 소설 ‘단독강화’를 살펴 봤습니다.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올 한 해도 좋은 작품 소개와 말씀 부탁드립니다.
도명학: 네, 수고하셨습니다.
MC: 네, 저희는 다음 주에 다시 찾아 빕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기자: 홍알벗, 데스트: 이진서, 웹담당: 이경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