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억척 아줌마, 편의점 사장 장은진 씨(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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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억척 아줌마, 편의점 사장 장은진 씨(2) 사진은 마스크와 페이스 실드를 착용한 편의점 직원이 고객에게 상품을 안내하는 모습.
연합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장은진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은진 씨는 24시간 운영하는 상점인 편의점 사장님인데요. 3개의 점포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편의점 주인이지만 은진 씨도 정착 초반엔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겪고 어려움도 많이 겪었잖아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북한에 두고 온 자녀들을 한국으로 데려올 생각에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했지만 튀는 말투와 눈에 거슬리는 일을 보면 참지 못 하는 성격인 탓에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고정된 일자리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에 장은진 씨는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따고 어렵다는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취업이 마음처럼 쉽지 않아 결국 일한 만큼 돈을 받는 일용직이나 부업 형태로 근무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아글타글 번 돈은 모두 북한으로 보냈지만 자녀들 앞으로 가면 은진 씨가 보낸 돈의 반도 안 되기에 늘 부족했습니다. 예를 들어 은진 씨가 한 달 꼬박 일해서 번 돈 중에 100달러를 북쪽으로 보내면 중간과정에서 떼는 비용이 많아서 50달러는 고사하고 2-30 달러 정도만 가족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김인선: 맞아요. 그래서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다.. 라는 표현을 하셨잖아요?

 

마순희: . 힘들게 돈을 보내도 모두 전해지지 않으니 북한의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늘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은진 씨는 한국으로 아이들을 데려오는 것이 방법이라 생각하고 더 억척스럽게 일했습니다. 가리지 않고 일을 했고, 그러던 중 탈북민 단체에서 일하는 한 지인의 소개로 24시간 운영하는 상점인 편의점 부업을 소개받았습니다. 그때까지도 은진 씨는 편의점이 뭐하는 곳인지도 몰랐다고 하는데요. 일해 보니까 의외로 적성에 잘 맞았다고 합니다. 상점을 깨끗이 하고 상품을 진열하고 손님이 골라온 물건을 계산만 해주면 되니까요.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고 식당이나 회사처럼 연장 근무도 없어서 은진 씨는 편의점 일이 좋았다고 하는데요. 무엇보다 일한 시간만큼 로임을 받고 교대자가 오면 바로 퇴근이 가능해서 다른 일을 추가적으로 더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편의점 부업 후에 은진 씨는 식당에서도 시간제로 일하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고향에 남아있는 자녀들을 데려오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말이죠. 

 

은진 씨는 집과 일터만 오가며 매일매일을 비슷하게 지내왔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부터인가 은진 씨에게 관심을 보인 남성이 생겼습니다. 그분은 바로 지금의 남편인데요. 처음에는 편의점에 찾아온 점원과 손님 사이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 마음이 통했고 친한 친구로 지냈다고 하네요. 자식들만 생각하며 억척같이 살아온 은진 씨였지만 가끔은 속상할 때도 있었고 힘들 때도 많았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은진 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친구가 바로 지금의 남편이었습니다. 은진 씨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생긴 거죠. 지금도 은진 씨는 자신이 정착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된 사람을 꼽으라면 서슴지 않고 바로 남편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김인선: 지금까지 혼자의 몸으로 한국생활을 버텨왔는데 은진 씨에게 큰 위안이 됐겠어요.

 

마순희: . 남편은 혈혈단신이었던 은진 씨의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남한생활과 문화에 대한 믿음직한 조언자요, 길잡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로 시작되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사랑하는 연인 사이로 발전했습니다. 생활력이 강하면서도 성실하고 소박한 은진 씨를 시부모님이 더 좋아했다고 하더라고요.결국 두 사람은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부부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손님과 결혼까지 하는 건 드라마 같은 데에서나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탈북여성분들에겐 가끔 있는 일이네요. 그런데 결혼과 함께 심리적, 경제적 안정을 찾았어도 하던 일 열심히 하는 게 또 우리 탈북여성들이잖아요. 은진 씨는 어땠나요? 

 

마순희: , 은진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결혼 후에도 은진 씨는 편의점에서 계속 일했는데요. 1년 반 정도 근무하니까 어느 정도 편의점에 대한 파악이 생기고 자신의 점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탈북민 지원단체의 창업지원을 받게 되더라도 창업비용의 절반은 본인이 부담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모아둔 돈이 어느 정도 있거나 대출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요. 은진 씨가 편의점을 운영하고 싶다는 그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남편과 시댁 어르신들입니다. 은진 씨는 가족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편의점을 차릴 수 있었고 자신의 점포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일을 하게 됐습니다. 결과는 매출로 이어졌는데요. 얼마 후에는 그렇게 데려오고 싶던 사랑하는 두 자녀들도 모두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은진 씨의 편의점이 잘 되면서 조금 더 욕심을 내 지금은 세 개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은진 씨는 점포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라고 하는데요. 그만큼 수입은 더 짭짤하겠지요?

 

김인선: 수입이 늘었지만 혼자서 세 개의 점포를 관리하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요. 더구나 편의점이 24시간 운영하는 상점이다 보니 일손도 필요할 테고요. 장은진 씨가 일자리 창출에도 한 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마순희: , 맞습니다. 은진 씨는 이왕이면 같은 탈북민들에게 부업의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마음 같지 않더랍니다. 직원을 구한다고 해도 지원하는 사람 중에 탈북민은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지방이라 탈북민이 적은 탓도 있겠지만요. 한 번은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다는 여성을 부업하는 사람으로 채용했었는데 며칠 일하더니 연락도 없이 일하러 나오지 않더랍니다. 웬일인지 싶어서 전화를 해 보았더니 서울에 일자리가 있어서 올라갔다고 하더래요.

 

김인선: 저도 가끔 탈북민들을 고용했다가 말없이 그만두는 경우들이 가끔 있다는 얘기를 저도 들었거든요. 그런 것들이 탈북민들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으로 작용할 수가 있잖아요.

 

마순희: 그래서 저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아무래도 짧은 시간에 빨리 돈을 벌어서 가족을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뿐이라서 그런 예의를 차려야 한단 생각을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급했던 거죠. 은진 씨의 경우에도 그 탈북여성이 서울에 간 것이 아니라 먼저 정착한 선배의 소개로 일당이 훨씬 높은, 좀 안 좋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서 갔던 거였으니까요. 사실 편의점 부업은 최저 임금 적용으로 시간당 만원(9달러)도 안 되는 거라 급여만 보면 높다고 볼 수는 없잖아요? 그래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인데 자신의 선의를 알아주지 못 하는 그분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은진 씨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자신에게도 그런 유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식들을 데려오겠다고 돈을 벌면서 자식들 앞에 떳떳치 못 한 엄마로 살고 싶지는 않았었다고요. 그래서 은진 씨는 탈북 후배들에게도 부지런히 열심히 일하라고 권고하고 싶다고 합니다.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번다고 유흥업소에 인도하는 나쁜 선배의 유혹에 빠져서 성실하게 일하려 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면서 저만 부지런하면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합니다. 지금 은진 씨는 세 개의 점포를 운영하면서 그 지방 도시에서는 꽤 유명한 인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은진 씨의 사례를 통해서 탈북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어떻게 잘 정착해 나가는가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맞습니다. 요령 피우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거든요. 각자의 위치에서 오늘을 잘 살아가야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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