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의 파수꾼, 김치사업가 고영훈 씨(1)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1-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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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들의 파수꾼, 김치사업가 고영훈 씨(1) 서울의 대형마트에서 가정간편식을 둘러보는 시민.
연합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선생님, 혹시 돌밥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마순희: 돌밥이라고 하면 혹시 돌이 섞여 있는 밥이라는 뜻인가요? 북한에 살 때 쌀 씻으며 아무리 잘 일어도 가끔 밥에서 돌이 씹히는 돌밥이 됐던 기억이 나는데요. 혹시 돌이 섞여 있는 밥이 한국에도 있나요?

 

김인선: 아니요. 남한에선 '돌아서면 밥'이라는 단어를 줄여서돌밥이라고 하는데요. 지난해 만들어진 신조어라고 할 수 있어요. 코로나비루스 장기화로 학생들이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게 되면서 아이들의 식사를 챙겨주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부들의 일상을 반영한 말인데요. 요즘돌밥을 차리느라 바쁜 주부들을 보고 가족의 건강을 챙기는 파수꾼이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돌밥이라는 단어와 연관된 분일 지는 모르겠지만 탈북민 중에서도 파수꾼의 역할을 하는 분들이 있겠죠?

 

마순희: . 맞습니다. 탈북민 중에도 그런 파수꾼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김치사업을 하시는 대표님이면서 탈북민 자립지원협의회 회장이기도 하시고 예술단 단장이기도 한 고영훈 씨입니다. 오늘 성공시대를 통해서 탈북민들의 파수꾼, 고영훈 씨에 대한 성공사례 전해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인선: 감투가 정말 많으시네요. 역량이 얼마나 큰 분일지 기대되는데요?

 

마순희: . 고영훈 씨는 하루가 짧게 느껴질 정도로 해야 할 일이 많은 분이랍니다. 김치사업가로 해야 할 일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요. 영훈 씨가 계신 곳은 경상남도 김해 쪽인데요. 지역에서 김치사업가로 나눔 봉사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지난해 연말에도 코로나비루스 극복을 위한사랑의 김치 나눔행사로 지역아동센터에 100kg의 김치를 전달했다는 소식을 주변 지인을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고영훈 씨는 김치공장 사장 일만이 아닌 지역의 북한이탈주민 자립지원협의회 회장으로 사회봉사는 물론 문화와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통일 안보 교육도 하고 탈북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치과 등 병원들과의 협약을 맺기 위한 노력도 합니다. 거기에 예술단 단장직까지 맡고 있다 보니 한가할 새가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고영훈 씨는 요즘도 하루가 언제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고영훈 씨는 요즘도 하루가 언제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김인선: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24시간이지만 그 사용은 천차만별인데요.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깊이와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고영훈 씨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부터 특별한 분이었는지, 남한에 와서 새 삶을 살게 됐는지 궁금해지는데요?

 

마순희: 고영훈 사장은 처음부터 특별한 분은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와서야 비로소 하고 싶은 일들을 마음껏 하면서 특별한 분으로 기억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영훈 씨의 고향은 함경북도 명천군이었습니다. 보안간부학교를 졸업하고 지방에서 간부로 사업하시던 아버지 덕분에 힘들게 살지 않았던 영훈 씨였는데 고난의 행군 시기에 아버지가 갑자기 지방으로 추방되시는 바람에 탄광에서 3년 정도 최하층 생활을 경험하면서 어려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재과 업무를 맡아 하면서 생활이 어려워지자 직장과 가정을 위해서 물물교환 같은 일을 하다가 비사회주의 검열에 걸려든 것이었습니다. 2000년 처음 돈을 벌어 온다고 중국으로 갔다가 6개월 만에 도로 잡혀 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인선: 잠시만 가서 돈을 벌어오겠다고 중국으로 향한 탈북민이 정말 많더라고요. 하지만 탈북 여성들의 경우 인신매매로 팔려 가서 원치 않은 결혼을 하게 되죠. 자식을 낳아도 제대로 된 신분보장을 받으면서 지내지 못하고 숨어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요. 탈북 남성들의 삶은 어땠을까요?

