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제2의 정주영을 꿈꾸는 프로 농사꾼 (1)

서울-김인선 kimi@rfa.org
2024.07.04
[마순희의 성공시대] 제2의 정주영을 꿈꾸는 프로 농사꾼 (1) 마늘밭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여느 해보다 빨라진 장마에, 폭염까지 더해져 올여름 폭우와 폭염 걱정이 더 커졌는데요. 사실 농민들만큼 걱정이 큰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탈북민들 중에도 영농생활 하시는 분들 많으시잖아요?

 

마순희: , 맞습니다. 우리 탈북민들 중에 영농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성공적으로 농촌에 정착해서 지역사회를 빛내는 많은 분들의 사연이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 여러 매체에서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탈북민들 중에도 오리목장이나 염소목장을 하는 분들, 논농사, 밭농사, 그리고 복숭아나 사과 등 여러 가지 과일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 참 많은데요. 그분들 중에서도 오늘은 영농인 유옥이 대표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유옥이 대표님은 2004년에 한국에 입국해서 2010년에 귀농을 한 분으로 지금은 2 5천여 평의 면적을 가진 마늘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김인선: 장마 시작과 함께 수확을 할 때라 그 어느 때 보다 옥이 씨가 바쁠 것 같은데요

 

마순희: 맞습니다. 보통 농촌에는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옥이 씨네 마늘농장은 그래도 양호한 편이라서 시기에 맞춰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옥이 씨가 살고 있는 곳은 충청북도 인데요. 충청도에서는 보통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마늘 수확을 한다고 합니다. 요즘엔 비가 자주 와서 걱정도 되었는데 다행히 옥이 씨네 농가에서는 마늘 수확을 이미 다 끝내고 건조기에서 출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와 비교할 때 올해는 이상기후 속에서 생산량이 줄고 소비심리까지 위축돼, 마늘값이 떨어지진 않을까 농민들의 걱정이 크다고는 하는데요. 옥이 씨의 경우 크게 타격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흔히 영농기의 일손 문제나 생산품의 판로 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옥이 씨처럼 영농법인으로 10년 넘게 해 오신 분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옥이 씨의 경우에는 마늘농사 이외에도 해마다 그 해에 주목받을 수 있는 작물들을 함께 경작하고 있어서 마늘 생산량이 덜하거나 가격이 다소 떨어지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보완이 가능합니다. 한 마디로 유옥이 대표에게는 어떤 상황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거죠. 무엇보다 예전엔 수확 시기 때 마늘을 한꺼번에 사가서 저장을 해 놓고 먹는 소비자들이 많았지만, 점차 소비하는 방법이 달라지면서 지금은 필요할 때마다 소량을 조금씩 사서 먹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발 벗고 나서서 마늘 팔아주기 운동을 하기도 하고, 농가마다 개별적인 판로 확대에도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에 판매의 어려움은 크게 없다고 합니다. 옥이 씨네 농가에서는 직접 만든 유기농 퇴비로 마늘을 생산하면서 청정 마늘이라는 상품성을 인정받았고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탄탄한 판로가 확보된 상황이기에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김인선: 퇴비를 자체 개발해서 마늘을 생산하고 있을 정도면 옥이 씨의 농사 실력과 영농지식 수준이 상당히 높을 것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데요. 내공을 쌓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의 땀방울을 흘렸을까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옥이 씨도 처음부터 성공적인 영농인의 길을 밟았던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사실 유옥이 씨에게는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고요. 영농인으로 성장하는 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습니다. 부푼 꿈을 안고 남편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충청북도로 내려 왔을 때에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막막했다고 합니다. 충청도에 자신의 집이 있고 농촌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는 남편의 말을 듣고 옥이 씨는 멋진 전원주택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딴판이었기 때문입니다. 막상 도착해서 보니 전원주택은커녕 낡은 집 한 채가 전부였고 사업이라는 것도 개를 사육해서 판매하는 건데 사업이라고 말할 정도도 못 되었다고 합니다.

