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자식 위해 결심한 탈북(2)

서울-김인선 kimi@rfa.org
2022.11.03
[마순희의 성공시대] 자식 위해 결심한 탈북(2) 탈북민 자녀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하나원으로 돌아오고 있다.
/AP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서 정서윤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자식들은 본인보다는 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며 애쓰는 게 부모 심정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대부분의 탈북민들이 그런 마음으로 한국행을 선택한 거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마순희: 맞습니다. 내 자식이 배불리 먹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원 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했으면, 또 출신성분에 상관없이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다닐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고향을 떠나는 것이 우리 탈북민들입니다. 처음엔 중국에 가서 돈을 벌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오겠다는 생각으로 고향을 떠나지만 가슴 아픈 사정이 생기거나, 바깥세상을 알게 되면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없어지기도 하고 중국에서 본 한국드라마와 관광객 등을 통해 북한에서 알았던 것과 전혀 다른 한국에 대해 알게 되면서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는데요. 정서윤 씨는 모든 것이 다 해당됐습니다.  2년 동안 식당일을 하면서 번 돈 대부분을 북한으로 보내고 가족을 위해 헌신했는데 돌아온 건 남편의 배신이었습니다. 다른 여성과 살림을 차리고 서윤 씨가 돌아오면 추방시킨다고 추방자 명단에 올렸던 것입니다. 남편과 북한에 대한 원망과 함께 서윤 씨는 자신이 살아갈 방법은 한국행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윤 씨가 북한으로 돈을 보내면서 한국에서 북한으로 돈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도왔던 일이 한국행을 결심하는데 한 몫을 했습니다.

 

한국 갈 결심한 계기가 남편의 배신?

 

김인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남편의 배신이라는 게 참 씁쓸하네요. 지금까지 서윤 씨는 악착같으면서도 큰 위험 없이 중국에서 버텨왔는데요. 한국 땅을 밟기까지 그런 행운이 계속 이어질 수 있었을까요?

 

마순희: 안타깝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국행은 걸음걸음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목숨을 건 여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심양, 라오스, 태국을 경유하여 오는 동안 수많은 검문을 통과하면서 불안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거듭된 검문에 북송의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는데요. 서윤 씨는 북한으로 송환되느니 차라리 자결하겠다는 결심으로 안전면도날을 늘 가슴에 품고 다녔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 행동을 실현할 뻔 했었던 위험한 상황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하는데요. 버스를 타고 북경으로 가는 도중 함께 동행하던 탈북민 남성이 술에 취해 주사를 부리면서 난동을 피우는 바람에 일행 전체가 위험에 처하기도 했고 그때에는 정말 마지막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2009 1월에 북한을 떠났던 정서윤 씨는 중국에서 2년 넘게 지내다가 2012년에 한국에 입국한 뒤 경기도 수원에 정착하여 지내고 있습니다.

 

두 아들을 데려오겠다는 절박한 목표로 버텨

 

누구에게나 삶의 목표가 있으면 살아갈 힘이 생기는 법이잖아요? 서윤 씨는 북한에 있는 두 아들을 데려오는 게 가장 절박한 목표였습니다. 아들들의 브로커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한민국에서는 자격요건을 갖추어 놓으면 무엇이든지 시작할 수 있다는 주변 분들의 말에 자신도 무엇인가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간호조무사 학원에 등록해 배움에 열중했습니다. 서윤 씨는 중국에서 식당 일 경험, 주방장 일까지 했었기에 한국에 와서도 요양원 식당에서 조리사로 근무했는데요. 낮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밤이면 학원에서 공부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습니다. 서윤 씨는 한국에 온 지 2년 후에 그렇게도 소망하던 큰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게 됐습니다.

 

김인선: 바라던 대로 아들을 데려와서 얼마나 좋으셨겠어요. 그런데 작은 아들까지 데려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나 보죠?

