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우의 블랙北스] 시리아 독재 몰락④ 북 관리소 못지 않은 ‘세드나야’ 교도소

0:00 / 0:00

여러분 안녕하세요. 류현우의 블랙북스, 진행을 맡은 목용재입니다. 시리아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이들이 자행했던 인권 유린 상황들이 드러났는데요.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와 같은 시설의 내밀한 실태에 대해서도 공개됐다고 합니다. 그동안 외교 관계를 맺지 못했던 한국과 시리아가 향후 수교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주목되고 있습니다. 오늘도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와 함께 하겠습니다.

[진행자]이번 시리아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를 연상시키는 시설의 내밀한 상황까지 공개됐다고요.

[류현우] 이번에 시리아 알아사드 독재정권이 무너지면서 그들이 감행한 인권유린 행위가 세상에 공개돼 큰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인권유린의 현장은 바로 세드나야(Sednaya) 감옥입니다. 이번에 반군이 다마스쿠스에 입성한 후 체포된 동료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감옥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 감옥은 지상과 지하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특히 지하 3층으로 된 지하구조물은 이번에 처음 발견됐다고 합니다. 이 지하구조물에는 바샤르 정권이 붕괴되기 바로 몇시간 전에 총살당한 정치범들의 시체가 더미 채로 쌓여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세드나야 감옥을 둘러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10여 년 이상 수감 당했다가 이번에 풀려나오면서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하는 수감자들이 있었고 3살짜리 어린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감옥에 붙잡혀 온 지 무려 42년이 되어서야 세상의 빛을 본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시리아인이 아닌 요르단 국적임에도 감옥에 끌려와 38년 동안 수감된 장기수도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지하 3층 규모의 감옥 환경은 최악이었다고 하는데요.

세드나야 (Sednaya) 감옥에서 발견된 시체더미

시설의 바닥은 썩은 물과 오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수감된 이들 중에는 한 번도 햇빛을 본 적이 없었던 사람도 있었는데,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 장기간 감금됐던 탓인지 사람인지, 해골인지 모를 정도로 폐인이었다고 합니다. 처형장에서 교수형 집행 때 쓰는 밧줄 매듭 더미, 그리고 수용자들의 옷과 신발 더미가 쌓인 방도 발견되었습니다. 용도 불명의 유압 프레스기도 발견됐고 심지어 처형한 수감자의 시신을 산성용액으로 처리한 흔적과 시간이 다급하여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시신 더미가 쌓여 있는 영안실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한 전문가는 이 곳을 돌아보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에 의해 감행된 집단 대학살 이후 이런 곳은 처음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지금 여기서 나온 실종자들의 유해가 10만 구가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끔찍한 도살 만행이 저질러진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 버금가는 집단대학살이 감행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마땅히 전범자로서 바샤르 알아사드는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될 것입니다.

[진행자]시리아에서 근무하실 때 인권 유린을 직접 목격하신 바가 있으실까요?

[류현우]제가 시리아에서 근무할 때인 2013년 8월 TV로 다마스쿠스 근처의 구타에서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해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때가 공휴일이어서 가족과 함께 공원에 가려고 택시를 탔습니다. 나는 택시 운전기사와 이야기하다가 그때 TV로 본 화학무기 사용에 관한 뉴스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나는 화학무기 사용은 국제법에 어긋나는 반인륜적인 행위라고 하면서 전쟁에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데 만약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썼다면 그것은 명백히 처벌받아야 할 만행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택시기사가 "모든 벽에는 귀가 있다"는 아랍 속담을 이야기하며 "조용히 하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실전에서 배웠던 아랍 속담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관련기사

[류현우의 블랙北스] 시리아 독재 몰락① 현지 북한인 운명은?Opens in new window ]

[류현우의 블랙北스] 시리아 독재 몰락② ‘김일성공원’ 조성 훈장받은 장명호Opens in new window ]

[류현우의 블랙北스] 시리아 독재 몰락③ 북, 시리아에도 파병했었나?Opens in new window ]

한국 -시리아 수교 줄곧 방해공작 펼쳐왔던 북, 이번엔?