 

김인선: 지금의 남편이 감언이설로 옥이 씨를 꾀어낸 건가요?

 

마순희: 사실 그렇게 말할 수도 없습니다. 옥이 씨가 남편의 말을 듣고 상상을 했던 것이었으니까요. 사실 남편은 충청도에 집이 있다고 했지, 그 집이 전원주택이라고 말한 적이 없었고 사업을 한다는 말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옥이 씨는 상상과는 다른 상황에 처음엔 잠시 당혹스러웠지만 배경이 아닌 사람을 보고 선택한 충청도 행이었기에 금방 마음을 고쳐 먹을 수 있었습니다. 옥이 씨는 남편과 함께 농촌생활을 시작했는데요. 남편의 해왔던 사업, 그러니까 개를 키우는 일은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공감 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고 환경적인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어느 날은 환경청에서 배수로 문제로 악취가 난다며 시설 미비에 따른 벌금이 나왔습니다. 그 일로 며칠을 고생하면서 하수구 공사를 하고 배관을 묻어 놓았는데 밤사이에 누군가가 작업했던 것을 모두 파헤쳐 놓았다고 합니다. 옥이 씨는 개 사육을 반대하는 주변 사람의 소행인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김인선: 많은 동물을 사육하다 보면 종종 주민들과 마찰이 발생하기도 해요.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느냐가 관건인데요. 옥이 씨 부부는 어떻게 풀어나갔을 지 궁금하네요.

 

마순희: . 옥이 씨 부부는 오히려 이 사건에서 교훈을 찾았습니다. 배관 문제를 해결하면 작업했던 것을 다시 파헤쳐 놓는 일이 몇 번 반복되면서 이웃 주민들을 의심하는 대신 남들이 싫어하는 일은 하지 말자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옥이 씨는 개 사육하는 일을 과감히 그만두고 남편과 함께 새로운 길을 모색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한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이 열린다는 말처럼 옥이 씨는 개밥에서 해법을 찾았습니다. 개들에게 남은 음식물을 끓여 먹였던 것에 착안해서 음식물 쓰레기를 이용한 유기질 비료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유기질 비료의 기본은 풀과 음식물 쓰레기를 섞는 것인데, 비율을 달리해 보기도 하고 비닐봉지에 넣어 숙성도 시켜봤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정보도 검색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가면서 자신만의 비법을 만들어 보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전문기술이 부족하다 보니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옥이 씨에게 실패는 성공을 향해 가는 길을 더 단단히 만들어 주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도 처리하고 그것을 이용해서 잡초를 원료로 한 유기농 비료를 생산하는 것이 얼마나 유익하고 중요한 사업인지 알았기에 옥이 씨는 남편과 함께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김인선: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쉽지 않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연구에 매달릴 수 있었다는 건, 사업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는 거잖아요

 

마순희: 그렇습니다. 확신이 있었기에 옥이 씨 부부는 포기하지 못 했고 연구한 지 3년 만에 드디어 유기질 비료를 만드는데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옥이 씨가 성공한 배경에는 옥이 씨의 마음을 사로잡은 드넓은 농경지가 있었습니다. 그 땅에 북한에서처럼 콩 농사도, 옥수수 농사도 해 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농사 정도는 비교적 쉽게 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데요. 농경지를 임대해서 파종하고 물을 주고 풀을 뽑아 주면 얼마든지 잘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농사일도 비료 만드는 일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 자란 옥수수밭에 탁구공만한 우박이 쏟아져 한 해 농사를 망치기도 했고 비가 오지 않아 속을 태운 나날도 많았습니다. 옥이 씨는 이번에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겪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소중한 경험들을 통해 하루하루 농사꾼이 되어 갔습니다.

 

김인선: 하루하루 농사꾼이 되어갔다... 2 5천 평이 넘는 마늘 농사를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했을 지 짐작이 되는데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들어보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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