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바꿀 수 있다, 공무원 송은수 씨(1)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9.09.19
exam_prep-620.jpg 서울 노량진의 한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 학원에서 수험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지난주 13일이 추석이었잖아요. 연휴 잘 보내셨어요?

마순희: 네, 잘 보냈습니다. 세 딸과 함께 한국에 와서 금년에 열여섯 번째 추석을 맞게 되는데 한 해, 한 해 살아가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좀 더 안정되고 의미 깊은 명절을 보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저희 가족은 해마다 거의 연례행사처럼 통일전망대에 가서 멀리 북녘 고향을 우러러 차례를 올리는 것으로부터 연휴를 시작한답니다. 딸들과 사위, 손자, 손녀, 그리고 조카들까지 대가족이 모이죠. 가족과 함께 있지만 또다른 가족 생각에 저 멀리 북녘 땅을 바라보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사실 얼마 전에 저는 고향에 한 분 남아 계시던 오빠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향을 떠나기 전 한 번이라도 뵙고 떠날 걸, 마지막으로 오빠의 목소리라도 한번 더 들어볼 걸 하는 회한이 마음 속에 가시처럼 박혀서 내려가지 않아서 그리운 마음이 더 절절했던 추석이었네요. 언제쯤에나 부모, 형제들이 영면하고 계시는 북한에 가서 술 한 잔 부을 수 있을까요? 요즘엔 그래서 밤잠도 설치게 되더라고요.

김인선: 명절엔 유독 가족이 그립죠. 제가 괜히 지나간 추석 이야기를 꺼냈나봐요~

마순희: 아니에요. 금년 추석, 저는 더 추억이 많은 추석이 되었답니다. 우선 연휴가 길다 보니 가족과도 시간을 보냈고요. 마지막 2일은 한 탈북민 단체에서 조직하는 추석 위로 행사에 참여했습니다. 한국에 혼자 오셔서 외롭게 추석명절을 맞이하는 탈북민들을 위한 1박 2일의 경주 문화탐방 행사였습니다. 김유신 장군묘, 무열왕릉, 첨성대 등 역사적인 유적들을 관람했고 유명한 호텔에서 1박도 했습니다. 덕분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울적했던 마음이 확 날아간 기분이 들었습니다. 추석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오늘의 주인공을 서둘러 소개해 드릴게요. 오늘은 경기도 광명시청에서 근무 중인 시청 공무원 송은수 씨에 대해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김인선: 공무원이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맡아보는 사람이잖아요. 남한에선 인기직업 1, 2위를 다투는 게 바로 공무원이거든요.

마순희: 그렇죠. 그런데 남한에서만 인기직업이 아니라 북한에서도 역시 인기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무원을 북한으로 따지면 인민위원회, 행정위원회에서 일보는 사무직, 간부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마디로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란 거죠. 하지만 공무원이 되는 과정은 남북의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공무원 시험을 통과하면 누구든 가능한데요. 제일 직급이 낮은 9급 공무원 시험을 보려면 만 18세 이상이어야 하고, 그 다음 7급 공무원부터는 만 20세 이상이 되어야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북한에선 해당 기관장이 임명하는 형식인데요. 당 조직의 사전심사와 비준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제가 있을 때에는 비준과정을 통과하면 동사무소 지도원, 과장, 행정위원회 혹은 인민위원회 무슨 지도원, 책임지도원, 무슨무슨 과장 이런 식으로 근무를 했습니다. 북한에서도 생산직 공장기업소에 다니는 것보다 각급 기관들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들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온 탈북여성들을 대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사무직이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그만두고 싶을 때까지 일할 수 있고 정년(60세) 퇴직을 하더라도 연금이 나와 노후 걱정이 없어서 더 인기있는 직업이더라고요. 연금이라는 것이 공무원으로 10년 이상 재직하고 퇴직을 하는 경우 받게 되는 돈인데 매달 급여처럼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김인선: 맞아요. 그래서 남한에선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고요. 미국 LA타임즈에 ‘한국에서 9급 공무원 되기가 하버드대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실린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경쟁률이 높은 공무원을 송은수 씨는 어떻게 해냈을까요?

