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10대 소녀엄마의 꿈(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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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민지현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고난의 행군 이후로 북한에서는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중국으로 향했다는 분들이 참 많은데요. 지현 씨도 그런 분들 중에 한 분이었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지현 씨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아직 직장에 들어가기 전이었던 2005년에 중국에 들어갔습니다.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브로커의 말을 믿고 무작정 따라 나섰는데, 돈벌이를 시켜 준다던 브로커의 말은 거짓말이었고 중국에 도착하고 나니 시집을 보낸다는 명목으로 인신매매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지현 씨는 20살, 어린 나이에 한족 남편과 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둘 사이에 아들도 태어났지만 지현 씨는 있는 듯 없는 듯 숨어서 살아야 했고 고향에 돈을 보내야 하는데 경제활동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에 먼저 정착한 4촌 언니와 연락을 하게 되면서 한국 소식을 접했고 불안정한 삶을 사는 대신 한국 국적을 갖고 마음 편히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2009년 9월에 대한민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또래 친구들처럼 한가하게 하고 싶은 대로 놀고 배우고 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지현 씨는 북한의 가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업부터 찾았습니다. 5개월 정도 부업으로 돈을 벌면서 보다 안정된 직장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컴퓨터 학원부터 등록했고 6개월 간의 교육과정을 통해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과 전산회계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김인선: 전산세무회계 관련 자격증은 경리사무원, 조직관리 등에 필요한 중요한 자격증이라 다양한 분야에 취업이 가능해요. 취업정보만 잘 찾아보면 지현 씨가 회사를 선택할 수도 있는 거죠.

벼룩시장으로 스스로 일자리 찾아 나선 탈북민

마순희: 네. 그런데 지현 씨의 경우에는 컴퓨터 학원에서 회사를 연결해 주었는데요. 부품을 조립하는 단순노동을 하는 일자리였습니다. 지현 씨는 자신의 적성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한 주일 만에 그만두었고 누구 소개가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무료로 챙겨볼 수 있는 지역 정보 신문 벼룩시장을 살폈는데요. 거주지 근방에 있는 회사의 구인, 구직 정보가 다양하게 실려 있어서 지현 씨가 원하는 일자리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지현 씨는 벼룩시장 신문에서 구직 정보를 찾다가 회사가 요구하는 조건에 자신이 부합된다는 생각에 무작정 전화를 했습니다. 20대 초반이고 중국어를 잘 하는 것, 그리고 컴퓨터 학원에서 받은 회계사 자격증 등 회사가 요구하는 모든 조건이 자신에게 구비되어 있다는 자신감에서였습니다. 지현 씨는 서류심사와 면접시험을 통해 최종적으로 입사가 결정됐는데요. 의료비용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건강보험을 포함해 안정적인 고용을 위한 4대보험이 보장되는 직장이었습니다.

김인선: 회사마다 인재를 뽑는 기준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부분이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서 작성부터 업무보고 등 컴퓨터로 대부분의 일들을 처리해야 하니까요. 세부적으로 하는 업무에 따라 자격요건이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알면 취업하는데 훨씬 유리한데요. 지현 씨의 경우 두 가지 요건 모두를 충족했으니 바로 채용이 결정될 수 있었을 겁니다. 취업이 수월했던 것처럼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였을까요?

회사에서 탈북민이 겪는 흔한 오해

마순희: 네. 지현 씨 역시 4년간의 중국 생활을 하면서 배운 중국말이 유창하다 보니 면접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웃으며 이야기하더라고요. 지현 씨가 입사한 회사는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면세점이었는데요. 직원들도 60명 중 50여 명이 외국인이었습니다. 입사 초반에는 매장에서 일했지만 얼마 뒤부터는 사무실에서 물품 관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상품명 중 상당수가 외래어라 업무를 파악하기가 힘들었고 간혹 직원들 속에서 북한에서 온 애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사무실에서 근무한다며 이상한 눈으로 보는 일들도 있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습니다. 속상했지만 내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라고 생각하고 하나하나 배워 나가면서 적응해 나갔고 다른 사람의 힘든 모습을 보면 서슴없이 제 일처럼 도왔습니다. 지현 씨의 노력과 성실성을 지켜본 동료들도 하나, 둘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지현 씨는 동료들과 가까워지며 회사생활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일에 막힘이 없을 정도로 편하게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김인선: 너무 일에만 매달려 살다 보면 자기 일이 인생의 전부가 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요즘 한국의 젊은이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일에 매몰된 삶인데요. 일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돈벌이 수단이라는 거죠. 지현 씨도 이제 취미생활도 하면서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는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마순희: 맞습니다. 지금은 일에 집중하는 만큼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있는데요. 처음에는 오직 돈을 벌어서 식구들을 도와야 한다는 마음, 중국에 있는 아들을 위해 돈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일밖에 모르고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학원을 다니면서, 또 회사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많은 친구들도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 어울리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현 씨는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웠고 주변에서 마음이 참 따뜻하다는 호평을 할 정도로 다정다감한 성격이었습니다. 같은 나이 또래 친구들은 그런 지현 씨를 언니처럼 누나처럼 믿고 따르며 때로는 상담이나 조언을 구하기도 한답니다.

김인선: 탈북민들 중에는 잘 지내다가도 문득 느껴지는 감정 때문에 힘들어 하는 분들이 계신데요. 아마 그리움과 외로움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지현 씨는 어땠나요?

중국에서 데려온

8살 아들과 새로운 삶을 꿈꾸다

마순희: 네. 지현 씨도 어린 아들을 중국에 두고 온 엄마였으니까요. 정착 초반에 지현 씨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일에만 몰두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그리움이나 외로움으로 많이 힘들었다고 합니다. 일로, 공부로 악착같이 몇 년을 버텨 낸 거죠. 민지현 씨는 한국에 정착한 지 5년째 되던 2014년에 중국인 전 남편을 잘 설득해 8살 된 아들을 데려왔습니다. 아들은 몰라보게 성장했지만 낯설거나 서먹서먹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사이 한국 국적으로 아들을 만나러 중국에 두 번 다녀왔고, 또 거의 매일이다시피 화상 통화로 전화를 했었던 덕분이었습니다.

아들을 데려 온 후부터 지현 씨는 아들의 한국 정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혼자였다면 쉽지 않았겠지만 하나센터 상담사 선생님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어린이집 하교 후 지현 씨가 퇴근하는 시간까지 방과 후 교실처럼 돌봐주었고 아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덕분에 지현 씨 아들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처럼 말을 하게 되었고 지현 씨는 그 고마움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합니다.

8살이었던 아들은 이제 17살,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자동차에 대해 공부하고 있고 지현 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터넷 상에서 강의를 수강하고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사이버대학에서 4년 간 경영학 공부를 마쳤고 지금도 역시 열심히 회사 생활 중입니다. 최근엔 코로나로 외국인 관광객이 줄면서 다니던 회사를 더 다닐 수 없게 됐지만 경력도 있고 능력이 되다 보니 다른 회사로 이직이 가능했습니다. 앞으로도 아들과 함께 행복하고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하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지현 씨인데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민지현 씨의 앞길에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김인선: 17살 아들이 있는데 지현 씨의 나이는 이제 37살이네요. 얼마든지 연애도 가능하고 재혼도 가능했을 텐데 우선은 자신의 삶보다 엄마의 삶과 직장인의 삶에 집중한 거죠. 어린 나이부터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민지현 씨에게 또 한 수 배웠습니다. 지금 우리는 책임감 있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