 

마순희: 이번에도 북한의 남편이 문제였습니다. 서윤 씨의 작은 아들을 친정에서 돌봐주고 있었는데 언제 엄마가 데려갈지 모른다며 서윤 씨 남편이 강제로 아이를 데려갔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작은 아들은 함께 데려올 수 없었던 거죠. 작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도 컸지만 한국에 데려 온 큰 아들과 잘 지내는 일이 더 급했습니다. 어느새 스무살 청년으로 훌쩍 커 버린 아들의 모습이 처음엔 낯설었다고 하더라고요. 헤어질 때에는 키가 150cm 정도였던 아들이었는데 몇 년 만에 170이 넘게 훌쩍 커 버려서 내 아들이 맞나 싶었다는데요. 아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상처를 다시 확인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김인선: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선택한 길이었지만, 아이들 입장에선 떨어져 지낸 만큼 엄마에 대한 원망이 있기 마련이죠. 큰아들에겐 어떤 상처가 있었나요

 

엄마를 이해하는 마음 vs 원망하는 마음

 

마순희: 나이가 어려도, 나이가 어느 정도 있어도 마음의 응어리는 있는 것 같습니다. 서윤 씨의 큰 아들은 중국에서 엄마가 고생하면서 번 돈으로 자신이 북한에서 큰 걱정 없이 공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가 자신들을 버리고 떠났다는 생각에 그리움과 함께 원망하는 마음도 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설득으로 한국행을 결심하고 북송의 위험이 도사리는 여정을 자신도 경험하면서 서윤 씨 아들은 엄마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들이 북한을 떠나 태국까지 왔을 때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때 느꼈던 감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는 서윤 씨입니다. 공부만 할 줄 알던 철부지 아들이 전화기를 통해그동안 엄마의 고생과 자신들에 대한 사랑을 가슴깊이 느끼게 되었다고 하면서 서윤 씨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만난 서윤 씨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아들을 데려왔을 때 서윤 씨는 용인에 있는 요양원 조리사로 근무하면서 퇴근 후에는 간호조무사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중단하고 몇 년 만에 만난 아들에게 더운밥을 해 주고 싶은 마음과 계속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마음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자신의 공부보다 손꼽히는 수재로 공부를 잘 하던 아들이 한국에 와서 좋은 대학에 다닐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하는 게 우선은 아닌가 여러 가지로 서윤 씨의 마음은 복잡했습니다. 아들만 데려오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끊임없는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김인선: 아들이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 어린이도 아니고 20살 청년이잖아요. 물론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이젠 아들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고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미래보다 자식을 위한 행복한 선택

 

마순희: . 하지만 서윤 씨는 자식을 위한 선택을 했습니다. 아들들의 뒷바라지를 잘하고 싶어서 북한을 떠났던 서윤 씨잖아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 온 후 서윤 씨는 집에서 거리가 가까운 수원의 한 중소기업건물(경제과학진흥원)에서 청소하는 미화원으로 근무하며 엄마의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청소하는 일이지만 공공기관에 소속된 건물이라 경쟁률이 치열한 입사과정을 거쳐야 했는데요. 서윤 씨도 두 번의 도전 끝에 당당히 합격했고 올해로 입사한지 3년이 되었습니다. 무기 계약직으로 정년까지 보장되는 일자리이고 또 집에서 멀지 않아 출퇴근 걱정 없이 운동 삼아 걸어서 출퇴근한다며 회사생활에 대해 만족하고 있습니다.

 

서윤 씨가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요. 바로 작은 아들입니다. 몇 년 전 둘째 아들도 한국으로 데려왔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서윤 씨의 큰 아들은 인천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고요. 작은 아들은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두 아들이 모두 잘 자라주고 또 한국에서 잘 정착하고 있어서 서윤 씨는 더 이상 바랄게 없다고 합니다. 어디서 어떤 직종에서 일을 하든지 본인이 진심으로 열심히 하려고 노력한다면 차별 없이 인정을 받으면서 잘 정착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정서윤 씨! 자신보다 자식의 행복을 항상 첫 자리에 놓고 자식이 잘 되기만을 바라는 한 마음으로 온갖 시련을 다 이겨내고 이루어낸 오늘의 행복을 두 아드님과 함께 마음껏 누려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인선: 둘째 아들이 서윤 씨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 있을까봐 염려됐는데, 행복한 결말이라서 제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정서윤 씨는 오늘도 두 아들을 위해 따뜻한 상차림을 준비하셨겠죠? 서윤 씨를 통해엄마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생각해 봅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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