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희의 성공시대] 포기하면 실패다! 통일요리연구가 장유빈 씨(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2.01.13
[마순희의 성공시대] 포기하면 실패다! 통일요리연구가 장유빈 씨(2) 통일요리연구가 장유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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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 안녕하세요.

 

김인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장유빈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유빈 씨는 북한전통음식 명인으로 선정된 요리전문가인데요. 북한에 있을 때부터 요리를 잘했다고 했어요. 음식 솜씨로 소문난 외할머니와 어머니 덕분에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배고픔에 대한 걱정 없이 살 정도였는데요. 어린 나이에 일찍 결혼을 하게 됐어요.

 

마순희: 맞습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남편의 폭력 때문에 결혼생활이 순탄치 못했습니다. 유빈 씨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딸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보통 신분이 불안정하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탈북여성들인 경우에는 중국생활이 쉽지 않지만 유빈 씨의 경우엔 작은 아버지를 비롯해서 친척들도 여럿 있어서 크게 불안하지도, 외롭지도 않았고 그분들의 도움으로 크진 않아도 꽤 괜찮은 식당의 주방에서 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해왔기에 금세 주방에서 인정받고 자리를 잡았는데요. 일하면서 요리사로 일하던 동료와 결혼도 했습니다. 아들도 낳고 잘 살고 있었는데 중국생활 8년 만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유빈 씨의 중국 쪽 시댁 식구들이 하나, 둘 한국행을 하게 됐고 유빈 씨 남편도 마찬가지였는데요. 당시 연변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에게는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면 많은 돈을 벌어 잘 살 수 있다는코리안드림이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어린 아들과 유빈 씨를 두고 가는 것이 마음 편치 않았지만, 그래도 한국행의 꿈을 버리지 못 했던 거죠. 한국에 먼저 도착한 남편은 함께 한국에서 살자고 유빈 씨에게 한국행을 권유했고 2009년 아들과 함께 유빈 씨는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김인선: 탈북여성이 한국에 정착한 후에 국제결혼으로 중국남편을 한국으로 들어오게 하는 경우는 많이 들었지만, 유빈 씨의 경우엔 상황이 반대네요?

 

마순희: , 맞습니다. 유빈 씨의 경우 남편이 먼저 취업비자로 한국에 와서 돈을 벌고 있었고 그 후 유빈 씨와 아들을 한국으로 올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유빈 씨의 경우 북한에서 받은 세뇌교육으로 남조선에 대한 불신이 커 한국행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는데요. 남편의 설득으로 중국생활 9년 만에 아들과 함께 한국행을 결심한 겁니다.

 

김인선: 한국에 입국하면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3개월가량 생활하게 되잖아요. 그 기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하게 되는데요. 유빈 씨의 경우엔 먼저 한국에 나와 있는 중국인 남편도 있고 요리라는 전문기술이 있어서 한국정착이 굉장히 유리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마순희: 맞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또 꼭 그렇다고만 할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정착의 또 다른 복병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유빈 씨는 하나원을 나와서 의정부에 집을 배정받고 제빵 기술도 배우고 한식, 중식, 일식에 이어 양식조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하며 오직 열정 하나로 아바이 순대국집이라는 식당을 운영했습니다. 동시에 북한음식을 전수하기 위해 음식을 만들고 강의까지 다니면서 아글타글 돈을 벌었는데 그 돈을 고스란히 날리는 사건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한 고향에서 이웃처럼 다정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 그 친구가 며칠 내로 차를 되팔아서 돈으로 갚아 준다면서 유빈 씨 명의로 차를 구입했습니다. 하나원 교육을 받을 때 절대로 보증을 서거나 명의를 빌려주면 안 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의 시간마다 들었었는데, 그 순간에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나 봅니다.

