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우의 블랙北스] 9.9절 축전 요청했다 “명절 몇개냐” 핀잔
2024.09.04
안녕하세요. 류현우의 블랙북스 진행을 맡은 목용재입니다. 며칠 있으면 북한이 9.9절로 부르는 정권수립일입니다. 올해로 76주년을 맞이하는데요. 올해는 정주년이 아닌 만큼 큰 규모로 행사를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합니다. 북한에서는 이 같은 정치적 행사가 있을 때면 북한 주민들을 다양한 형태로 동원해 활용하는데요. 북한 외교관들은 어떨까요? 이번 방송에서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 대리로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진행자: 대사님. 올해도 9.9절을 앞두고 있습니다. 올해에도 북한 주민들은 내부에서 행사 준비를 위해 고생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해외 파견된 외교관들의 경우 북한의 정권수립일 행사를 위해 마쳐야 하는 과업 같은 것이 있을까요?
류현우: 대부분 해외에 파견된 외교관들의 경우 9.9절에 해야 할 행사들이 많습니다. 특히 제일 걱정되는 것은 경축 연회입니다. 다시 말해서 국경절 연회라고도 합니다. 국경절 연회는 대부분 주재국 호텔에서 하는데 비용이 굉장히 비싸게 소요됩니다. 연회 인원 범위가 대체로 100명인가, 200명인가에 따라서 연회 비용이 작아지는가, 또 많아지는가가 달려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 정부가 할당해주는 연회비는 1인당 약 1.5 달러입니다. 이 정도의 자금을 가지고는 연회를 치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해외에 주재하는 대사관들이 (자체적으로) 추가 비용을 더 내고 연회를 치르고 있습니다. 보통 호텔 연회비를 200명 기준으로 보면 1만 달러 정도가 지불되는데 이를 따지면 1인당 50 달러 정도입니다. 국가에서 보장해 주는 비용인 약 1.5 달러는 형편 없이 작은 비용이기 때문에 이것만 가지고는 행사를 치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북한의 어려운 재정 형편에서 연회 비용을 보장해 주는 것 자체가 큰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외 주재 대사관은 국경절 연회가 제일 큰 관심사이기 때문에 한 해 중 가장 큰 행사인 연회를 성과적으로 보장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그래서 연회를 열기 전에 호텔 측과 교섭도 하고 날짜도 확정 짓고 그 날짜에 해당 나라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해당 나라에 주재하고 있는 외교단 등 외교관들을 초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해당 나라 북한 대사관은 경축 친선 모임, (현지) 친선협회가 주관하는 경축 모임 좌담회, 그리고 또 현지 신문의 9.9절 계기 특집 발간 요청 등 각종 행사를 기획하고 집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사관의 사업 실적과 개별 외교관들의 사업 실적을 평가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선전 부문을 맡은 외교관이라면 (현지) 신문에 특집도 게재해야 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비용) 부담을 해서라도 특집을 내야 합니다. 그런데 신문에 내는 것은 광고 형식처럼 돈을 많이 내야 되기 때문에 이런 방식은 어렵고, 짧막하게 9.9절 특집 내용 같은 것을 게재하도록 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업무를 수행했다는 것을 보고합니다. 그리고 영화감상회라는 것도 있는데 기본 내용은 김 씨 일가에 대한 위대성 선전을 기본으로 한 다큐를 USB에 담아서 (현지) 친선협회와 같은 조직이 마련하는 경축 모임, 그리고 좌담회 등에 이걸 가지고 가서 참석자들에게 이를 감상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진행자: 주재국에서 연회를 주최하실 때 반드시 초청해야 하는 국가의 인사가 있습니까?
류현우: 예. 있습니다. 우선 주빈으로 주재국의 고위 인사를 무조건 행사에 초청해야 합니다. 주재국 외무성의 아시아 담당국, 그러니까 북한을 맡아보는 담당국의 북한 담당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의전국 등에 각각 연락해 누가 주빈으로 참석하는지를 확인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주재국의 외무성 부상이라든가 혹은 다른 부서의 부상 이상급 간부가 행사 때 주빈으로 참가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런데 2016년부터 쿠웨이트 외무성이 북한 대사관이 조직하는 행사에 부상 이상급의 주빈을 참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외무성 아시아 담당국의 부국장급 인사를 주빈으로 내보냈습니다. 한마디로 주빈 급수가 낮아진 것이죠. 2016년 4차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국제사회의 규탄과 압력이 강화된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행사 때 중국, 러시아, 이란, 시리아, 베트남, 쿠바와 같은 북한의 우방국들에는 특별히 행사에 꼭 참석해 줄 것을 당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했을 때인 2017년 당시의 9.9절 행사 때는 중국, 러시아 대사들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관례상 우방국들의 대사들이 참석하지 못하면 그 아랫급 외교관들이 참석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도 핵실험을 빌미로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국, 이스라엘, 한국 등 외교 관계가 없는 국가들의 경우에는 북한 대사관이 초청장을 보내지 않습니다.