마순희: 탈북민들 역시 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기는 하지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송은수 씨의 사례를 보면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는 말이 맞는 것 같은데요.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가장 기초적인 공부부터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송은수 씨는 2009년에 한국에 입국했는데 그때 나이가 20대 후반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배정 받은 주택이 나오지 않아서 임시로 교회의 시설에서 지내게 되었는데요. 북한에서 대학을 다녔던 은수 씨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교회에 있는 컴퓨터로 자기 스스로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고 합니다. 비록 교회에서 거리가 멀기는 해도 성수동에 있는 컴퓨터학원에서 교육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 학원에 전화를 걸어 등록까지 했습니다. 그런 은수 씨를 보고 교회분들도 깜짝 놀랐답니다. 교회에 온 지 하루 만에 스스로 학원을 찾아 낸 것도 대단하고 공부하겠다는 그 열정도 대단하다면서 뭘 해도 잘 할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학원에서 배운 것이 전산 세무회계에 대한 것이었답니다. 그런데 은수 씨는 회계는커녕 컴퓨터도 초보였으니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죠. 은수 씨가 아무리 노력해도 늘 반에서 꼴찌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은수 씨는 낙심 대신 자신보다 어린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배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남들이 쉬는 시간에도 먼저 시간에 배운 것을 다시 익혀 나갔습니다. 보통 6개월간의 교육을 마치고 자격증 시험을 치르는데 은수 씨는 교육이 끝난 후에도 2개월을 더 연장해서 배운 후에 자격증시험에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준비했는데 보기 좋게 불합격됐어요. 하지만 은수 씨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공부를 하고 두 번째에 자격증시험에 합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격증을 가지고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당당하게 회사 사무실에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사실 직장생활을 시작해보면 자격증보다 실무경험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마순희: 맞습니다. 경력이나 실무능력이 전혀 없었던 그에게는 당장 업무는 고사하고 사무실의 사무용품 하나하나도 낯설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주저앉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가짐으로 직원들 커피도 타다 주고 심부름도 하고 아침이면 남들보다 더 일찍 나와서 사무실 청소도 말끔히 해 놓곤 했답니다. 업무가 서툰 은수 씨에게 곁을 안 주던 동료들도 점차 마음을 열게 되고 업무도 하나하나 익혀 나가다 보니 어느 순간 하루하루의 회사생활이 보람차게 느껴지게 되었다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체력적으로 힘들더랍니다. 은수 씨가 배정 받은 집이 경기도 광명시인데 회사는 서울 성수동 쪽이라 출퇴근하는데 3~4시간이 꼬박 걸리거든요.

거리상 문제로 고민하던 그때, 은수 씨의 신변을 보호해주는 담당 형사님이 북한출신 공무원 모집이 있다면서 응시해 보라고 권고하더랍니다. 지역마다 자체적으로 정책을 펼칠 수 있는데 경기도에선 탈북민 정책에 많이 신경 써 주는 것 같습니다. 2008년 전국 자치단체 중 최초로 탈북민을 계약직공무원으로 채용했고요. 2014년 6월말 기준으로 총 41명의 탈북민을 다양한 분야에 채용했다고 언론 기사에 나기도 했습니다. 경기도의 경험이 일반화되면 우리 탈북민들의 취업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인선: 네. 남한 정부 차원에서 탈북민이 300명 이상 거주하고 있는 지자체에서는 탈북민 공무원을 채용하도록 방침을 정했기 때문에 탈북민 공무원은 앞으로 꾸준히 늘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서 탈북민을 공무원으로 2008년에 처음 채용했다고 했는데요. 송은수 씨는 2009년에 한국에 왔습니다. 정착한지 얼마 만에 공무원이 됐을까 궁금한데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마순희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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