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학원 원장, 김태희 씨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8-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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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디언을 연습하고 있는 북한 학생들의 모습.
아코디언을 연습하고 있는 북한 학생들의 모습.
ASSOCIATED PRESS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김인선: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탈북민들이 선망하는 직업 중의 하나가 남북 코디네이터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은 남들이 선망하는 그 일을 그만 두고 음악 학원을 차렸다면서요?

마순희: 네. 오늘의 주인공은 음악학원 원장으로 있는 김태희(가명) 씨인데요. 김태희 씨는 남북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을 그만두고 음악 학원을 차린 사람입니다.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은 탈북학생들과 남한 학생들 사이에서 조화를 만들어주는 안내자, 혹은 보조 교사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북한에서 교원으로 일했던 분들이 한국에서도 자신의 전문분야였던 학교에서 교육자로 근무할 수 있기 때문에 경력자들이 많이 선호하는 직업입니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지만 북한에서 하던 직업을 남한에서 계속할 수 있는 것이 별로 많지 않아요. 특히 교원으로 일하던 사람들은 특별한 전문 분야의 기술이나 재능이 있지 않으면 직업을 잡는데 어려움이 많거든요. 2017년 남북하나재단의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현재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 중에는 북한에서 교원이나 교수로 근무했던 경력을 가진 탈북민이 한 300여 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 현재 남한에서 코디네이터로 근무하는 사람이 26명 정도가 된다고 하니까 하고 싶어도 누구나 하게 되는 것은 아닌 거죠.

김인선: 그 정도로 경쟁률이 높았다는 말이잖아요.

마순희: 네. 음악 교원 출신이었던 김태희 씨는 자신이 제일 잘 하는 것이 애들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생각에 남북 코디네이터가 됐지만 결국 그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일을 택했습니다. 50대인 태희 씨는 ‘탈북민이 선호하는 직업은 더 젊고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것’이라며 코디네이터를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 웃어넘겼는데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또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코디네이터의 월급이 혼자의 몸으로 대학생인 딸과 함께 생활하기에는 아무래도 빠듯했기 때문인데요. 그래서 태희 씨는 늘 악기를 배우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개인 교습을 시키는 부업을 겸해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알게 된 해당 학교에서는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고 태희 씨는 자신의 장기인 음악으로 개인 사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학교에 사직서를 내게 된 거죠. 그리고 경상남도 창원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아코디언 음악 학원을 운영하게 됐습니다.

김인선: 김태희라는 이름을 건 음악학원 간판을 걸 때 눈물을 흘리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마순희: 네, 맞아요. 우선 북한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건 사업장을 꿈도 못 꾸지만 한국에서는 가능하잖아요. 김태희 씨는 하나원에 있을 때부터 남다른 계획을 세웠었다고 하는데요. ‘5년 안에 내가 평생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잡겠다는 것과 8년 안에 내 차를 사고 10년 안에 내 집을 갖는다’는 게 목표였대요. 그리고 제 이름으로 된 음악 학원을 차려서 열심히 하다가 내 아이에게 물려주겠다는 것이 목표였다는데요. 그 목표를 이루었으니 왜 눈물이 나지 않겠어요. 2012년에 창원으로 내려갔던 남북 코디네이터 김태희 씨가 ‘김태희 음악 학원’의 원장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힘든 고비들을 넘겼는지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제 마음도 많이 아팠었습니다. 정착 초반엔 식당 일을 하다가 화상을 입기도 했고 청소 일을 하다가 허리를 다치기도 했지만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신학 대학도 다니고 음악치료사 자격증도 따면서 열심히 살던 어느 날, 교통사고까지 당했습니다.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 된 거죠.