[진행자] 이렇게 인권 유린이 일어났던 시리아지만, 독재정권이 붕괴하면서 다른 국가들과의 외교 정상화도 진행 중인데요. 한국의 경우 현재 유엔 회원국들 가운데 유일하게 시리아와만 수교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한국과 시리아가 수교를 맺을 수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류현우] 네. 한국이 현 시리아 과도 정부와 수교를 맺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유에 대해 설명해드린다면 우선 시리아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감정은 매우 긍정적입니다. 시리아에는 자동차가 유일한 운수 수단입니다. 지하철이나 열차가 없고 순수 자동차를 이용합니다. 자동차의 60% 이상이 한국의 현대, 기아 자동차들입니다. 그리고 한국타이어, 금호타이어가 매우 인기있습니다. 그리고 나도 2010년에 시리아에서 삼성 손전화기를 구매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시리아 국민들은 한국 기업인 LG를 엄청 좋아합니다. 현 시리아 과도 정부의 정책 기조는 시리아 재건에 필요한 투자를 받기 위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등 서방나라들과 친목을 두텁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샤르 정권을 지원해준 러시아, 이란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익을 따져보더라도 북한보다는 한국에 접근할 것은 시간 문제라고 봅니다. 경제관계의 발전과 더불어 외교관계가 조만간 맺어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전에는 이런 생각은 할 수 없었지만 바샤르 정권이 붕괴된 지금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과거에 한국 정부가 시리아와 수교를 하려고 시도를 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북한이 방해공작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진행자] 북한이 한국과 시리아의 수교를 방해 공작으로 막았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그 당시의 상황을 얘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류현우] 1998년 전상호 시리아한인회장이 시리아에 태권도 도장을 열었습니다. 그는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면서 시리아 고위층의 자녀들과 대통령 경호부대원들에게도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전상호 사범에 대한 소문이 시리아 주재 북한 대남공작부서 공작원들의 첩보선을 통해 평양에 보고됐습니다. 평양에서는 당장 대응하라는 지시를 대사관에 하달했고 대사가 시리아 외무성의 담당자를 만나 한국 태권도 사범을 추방시켜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는 전상호 회장을 추방하지 않고 북한 측에 그를 추방시켰다고 거짓으로 말했습니다. 북한은 그가 추방당한 것으로 속았고 시리아 정부는 그를 추방시키지 않고 안전하게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도록 보호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후 사건은 더 기가 막혔습니다.

당시 시리아 상황을 보면 2006년부터 경제개혁이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자본주의 꽃이라고 하는 주식시장이 생겨났고 민간 상업은행도 허용됐습니다. 한국의 삼성, LG가전, 현대자동차, 한국·금호타이어 등이 대대적으로 시리아에 진출했고 한국무역진흥공사(KOTRA)가 시리아에 진출했습니다. 2009년 11월에는 한국무역센터(Korea Business Center)가 설립됐습니다. 그 이후 평양에서 최수헌 시리아 북한 대사를 호출했습니다. 당시 고령인 최수헌 대사가 평양으로 들어가 굉장한 질타를 받았습니다. 혈맹인 시리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막아야 할 한국의 무역센터가 생겼으니 그 화를 최수헌 대사에게 다 풀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2010년 6월 시리아와 한국이 영사급 관계를 맺는다는 첩보가 들어왔다면서 평양에서 이를 저지시키라는 지시가 하달되었습니다. 나는 최수헌 대사와 함께 당시 시리아 외무성 아시아담당 부상 아흐마드 아르누스를 만났습니다. 최 대사는 혈맹관계에 대해 강조하면서 한국과의 영사급관계를 맺지 말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아르누스 부상은 한국과 영사급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재 많은 시리아 국민들이 사업 문제로 한국을 가야 하는데 비자 문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즉, 레바논과 요르단까지 가야 한국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어려움에 대한 민원이 계속 들어오기 때문에 최소한 한국 비자를 시리아에서 직접 받도록 영사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것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시리아-북한 관계에 영향을 주는 일이 아닌 순수 경제문제이고 또 시리아의 내정이니 이해해주기를 바란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최수헌 대사는 영사관계가 맺어지고 또 몇 년이 지나면 외교관계로 승화될 것이라며 이건 시간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이 리비아, 이집트, 예멘, 시리아로 확대되어 갔습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과 시리아의 영사관계 추진은 없던 일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행자] 지난해 한국 외교의 큰 성과 중 하나는 쿠바와의 수교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한국이 시리아 독재정권 몰락을 계기로 시리아와도 수교를 맺는다면 북한에 큰 타격이 될 것으로 보시는지요.

[류현우]그렇습니다. 시리아와 수교를 맺는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의 외교적 입지가 좁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마디로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표밭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또한 시리아에 대한 북한의 무기 수출도 중단되면서 외화 벌이에도 심대한 타격이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시리아는 '황금알을 낳은 거위'로 자리매김하면서 북한에 많은 외화를 벌어주었습니다. 시리아라는 중동의 보루가 사라진다는 것은 북한에 심대한 타격이 될 것입니다.

진행자: 네. 잘 들었습니다. 시리아 독재정권의 몰락은 한국으로서는 기회가 될 수 있겠군요. 만약 한국이 지난해 쿠바와 수교를 맺은 것처럼 시리아와도 수교에 성공한다면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고립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네 차례에 걸친 시리아 독재정권의 붕괴 이야기는 오늘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