 

며칠 후 자신 앞으로 할부금 통지서가 날아올 때까지 아무런 생각도 없었던 유빈 씨는 통지서를 받자마자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는데 이미 그 연락처는 없는 번호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친구는 유빈 씨 명의로 차를 구입한 후 1주일 만에 차를 팔고 그 돈을 챙겨서 외국으로 도망갔다고 합니다. 결국 유빈 씨는 차는 구경도 못 하고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습니다. 유빈 씨는 꼼짝없이 자동차 값 2500만원을 물어내야 했습니다. 2만 달러가 넘는 거금이었습니다. 황당하고 억울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맥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유빈 씨는 살고 있던 집도, 운영하던 자그마한 가게마저 내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빈 씨는 무너지는 마음을 애써 다잡고 다시 처음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밑바닥이 아니라 마이너스로 다시 시작한 겁니다.

 

김인선: 고향 친구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은 셈이니 유빈 씨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요. 이럴 때 남편이 힘을 주면 좋을 텐데, 한국에 먼저 와 있던 중국인 남편까지 유빈 씨에게 상처를 줬다면서요?

 

마순희: . 중국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남편이었는데 주사가 점점 심해지면서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예사로운 일처럼 되어 갔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국에 와서 적응하는 것이 힘들어서 그러나 보다 하고 참아 왔는데, 다 큰 딸애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혼자서 참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빈 씨는 한국에 온 지 1년 만에 북한에서 어렵게 딸을 데려왔거든요. 시댁에서도 남편의 그런 상황을 잘 알기에 애들을 데리고 따로 살겠다는 유빈 씨를 말리지 못 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반대했지만 시댁에서도 아들을 유빈 씨가 키우도록 승인해 주었습니다. 아빠가 다른 두 자녀를 키우면서도 유빈 씨는 항상 씩씩하고 밝게 살고 있는데요. 그동안 한식, 중식, 일식, 양식조리사 자격증까지 모두 취득하였다고 하니 그 동안의 노력을 일일이 다 설명 드리지 않아도 짐작할 만할 겁니다.

 

유빈 씨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자격증 취득도 하고 요리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수상도 하면서 혼자 힘으로 잘 살아갔습니다. 본인의 요리 재간으로 틈틈이 봉사활동에도 참여했습니다. 그렇게 한국 정착 후 3년가량을 지내던 어느 날, 유빈 씨는 충청남도에 있는 지인의 집으로 놀러갔다가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북한과 중국에서 두 차례나 가정폭력으로 이혼의 아픔을 겪은 유빈 씨는 술도 안 마시고, 마음씨까지 착한 걸 보고 두말없이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유빈 씨는 충청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약간의 장애가 있어서 힘든 일은 도와주지 못하지만 운전을 하거나 가벼운 일 정도는 도와주기도 하고 언제나 유빈 씨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고 있다고 합니다.

 

김인선: 온갖 시련을 겪은 주인공이 행복한 결말을 맞는 동화에서처럼 이번에는 정말 좋은 남편과 함께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는데요. 요즘 유빈 씨는 어떻게 살고 있나요?

 

마순희: . 화목한 가정은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요리사로서의 유빈 씨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고 도전의 연속입니다. 의정부에 살 때에 아바이순대국집을 운영했지만 고향친구의 사기로 어쩔 수 없이 1년 만에 문을 닫았고, 충청도에 내려와서 다시 순대국집을 운영했지만 시골 동네라 손님도 적고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6개월 정도 운영하다가 문을 닫았습니다. 비록 식당 운영은 실패했지만 유빈 씨는 계속해서 음식으로, 요리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갔습니다. 2016년부터 요식업을 시작하려는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상담과 도움을 주는 사업을 시작했고 2017년부터 지금까지 전국요리대회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금 유빈 씨는 따로 식당을 하지는 않고 집 옆에 통일음식문화연구원이라는 가게 겸 요리실습장을 만들어 음식도 만들고, 북한음식 전수도 하고 있습니다. 틈틈이 음식으로 할 수 있는 봉사활동에도 참여한다는 장유빈 씨! 28살 된 유빈 씨의 딸도 서양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요리사가 됐다는 소식을 전해주며,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김인선:포기하지 않으면 실패는 없다는 말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면서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 김인선               에디터 : 이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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