하지만 태희 씨는 포기하지 않았답니다. 재활치료를 받던 중 남북코디네이터 모집공고를 접하게 됐고 불편한 몸으로 면접까지 봤는데요. 그곳이 바로 경남 창원에 있는 한 초등학교였던 겁니다. 어엿한 선생님으로 창원에 왔지만 당시 태희 씨의 수중에는 27만원, 250 달러가 전 재산이었기 때문에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보냈는데 일주일쯤 되니까 그 돈마저 떨어져 갔던 거죠. 태희 씨는 숙식이 가능한 한 교회에 들어가 청소 일을 해주며 지냈다고 합니다. 월급을 모아서 3개월 후엔 방을 얻을 수 있었다는 태희 씨, 아무리 힘들고 가슴 아픈 사연이라도 지나가면 다 추억이 된다면서 이야기를 들려줬는데요. 그 모든 어려움들을 이겨내고 자신의 이름으로 학원을 차렸으니까 더욱 감회가 남달랐던 것 같아요.

김인선: 네. 김태희 씨의 눈물이 어떤 의미였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네요. 그런 어려운 과정을 겪은 후에 음악 학원을 차렸다고 했는데요. 음악 학원을 할 정도라면 북한에서도 이미 수준급의 실력이었을 것 같아요.

마순희: 네. 평양 출신의 김태희 씨는 첼로를 전공한 음악 교원이었던 만큼 기본적인 실력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북한 대학에서는 어떤 악기를 전공하던 12개 악기의 독주곡을 연주할 수 있어야 졸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피아노, 기타 등 못 다루는 악기가 없었던 거죠. 태희 씨는 12개의 악기 중에 아코디언을 선택했고 대학에서 전문가 수준으로 아코디언을 배웠기 때문에 아코디언 전문 음악 학원을 차릴 수 있었던 겁니다. 태희 씨의 아코디언 실력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까 금시 소문이 났고 이제는 창원에서뿐 아니라 진주, 진해, 밀양 등 경상남도 곳곳에서 그녀를 찾아온다고 하네요. 그리고 또 하나의 사연이 있는데요. 탈북과정에서 헤어진 큰 딸과 아직 연락이 닿지 않고 있는데 딸이 태희 씨의 아코디언 연주 소리를 무척이나 좋아했었다고 하더라고요. 딸에 대한 그리움과 딸을 찾고자 하는 마음도 김태희 음악학원에 담겨 있는 것 같았습니다.

김인선: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 학원이라 잘됐으면 좋겠는데, 사실 살짝 걱정되는 건 한국에서 아코디언이 대중적인 악기가 아니잖아요. 수강생들이 많이 있을까요?

마순희: 처음에는 학원생이 몇 명 안 되어서 전단지를 직접 붙이러 다니기도 했다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은 학원생이 40여 명으로 늘었다고 해요. 북한에서는 아코디언을 손풍금이라 하고 대중적으로 많이 선호하는 악기인데요. 한국에서는 주로 어르신들이 배우고 싶어 하더라고요. 김태희 음악 학원에 오시는 분들은 거의가 정년퇴직하신 분들이거나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아코디언을 연주하다 보면 마음도 즐거워지고 또 머리도 쓰고 손가락도 움직여야 해서 치매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하니까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아요. 그래도 요즘엔 젊은 사람들도 하나 둘 늘고 있다고 하네요. 교재도 태희 씨가 직접 제작한 것이었는데 초판이 다 팔려서 재판을 해야 한다고 하니 학원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태희 씨는 얼마 전부터 기타 전문 강사로 초빙되면서 지역의 복지관과 평생교육원에서 교육생들에게 기타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김태희 원장은 2008년 하나원을 나오면서 계획했던 목표들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고 있는데요.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나누고 도와가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그녀의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일 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태희 씨는 아코디언 교본을 만들어 누구나 쉽게 아코디언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데요. 자신의 제자들이 아코디언 연주를 하고 자신은 지휘를 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무엇이든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합리적인 해결 방도를 찾고 악착같이 실천해 나가는 김태희 씨의 또 다른 도전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김인선: 자신의 재능과 적성을 찾아 과감한 결단으로 새로운 삶을 산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그런데도 김태희 씨는 늘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태희 씨의 또 다른 도전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탈북민들의 성공과 그 기준에 대해 들어보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음악학원 원장, 김태희 씨의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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