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통한다, 요양보호사 김선희 씨(1)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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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 무주 양수발전소 색소폰 동우 회원들이 지난 2017년 노인 요양시설인 무주 평화요양원을 찾아 생일을 맞은 어르신 등을 초청해 생일축하곡 연주와 흥겨운 음악을 선사하고 간식을 제공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한국수력원자력 무주 양수발전소 색소폰 동우 회원들이 지난 2017년 노인 요양시설인 무주 평화요양원을 찾아 생일을 맞은 어르신 등을 초청해 생일축하곡 연주와 흥겨운 음악을 선사하고 간식을 제공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5월엔 참 행사가 많아요. 5일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이었죠.

마순희: 네. 다가오는 5월 20일은 성년의 날이고 21일 부부의 날도 있습니다. 성년의 날은 만 19세가 되는 젊은이들에게 성인으로서 자부심과 책임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축하와 격려를 하는 날이더군요. 그리고 5월 21일은 둘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로 부부의 날로 기념하고요. 북한에서의 5월은 전 세계 근로자들의 명절인 5.1절 외에 특별한 기념일이 없거든요. 그런데 남한에서의 5월은 정말 기념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한에선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하나 봅니다. 성공시대에서도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에 대한 소개를 하는 건 어떨까 싶은데요. 간략하게 말하면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우선 엄마 이야기인데요. 충청남도 서산에서 요양보호사로 일을 하고 있는 59살 김선희 씨입니다.

김인선: 네. 그동안 ‘마순희의 성공시대’에서 소개한 탈북민 중에도 요양보호사가 몇 분 계셨는데요. 김선희 씨도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요양보호사는 쉽게 말해 간병인,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 맞죠?

마순희: 많이들 간병인과 요양보호사를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은 같지만 요양보호사는 치매나 중풍 같은 노인성 질환으로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노인들을 돌봐드리는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인선: 맞아요. 기억납니다. 간병인은 자격증 없이도 할 수 있지만 요양보호사는 전문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해야 할 수 있는 일인데요. 혼자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어르신을 돌보는 경우가 많아서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일이라고 알고 있어요.

마순희: 네, 그래서 꼭 필요한 일이면서도 정작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지요. 김선희 씨는 쉽지 않은 그 일을 한지 올해로 10년차가 됐습니다. 얼마 전에 서산에 갔다가 김선희 씨를 다시 만났는데요. 저도 5년 만에 보는 거였답니다. 오랜만에 만난 선희 씨에게 저 역시 요양보호사 일을 처음 시작하던 때로부터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육체적으로도 많이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는데요. 선희 씨는 정 반대라고 답하더라고요. 지금보다 나이는 10년이나 더 젊었지만 모든 것이 낯설고 모르는 것 투성이였기 때문에 그때가 훨씬 더 힘들었다는 겁니다.

북한에는 장애인이나 노인을 찾아가서 돌본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북한 말투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고 소통이 잘 안 되는 것이 무엇보다 힘들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몇 년을 살다가 한국에 오면 그래도 조금은 낫지만 북한에서 직접 넘어 온 경우에는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처음 접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적응이 더 어려운 면도 있거든요. 선희 씨의 경우 남편이 사망하고 2003년에 하나뿐인 아들마저 군대에 나가고 혼자서 힘들게 살다가 한국에 먼저 나온 오빠와 친정아버지의 권유로 탈북할 마음을 먹었고 탈북 3개월 만에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국에 온지 몇 달 만에 요양보호사 공부를 하고 환자의 집을 방문해서 돌보는 재가요양센터에 취업을 했으니 그 어려움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김인선: 탈북민들이 정착 초반,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사고, 버스를 타고...가장 기본적인 남한생활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많이들 버거워 하는데요. 김선희 씨는 정착한지 몇 달 만에 요양보호사 일을 시작했다니 대단하네요.

