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민의 우울증 탈출기(2)
2025.01.09
안녕하세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진행을 맡은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샘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지난 주, 이샘 씨는 자신이 세운 목표와 계획을 하나하나 이루어내는 멋진 분이라고 하셨죠?
마순희: 네. 이샘 씨는 중국에서 불법 체류자로 10년을 살다가 2006년 8월 한국에 입국한 분인데요. 마음의 병을 이겨내고 이제는 다른 탈북민들의 마음을 챙겨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샘 씨는 처음 대한민국 국민임을 증명하는 주민등록증을 받으면서 희망찬 한국 정착을 다짐했는데요. 각오와는 다르게 대인기피증과 극심한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준 고마운 분이 계셨는데요. 교회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매일같이 이샘 씨의 집 문을 두드렸고 맛있는 밥을 사 주면서 이샘 씨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고, 이샘 씨는 자연스럽게 점점 교회와 가까워졌습니다. 종교 활동을 하면서 이샘 씨는 탈북자여서 원망스럽던 자신의 인생이 탈북에 성공하고 신앙적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은 것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를 점차 깨닫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생각의 전환점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샘 씨는 점차 사회에 한 걸음씩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자신을 진심으로 이해해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그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고 노력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샘 씨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마순희: 맞는 말씀입니다. 북한에서는 교회에 대해 안 좋은 교육만 받아 왔던 터라 이샘 씨도 처음엔 쉽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분의 정성과 성의를 마다할 수 없어서 조금씩 마음을 열고 배워 나가며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심적으로 위로도 받고 큰 힘이 되었기에 이샘 씨는 하나님을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대학에 들어가 신앙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지식의 벽 앞에 좌절했고, 생활비 마련을 위해 들어간 생산 노동 현장에서는 밀려났습니다. 야근에 무리한 밤샘 작업까지 하다 보니 몸이 견뎌내지 못했는데요. 그렇게 허약한 체질로는 감당이 안 되는 현장이었습니다. 수없이 울고 수없이 좌절하면서도 이샘 씨는 한 걸음, 한 걸음 말 그대로 버텨 나가는 시간들로 하루하루를 채워갔는데요. 그런 이샘 씨에게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가 조언을 해줬고 그 덕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어떤 조언이었을까요?
마순희: 네. 친구의 조언은 “너는 왜 벽을 문처럼 밀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진짜 문을 찾아야지, 네가 하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 찾아봐”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에 이샘 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때까지는 자신이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한심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샘 씨는 그래서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어느 한곳에 소속되는 일을 하지 않고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프리랜서로 활동했습니다. 체력이 뒷받침되는 선에서 기회가 주어지는 일, 관심 있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임했는데요.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부업을 하는 일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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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샘 씨는 방송국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발견했습니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고 자신의 목소리로 방송국 녹음실 안에서 작업할 때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는데요. 그러면서 자신의 오래된 꿈이 작가였다는 사실도 기억해 냈다고 합니다. 또 한 민간단체의 남북합창단 성원으로 참여하면서 이샘 씨는 한 걸음, 한 걸음 사회에 나올 수 있었는데요. 앞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며, 10년 후, 20년 후 되고 싶은 자아상이 무엇인지 손으로 적으며 꿈을 그리기 시작했고, 오래전부터 품어 왔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김인선: 한때 마음의 병을 앓았던 이샘 씨가 맞나 싶을 만큼 내면이 많이 단단해진 것 같은데요. 그런 이샘 씨의 모습이 그대로 글로 담기지 않을까요?
마순희: 맞습니다. 이샘 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전자책으로 <탈북자, 나를 발견하다>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이샘 씨는 함경북도 출신인데요. 그녀의 아버지는 1960년대 일본 니이가타 항에서 만경봉호를 타고 북한에 들어오신 재일교포 2세셨습니다. 그녀가 한국에 와서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졸업하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오랜 병환 끝에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은 이샘 씨를 버티고 있던 나무 밑동을 송두리째 잘라 버리는 것과 같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비현실적이고 거짓말 같아서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다고 하는데요. 자신이 눈물을 흘리면 정말로 아버지의 부재를 인정하는 것 같아 울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속에 담고 살아가던 이샘 씨는 몇 년 후 우연한 기회에 한국의 유명한 작가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샘 씨의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 싶은데 인터뷰에 응해 줄 수 있느냐는 제의였습니다.
처음에는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망설였지만 이번 기회에 아버지의 억울한 인생을 보상하고 살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샘 씨는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이샘 씨는 아버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엔 아버지가 왜 술만 마시는지, 무슨 불만이 그리도 많아 화를 내시는지, 때때로 바닷가에 앉아 왜 하염없이 담배만 피웠는지 알 수 없었는데 자신이 고향을 떠나 이남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보니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샘 씨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 순간부터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마치 뿌리 없는 나무에 새순이 뻗어 나가서 뿌리가 자라게 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3년, 이샘 씨의 아버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책 <세 번째 집>이 발간되었는데요. 이샘 씨는 이 책을 통해서 남한과는 전혀 다르게 살아온 북한 사람들의 인생을 인정해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독자들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김인선: 이때부터 이샘 씨가 작가에 대한 꿈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거군요.
마순희: 맞습니다. 이경자 작가를 통해 아버지의 이야기를 책으로 소개할 수 있었던 이샘 씨는 직접 집필을 시작했고, 앞서 언급했던 <탈북자, 나를 발견하다>라는 전자책이 2021년에 발간되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이샘 씨는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며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같은 탈북민들에게 조언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간혹 북에 있는 가족들의 요구에 부합하기 위해서 1년에 수천 달러가 넘는 돈을 보내면서 본인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북에 있는 가족을 외면하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혹사시켜 희생해 가면서까지 필요 이상의 돈을 반드시 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길 부탁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어야 가족도 있다고, 그러니 먼저 자기 자신부터 사랑해야 한다는 이샘 씨입니다.
이샘 씨는 지금 다른 탈북민들의 어려움을 상담해 주고 치유해주는 상담사로 근무하고 있는데요. 2017년부터 비영리 사단법인 단체인 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 줄여서 ‘여인지사’라는 곳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탈북 여성들을 찾아내어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이샘 씨는 한 달 정도 프랑스와 이탈리아, 스위스와 제네바 등 유럽의 여러 국가들을 배낭 하나 메고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는데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여행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샘 씨는 탈북자인 자신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말하는데요. 통일을 준비하는 사명자라는 자부심을 안고 오늘도 행복한 출근길을 이어가는 이샘 씨의 힘찬 내일을 응원합니다.
김인선: 마음의 병을 앓으면서 힘든 일도 겪었지만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게 된 이샘 씨인데요. 청취자 여러분도 그녀처럼 스스로를 아끼고 자신의 가치를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마순희의 성공시대. 진행에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