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탈북민이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 (2)
2024.09.19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박정옥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정옥 씨는 거주지를 경상도 부산에 배정받고 살다가 5년 만에 경기도 광명시로 이사를 했는데요. 우연히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삶이 달라졌다고 했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2005년에 한국에 입국한 박정옥 씨는 광명시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일상이 서서히 무너졌습니다. 주변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정옥 씨는 심적으로 많이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겁니다. 그런 정옥 씨에게 손을 내밀어 준 곳이 지역 주민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관이었습니다. 두 딸과 어린 아들을 키우며 새로운 지역에서 정착을 하려고 노력하는 정옥 씨의 사정을 알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데요. 정옥 씨에게도 함께 봉사를 해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정옥 씨는 봉사자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점점 사회생활에 나서게 되다 보니 우울한 감정은 사라지고 생활이 더 활기차게 되었습니다.
봉사를 하면서 같은 탈북민들도 만나게 됐는데요. 자연스럽게 새터민 향우회라는 모임을 2011년 6월에 결성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국민복지 향상을 위해 일하는 사회복지관을 통해 광명시에 거주지를 배정받은 탈북민들에게 반찬 지원과 지역 안내, 도시락 배달 등의 활동으로 시작했는데요. 점차 영역을 확장하면서 탈북민뿐 아니라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남편과 함께 사업을 시작하면서 정옥 씨는 봉사활동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봉사활동에 한 번도 빠짐없이 참여했습니다. 정옥 씨는 2015년에 회장으로 선출이 됐고, 주체적으로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회원들과 논의 끝에 ‘하나향우회’라는 봉사단체로 새롭게 출범했습니다.
김인선: 정옥 씨처럼 열심히 봉사하는 분들을 많은 분들이 응원하고 지지해 주세요. 봉사활동을 꾸준히 못하는 분들 중에는 개인이 정기적으로 금액 등의 후원을 하기도 하고요.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부처들, 다양한 기업에서는 큰 금액의 물품이나 지원금을 보내 주죠. 봉사단체 대표가 이런 제도적인 부분을 잘 이용하면 좋은데요. 정옥 씨가 이런 정보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요?
마순희: 네. 박정옥 회장은 그 누구보다 제도적인 부분을 잘 알고 활용하는 분이십니다. 복지관은 물론 탈북민들의 거주지 적응과 생활 정보 등을 제공하는 지역 하나센터 등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여러 가지 정보나 지원제도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회원들에게도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부처들, 다양한 기업이나 민간단체 등에서 물품이나 지원금 등으로 봉사단체의 활동을 지원해 주는데요. 그냥 해주는 게 아니라 대표자가 직접 신청하고 일정 절차를 거쳐 선정이 돼야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관련 내용을 알 수 있는 회사나 기관의 홈페이지, 그러니까 인터넷에 공식적으로 개설된 곳을 찾아 홍보, 업무 부분을 확인해야 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북한에서는 자격이나 조건이 되면 누구나 동일한 혜택, 우대 등을 받을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모든 게 신청주의라 자격이 되더라도 본인이 신청하지 않으면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더라고요. 가끔 그런 것을 모르고 ‘같은 조건인데 왜 어디는 주고 어디는 안 주냐’하는 의문을 갖는 단체들이 있습니다. 그건 개인도 역시 마찬가지더라고요. 본인이 신청하지 않으면 받을 수 있는 것도 못 받는 게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가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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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선: 사실 저도 그런 의문을 가진 적이 있는데요. 구조적으로 한국에선 공무원 숫자가, 민원인의 요청을 해결해주기에 부족한 편이다 보니 지원이나 혜택 등의 서비스를 원하는 사람을 일일이 찾아서 지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청을 해야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데요.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까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원을 받으려고 해도 준비해야 할 서류나 자료가 많더라고요.
마순희: 맞습니다. 정옥 씨는 그런 면에서 제격이었습니다. 탈북하기 전에는 함경북도 온성군의 한 탄광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던 노동자였고 한국에 와서는 세무회계 자격증을 취득해서 사무보조 일을 했으니 얼마나 서류작업들이 능통하겠습니까. 정옥 씨가 처음 봉사활동을 하면서 깜작 놀란 게 있다는데요. 한국사람들로 구성된 봉사단체들을 보니까 공모 사업에 신청해서 활동비를 받고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향우회 대표를 맡으면서 정옥 씨는 공모 사업에 신청을 했습니다. 마침 당시에 ‘광명시 마을 공동체 공모 사업’이라는 게 있었기에 도전을 했다는데요. 활동계획 발표를 통한 검증 과정을 거쳐 지역 공모사업 단체로 선정되면서 받은 사업비로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복날 삼계탕 봉사를 시작했고, 지역 후배 탈북민들의 정착생활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듬해에는 지역 공모 사업의 경험을 살려 국가적으로 탈북민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통일부 산하 기관, 남북하나재단에서 선발하는 탈북민 대상의 착한봉사단 선정 사업에도 도전을 했습니다.
김인선: 결과는요?
마순희: 이번에도 성공! 국가적으로 탈북민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통일부 산하 기관, 남북하나재단의 제1기 착한봉사단에 선정되면서부터 하나향우회는 본격적으로 활동을 넓혀 나갔습니다. 착한봉사단 선정은 매년 이루어지는데요. 활동을 잘하면 또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렇지 못하면 다른 단체들에게 기회가 바로 넘어갑니다. 해마다 착한봉사단으로 10여 개의 봉사단체가 선정이 되는데요. 박정옥 씨가 이끄는 하나향우회는 1기부터 올해 8기까지 연속 선정됐고 광명시를 대표하는 봉사단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박정옥 회장은 봉사활동을 통해서 지역사회와 더 굳건히 연결되고 무엇보다 무기력하게만 느껴졌던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고, 지역의 어려운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다 보면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분들이 많다고 하는데요. 그 모습을 보면서 고향에서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같은 생각으로 정말 진심을 다하여 도와드리게 되더라는 말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정옥 씨에게는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5년 전 어느 날, 국가에서 해주는 건강검진을 받다가 유방암 2기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크게 아픈 것도 없었고 세 자녀를 모두 모유수유로 키웠는데 유방암은 말도 안 되는 거라고 처음엔 믿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김인선: 유방암은 여성들에게 가장 흔히 발생하는 암이에요.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조기 발견과 치료가 중요한데요. 조기 발견 시 생존율이 95%에 달한다고 합니다. 검진을 통해 그나마 빨리 발견이 된 게 얼마나 다행이에요.
마순희: 맞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2년에 한 번씩 무료로 건강검진을 받는데요. 병을 초기에 발견하고 완치하는 사례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마 정옥 씨도 그 건강검진이 아니었다면 병을 더 키울 수도 있었겠지요. 정옥 씨는 온 가족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으며 치료에 전념했고 완쾌했다고 합니다. 탈북민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교육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고 이번 추석에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북한 음식 나누기 등 여러 가지 활동들을 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낸 정옥 씨입니다. 이제 두 딸은 대학생이고 한국에 와서 태어난 막내아들은 어느덧 중학생입니다. 정옥 씨는 부부가 건강하고 사랑하는 자녀들이 잘 되는 것, 그 이상 바라는 게 없다고 하는데요. 그 말을 듣는 제 얼굴에 저절로 기분 좋은 웃음이 피어났습니다. 소박한 그 꿈 반드시 이루어질 테니까요.
김인선: 봉사활동으로 삶이 달라졌다는 정옥 씨의 삶을 통해 봉사의 참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을 때 되돌아오는 따뜻한 감사의 말 한 마디, 그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