마순희: 네, 그렇습니다. 선희 씨는 한국에 먼저 정착해서 살고 계시는 친정아버지와 오빠가 계셨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탈북민이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분들이 많지만 피붙이만 할까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가족과 함께 사는 탈북민과 그렇지 못한 탈북민들의 정착과정을 보면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나 중국에 남겨진 가족이 있는 분들은 항상 두고 온 가족들 생각을 안 할 수가 없거든요. 그래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하는 것이지요.

가족 덕분에 선희 씨는 기본적인 생활은 물론이고 적응을 좀 더 수월하게 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선희 씨의 삶이 늘 편안했던 것은 아닙니다. 부모, 형제는 한국에 와 있지만 군에 남아있는 아들 생각 때문에 어느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으니까요. 선희 씨가 한국에 입국한 후 군대에서 복무하던 아들이 감정제대라는 명목으로 제대하게 되었습니다. 남한에선 의가사제대라고 하죠. 선희 씨가 아들에게 한국으로 오라고 했지만 나라를 배반한 것은 엄마 하나로 됐다며 자신에게 더는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자신은 혼자서라도 사회주의를 지킨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고 합니다.

김인선: 그랬던 아들의 마음이 바뀐 거로군요.

마순희: 그렇죠. 북한의 실상은 아들이 군대에 나가기 전보다 훨씬 더 열악했고 불법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더는 그전의 긍지감을 가지고 지키려 했던 자랑스러운 조국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나 봅니다. 결국 아들은 혼자서 견디다가 2011년에 드디어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오게 되었고 지금은 모자가 잘 지내고 있답니다.

김인선: 김선희 씨가 한국에 정착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고 부모형제, 아들까지 남한에서 살고 있으니 이젠 건강도 생각해서 일도 쉬엄쉬엄 하면 좋지 않을까요? 노인이나 환자를 돌보는 게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잖아요.

마순희: 뭘요. 김선희 씨는 건강이 허락되고 자신이 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일을 계속할 거라고 하던데요. 탈북여성들 중 나이가 좀 있는 경우 식당이나 아파트청소를 하는 미화원, 그리고 자격증이 없이도 봉사하는 마음만 가지고 열심히 하면 되는 직업인 간병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간병인 일도 환자나 보호자들의 요구대로 해야 하고 또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러나 간병인이 아니라 요양보호사는 일정한 교육을 받고 국가자격시험에 통과해서 어르신들을 돌볼 수 있는 전문가이기에 간병인보다는 대우도 높고 근무시간도 훨씬 합리적입니다. 더욱이 김선희 씨는 재가요양보호사이기 때문에 거동이 힘드신 어르신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주어진 시간동안만 어르신을 돌보는 것이기에 간병인보다는 덜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인선: 대우도 좋고 전문가이고.. 선희 씨가 요양보호사로 자긍심이 있겠어요.

마순희: 맞습니다. 김선희 씨는 처음엔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면서 힘들기도 했지만 자긍심도 가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온지 몇 개월 만에 요양보호사가 됐을 땐 모든 것이 서툴렀지만 딱 하나, 선희 씨의 진심은 그 어떤 전문가 못지 않았나 봅니다. 돌봐드린 어르신들이 선희 씨의 진심을 알아주고 선희 씨 역시 나날이 호전되어 나가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하는 일이 점점 더 좋아졌습니다. 특히 같은 탈북민인 중풍환자분의 변화가 선희 씨에게 요양보호사 일이 천직임을 알게 했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 벌목공으로 일하다가 한국에 오셨는데요. 혼자 사시다가 중풍에 걸린 어르신이에요. 선희 씨를 만난 이후로 매일이다시피 마시던 술도 끊고 담배도 줄이면서 열심히 건강관리에 협조하더랍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선희 씨는 자신의 일에 대해 더 보람을 느끼게 됐다고 했습니다.

김인선: 김선희 씨가 돌봐드린 그 어르신은 중풍으로 몸이 아픈 것보다 여러 가지 사연으로 마음이 더 많이 아팠었나 봅니다. 자신을 진심으로 보듬어준 선희 씨에게 어르신이 마음을 열지 않았나 싶은데요. 요양보호사 선희 씨가 어떻게 했을지 궁금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을 기약하면서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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