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온 가족 탈북정착기(1)

서울-김인선 kimi@rfa.org
202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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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순희의 성공시대] 온 가족 탈북정착기(1) 하나원에 있는 탈북자들이 강의를 듣기 위해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
/AP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11월이 시작되자마자 주말을 이용해 김장을 하신 분들이 꽤 많았습니다. 벌써 김장을 하나 싶었는데 지난 7일이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이었더라고요. 가정집에서도 김장을 하지만 봉사단체는 물론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독거노인이나 소외계층들을 위해 김장봉사를 시작하는데요. 덕분에 날씨는 추워져도 사람들의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요즘인 것 같습니다. 이런 온정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는데요. 탈북민들 사이에서도 온정을 나누는 분들이 많으시잖아요?  

 

마순희: , 맞습니다. 북한의 11월이면 제가 살던 지방에서는 김치가 다 끝나고 시래기까지 엮어서 처마 밑에 매달아 놓았었는데요. 한국의 경우 입동에도 날씨가 따스해서인지 김장을 조금 더 있다가 하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더라고요. 제가 동참하고 있는 사회단체에서도 해마다 직접 키운 배추와 무로 김치를 만들어서 주변의 소외된 이웃들과 청소년시설, 그리고 탈북민 독거어르신들 댁에 김치를 나누어 드리는 봉사활동을 하는데 올해 행사 날짜가 아직 안 나왔더라고요. 좀 더 추워지고 나서야 김장김치 나눔 행사를 할 모양입니다. 저희 탈북민들 사이에서도 김장 나눔을 비롯해 밑반찬 봉사, 생활용품 전달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온정을 나누는 분들이 많은데요. 처음엔 수혜자의 입장이었지만 나중엔 봉사자로 동참하는 분들이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 가족이 탈북해도 힘들다?

 

오늘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온 탈북 선배들의 온정으로 한국 정착에 도움을 받은 만큼 지금은 본인이 나서서 시간이 될 때마다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평안남도의 한 지방도시에서 살다가 2002년 한국에 입국한 주하윤 씨의 정착 이야기를 오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하윤 씨의 경우 온 가족이 함께 온 가족형 탈북민인데요. 제가 하윤 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010년경이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세 자녀들을 돌보느라 몹시 힘들어 보이더라고요. 혹시라도 힘든 일이 있으면 탈북민들의 생활 지원과 다양한 교육을 제공해주는 재단의 도움을 받아보라고 권유했었습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담사분들을 만나 상의해 보라고 했지만 선뜻 결심을 하지 못 하는 모습에 안타까웠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김인선: 과거형이긴 하지만 힘들어하는 모습의 주인공 얘기로 시작되는데요. 그동안 성공시대 주인공을 소개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달라서 살짝 긴장했어요. 동시에 한편으로는 기대가 더 됩니다. 성공시대 주인공으로 선정이 된 이유가 분명 있을 테니까요. 12년 전, 안타까워 보이고 힘겨워 보였던 주하윤 씨! 지금은 어떻게 지내실까요?

 

마순희: . 한마디로 지금은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윤 씨가 처음 한국에 정착할 때는 걱정스러울 정도로 위태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어쩌면 북한에서부터 위태로움이 시작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사를 했던 하윤 씨였기에 북한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생활을 했었는데 아시는 것처럼 북한의 여건 상 점점 경제적으로 어려워졌습니다. 두 자녀의 장래를 위해서라도 탈북을 해야겠다 생각하게 됐고 어렵게 장만한 소형라디오가 탈북의 결심을 부추겼습니다. 라디오를 통해 매일 밤 남한의 kbs 사회교육방송, 대북뉴스, 드라마 방송을 듣게 되면서 남한의 상황과 북한의 정세를 알게 되었습니다. 북한의 암울한 현실에 불만이 쌓여가던 차에 결정적으로 남편 친구가 보위부에서 남편을 뒷조사 하는 중이라고 알려 주어서 바로 탈북을 실행했습니다.