<관련기사>
[류현우의 블랙北스] 해외 북 대사직, 대대적 교체 시기 도래
[류현우의 블랙北스] 중동 북 노동자들, 임금문제로 직장장 집단폭행?
진행자: 북한 매체들은 9.9절이나 노동당 창건일 등 북한의 주요 기념일에 다른 나라 국가 정상들이 축전 등을 보냈다는 내용을 보도합니다. 현지 파견 외교관들이 이런 축전을 받을 수 있도록 현지에서 외교 활동을 벌이는 건가요?
류현우: 네. 그렇습니다. 해외 주재 북한 대사관들은 9.9절을 맞아 주재국의 축전을 받는 그런 관례에 따라서 김정은 앞으로 주재국 대통령이 축전을 보내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해달라는 요청서를 주재국 정부에 보냅니다. 그런데 9.9절뿐 아니라 다른 큰 명절 때에도 축전을 보내달라고 요청하는 서류를 보내거든요. 그런데 만약 축전을 받지 못했다면 해당 나라 주재 북한 대사관이 대외 활동을 잘못한 것으로 평가가 됩니다. 이는 평양이 해외 대사관 외교관들의 충성심이 부족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주재국으로부터 축전을 받지 못하면 연대적인 책임을 대사가 져야 합니다. 한 가지 실례를 들자면, 제가 시리아에서 근무할 때, 2013년 경 시리아 외무성 의전국 국장에게 9.9절 행사를 비롯한 북한의 큰 명절 즈음에서 바샤르 알 라사드 대통령이 김정은 앞으로 축전을 보내달라는 내용의 요청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의전국장이 해당 요청서를 전달한 저에게 하는 말이, “당신 나라에는 도대체 몇 차례의 명절이 있느냐”고 비아냥조로 물어봤던 적이 있습니다. 2월 16일, 4월 15일, 7월 8일, 8월 15일, 9월 9일, 10월 10일, 12월 17일과 같은 날은 북한의 중요 명절과 기념일로 이 때마다 축전 혹은 조전을 보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주재국 외무성도 너무 황당한 거죠. 매번 김일성의 생일, 김일성 사망일, 이런 날까지 축전과 조전을 보내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황당하고 무례한 요구 아닙니까? 그래서 아마 당시 의전국장이 저에게 “당신의 나라에는 명절에 도대체 몇 번이 있나”라고 물어봤던 것 같아요. 아무튼 이를 사업 실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대사관은 활동 내용으로 계획을 세우고 집행해야 됩니다. 여러 차례 축전을 받지 못한 경우에는 당연히 사업 총화에서 실적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다음 해외 발령 간부를 고르는 사업에서 고려가 됩니다.
진행자: 올해 9.9절 행사, 큰 규모로 치러질까요?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류현우: 저는 그렇게 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행사를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준비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런 준비가 없거든요. 예를 들어서 열병식이라든가 평양시 군중시위라든가 이런 것을 진행하자면 사전에 주민들을 동원해서 행사를 준비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한 징후가 현재까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현재 북한 사정을 보면 배급은 물론 안 되고, 수해 피해로 많은 사람들이 평양에 올라왔습니다. 집도 잃었고, 이렇게 피해 지역 주민들이 한지에 나앉은 상황인데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열병식, 평양군중시위 등을 하게 되면 주민들의 반감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 김정은도 고민을 할 것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9.9절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행사 준비를 위해서는 재정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재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현재 북한은 재정적 재원도 없고, 또 있다 한들 이 재정을 수혜 지역 주민들에게 보장해 줘야 하기 때문에 이번 9.9절 행사는 큰 규모로 성대하게 치뤄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진행자: 오늘 방송에서는 북한의 명절 때마다 주재국 정부에 축전 및 조전 등을 요구했다가 핀잔을 들으셨다는 류 전 대사대리의 경험담을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독재자에 대한 우상화와 충성을 과시하기 위해 이런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북한 외교관들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집니다. 류현우의 블랙북스, 오늘도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 대리와 함께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