 

마순희: 탈북 남성들의 중국생활도 결코 여성들과 다를 바 없이 힘들기는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여성들은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래도 그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는 가족으로 신변을 숨길 수는 있었거든요. 그러나 남성들은 사정이 달랐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농촌이나 벌목장 그리고 건설현장 같은 곳에서 힘든 일을 하고서도 정작 급여를 받을 때가 되면 구실을 대 가면서 급여를 밀리기 일쑤고 강하게 요구하면 불법체류자로 신고를 해서 잡혀 가기도 한다고 합니다. 영훈 씨 역시 중국 농촌에서 숨어 살면서 일을 가리지 않고 삯일을 하면서 머슴 아닌 머슴 노릇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숨어 살던 영훈 씨였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신변의 위험 때문에 나 죽었다 하고 살아가면서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고 다 했었는데 어느 날 한 동네에 살고 있는 조선족이 자기 집 송아지가 없어졌다며 밤중에 당장 소를 찾아달라고 했던 겁니다.

 

아무리 남의 일을 해 주는 사람이라고 해도 캄캄한 밤중에 산속에 가서 송아지를 찾아오라는 무리한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고 하자숨어사는 주제에 하라면 할 게지 뭔 구실이냐고 반말질에 손찌검까지 하더랍니다. 영훈 씨도 맞받아 주먹을 날렸고 결국 그자의 신고로 공안에 잡혀가게 되었고 북송되었습니다. 감옥에 들어간 지 3개월 만에 풀려났는데 온 몸이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망가져서 가석방된 것이었습니다. 영훈 씨는 몸이 추서자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죄송하다고 용서를 빌면서 다시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힘들긴 했지만 중국에서 돈을 벌어봤기에 북한을 다시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3년 정도 지내면서 한국에 대해 알게 됐고 한국에 가면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면서 중국의 고단한 생활을 뒤로하고 4개국을 거쳐 2008년 드디어 대한민국에 오게 됐습니다.

 

김인선: 마지막으로 잡아보는 희망의 끈으로 선택한 곳이 바로 이곳, 한국이었을 텐데요. 고단했던 중국 생활과 달리 한국 생활은 수월했을까요?

 

마순희: . 중국에서 지낸 시간이 마음을 다잡는데 도움을 줬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어렵게 한국까지 오게 된 영훈 씨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게 된 것이 너무도 감사했고 당당하게 느껴졌기에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초기에는 일자리를 찾으면서 하루 단위로 일을 하고 노임을 받는 일용직으로 일을 했습니다. 청소일, 공사장 일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일을 했다고 하는데요. 짬짬이 자신보다 더 어려운 탈북민들을 돕는 봉사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언제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먼저 찾는 사람이 영훈 씨라고 탈북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3-4년 동안 꾸준한 봉사를 하는 영훈 씨의 모습에 지역 사람들은 정의감이 강하고 자신보다 이웃을 더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그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기에 2011, 지역에서 처음 탈북민 자립지원협의회를 조직하면서 영훈 씨를 회장으로 추천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영훈 씨는 회장으로서 탈북민들의 정착을 위해 취업과 의료, 생활 전반을 도와주는 활동을 하고 있고 북한의 문화를 알리고 일자리 창출도 할 수 있는 예술단도 만들어서 탈북민들의 정착과 취업에도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김인선: 보통은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이나 탈북민들의 정착지역에서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하나센터를 통해 취업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받고 일자리를 찾는 일을 가장 먼저 하잖아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고영훈 씨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들을 찾고 헌신을 하는 남들과 다른 길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마 선생님께서 고영훈 씨를 탈북민들의 파수꾼이라고 표현한 이유를 알 것 같은데요. 못 다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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