 

가족 전체가 탈북 가능했던 이유

 

김인선: 갑작스러운 탈북인데다가 온 가족이 동시에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하윤 씨네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마순희: 마침 시삼촌의 환갑이라 그 핑계로 이동할 수 있었고 하윤 씨는 친정어머니에게 집을 맡긴 후 두 자녀를 데리고 떠났습니다. 북한을 떠난 후 9개월 만에 한국에 왔다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하윤 씨는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남편에게 극심한 긴장감으로 인한 마비증상이 나타나서 위험을 감수하며 3개월 넘게 침 치료를 받게 해야 했고 미얀마 대사관에서 5개월 동안 갇혀 지내다가 극적으로 한국에 올 수 있었습니다. 하윤 씨는 11, 13살 두 자녀를 위해서라도 하루라도 빨리 정착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변수가 생겼습니다. 40이 다 된 나이에 막내딸을 보게 된 것입니다. 막내의 출생이 축복받을 일이기는 하지만 한국에 정착하면서 할 일도 많은데 출산부터 하게 되니 하윤 씨는 마냥 기뻐만 할 수 없었습니다. 몸조리는 고사하고 회사에 다니는 남편의 뒷바라지에 초등학생인 두 자녀의 학교생활까지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손길을 바라지 않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윤 씨는 몸도 마음도 하루하루 지쳐갔습니다.

 

김인선: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만 전념해도 피로도가 큰데, 탈북과 정착, 새로운 육아까지...몸도 마음도 지치지 않을 수가 없었겠네요.

 

마순희: . 더구나 한국 남자들은 부인을 대신 해서 육아휴직을 내고 적극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일에 나서기도 하지만 북한 남자들은 그렇지가 않아요. 하윤 씨 남편의 경우 북한 남성들 특유의 가부장적인 기질이 좀 심하다고 할까요? 하윤 씨를 이해해주기는커녕 나약해졌다고 오히려 나무람조로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북한에 비하면 먹을 것, 입을 것 걱정도 없는데 일도 안 나가고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애 키우는 것 정도가 무슨 그렇게 힘들다고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 정착과 동시에 찾아온 산후우울증

 

김인선: 종일 반복되는 육아와 가사 일을 하느라 수고했다, 고생했다 이 한 마디가 필요한 것인데... 하윤 씨 남편처럼 별로 힘들지 않은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면 산후에 우울감이 더 커질 수 있거든요. 하윤 씨의 마음이 더 힘들어지진 않았을까 걱정이네요.

 

마순희: . 남편도 처음 회사에 출근하면서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을 거라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하윤 씨는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아프거나 혹은 예방접종을 하러 병원에 가 보면 갓난아기를 엄마가 혼자 데리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더라고 하더라고요. 한국에서는 남편이나 시댁, 혹은 친정에서 누구라도 같이 동행을 하는 게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어쩌다 애기가 아프기라도 하면 더 난처했습니다. 운전을 하지 못 하는 하윤 씨는 부득불 버스나 택시를 불러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남들과 자꾸 비교가 됐습니다. 정착하느라 회사생활하기도 힘든 남편에게 처음에는 내색을 안 했지만 점차 육아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하다고 생각되어 서운함이 커졌습니다.

 

게다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하윤 씨의 책임이었습니다. 준비물도 갖추어 보내야 하는데 한국의 자녀교육에 왕초보인 하윤 씨에게는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육아는 거의 엄마 몫이었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부부가 함께 아이를 양육하잖아요. 하지만 하윤 씨의 남편은 너무도 가부장적이었습니다. 북한식으로 남편은 회사 일만 하는 게 맞고 육아는 하윤 씨가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던 거죠. 북한에서부터 계속 맞벌이를 하면서 살아왔던 하윤 씨는 그럴 때마다 자신도 당당하게 일하면서 사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윤 씨는 막내가 네 살 정도 될 때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북한식 남편, 남한식 남편 될 수 있을까?

 

김인선: 집안일에 도움을 안 주던 남편들도 부인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서서히 변하더라고요. 천생 북한 남자라는 하윤 씨 남편이지만 하윤 씨가 바라본 주변의 다른 남편들처럼 조금은 다정한 남편이 됐으면 좋겠네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 얘기는 여기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주하윤 씨의 정착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갈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 김인선               에디터 : 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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