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사업가! 다사랑 웰빙나라, 김명희 씨(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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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토마토 '1(하루), 1(한 끼), 1(한 개)'로 건강을 챙기세요"라는 주제로 '토마토 소비촉진 캠페인'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서울 농협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토마토 '1(하루), 1(한 끼), 1(한 개)'로 건강을 챙기세요"라는 주제로 '토마토 소비촉진 캠페인'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1999년 청진을 떠나 중국을 거쳐 2005년 한국 땅을 밟은 김명희 씨에 대한 이야기 나눠볼게요. 명희 씨는 할머니의 고향이기에 충청남도 부여를 정착지로 정했는데요. 여기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납니다. 명희 씨의 남편은 건강원을 하던 사람인데요. 건강원은 호박, 포도, 배, 양파, 한약 등 손님들이 가지고 오는 재료로 즙을 달여주고 수공비를 받는 임가공을 전문으로 하는 곳입니다. 남편이 운영하던 건강원은 명희 씨가 함께 일하면서 규모가 점점 커졌다는데요. 두 사람의 합이 그만큼 좋았다는 말이겠죠?

마순희: 네, 제가 보기에도 부부는 엄청 사이가 좋아 보였습니다. 서로의 장점과 단점들이 잘 보완되면서 행복과 성공을 함께 이루어 나가는 것이 정말 보기 좋았거든요. 원래 명희 씨의 남편은 칡즙을 만들어 주는 건강원을 하고 있었는데요. 명희 씨와 함께 일하기 시작하면서 사업이 번창했습니다. 명희 씨는 방울토마토의 전국 생산량 1위가 부여라는 점에 착안해서 방울토마토 즙을 생산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남편은 저온공법을 개발하였습니다.

부부는 음료를 마시고 싶어도 당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 마음 놓고 마실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건강한 토마토 농축액을 연구하고 개발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토마토 원액이었습니다. 명희 씨는 과묵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즐기지 않는 남편을 대신해서 제품 홍보에 발 벗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남북하나재단에서 지원하는 영농정착지원금을 신청하여 지원을 받아서 회사경영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명희 씨의 활약으로 가게의 판매처가 확대되었고 2014년도에는 한 신문사에서 선정한 최고상품을 만드는 회사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명희 씨는 성공한 탈북민 사업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김인선: 그만큼 주문이 많아졌겠어요. 원 재료, 토마토를 확보하는 일로 더 바빠졌을 것 같기도 하고요.

마순희: 맞습니다. 주문이 점점 늘어나자 명희 씨는 직접 토마토를 재배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토마토를 직접 재배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2016년부터 비닐온실 두 동을 임차하여 직접 방울토마토를 생산하여 원료로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주문량이 계속 늘면서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추가로 주변 농가에 계약재배를 의뢰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새로 문을 연 공장에서 토마토원액을 생산하고 있는데요. 하루 생산량이 무려 1.5톤가량 된다고 하더군요. 어떤 날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일을 마치기도 한 대요.

김인선: 어마어마한 양이네요. 홍보하고 판매하는 일만으로도 바쁠 텐데 토마토 재배까지 하려면 힘들겠어요.

마순희: 맞습니다. 그래도 좋은 토마토를 생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게을리 할 수 없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명희 씨는 빨리빨리 일을 해야 하는 성격이고 남편은 느긋느긋 일을 하는 성격이라는 겁니다. 명희 씨가 토마토 2바구니를 수확하는 동안 남편은 1바구니도 채 못 채울 때가 많다고 하네요. 쉬엄쉬엄 일하라는 남편의 말에도 명희 씨는 잠시도 쉴 여유가 없다고 하는데요. 북한에서는 열심히 일해도 내 것이 안 되지만 남한에서는 한 만큼 다 명희 씨의 재산이 되기 때문에 신바람이 나기 때문이랍니다. 늘 사리정연하고 친절한 명희 씨, 하지만 빨리 빨리 하려는 명희 씨의 성급한 성격은 느긋한 남편이 눅잦혀 주기가 일쑤였습니다.

김인선: 괜히 토마토 농장을 시작해서 부부싸움이 많아지진 않았을까 걱정스러운데요?

마순희: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사교성이 많은 명희 씨 앞에서는 무뚝뚝한 편인 남편도 늘 웃어버리고 만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얼마 전에 명희 씨를 다시 만났는데 그동안 많은 변화들이 있었더라고요. 사실 제품 생산만 하기에도 벅찬데 거기에 토마토 농사까지 하다 보니까 힘이 많이 부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농사는 계약재배를 하여 전문 농가에 맡기고 대신 가공공장을 새로 지었습니다. 제가 처음 명희 씨를 만났을 때엔 건설이 막바지에 이르렀고 마지막 정리작업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 공장이 지난 6월부터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소요되는 토마토가 1,5톤 정도라고 하거든요. 명희 씨는 자신의 가공공장에서 처리되는 토마토가 1년에 100톤은 넘을 거라고 합니다. 두 부부가 운영하기에는 범위가 많이 확장된 거죠. 그래서 지금은 직원이 두 명 정도 있고 시기에 따라서 부족한 일손은 지역의 어르신들이 일용직으로 나와서 도와주기도 한대요. 제가 생각해 봤을 때에도 어르신들이 건강도 챙기고 용돈벌이도 하시고 1석 2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김인선: 1석2조 맞습니다.) 그런데 1석 3조가 될 것 같아요. 지역 어르신들과 관계가 명희 씨가 살아가는대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제 며칠 후면 명희 씨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친정아버지의 팔순 생신이라고 합니다. 특히 명희 씨의 남편은 처가 일이라면 발을 벗고 나서는 사람이라 장인의 팔순생신을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가족행사를 준비해 오고 있다고 합니다. 일가친척들과 지인들이 모두 모여서 함께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거죠. 사실 명희 씨의 남편은 과묵하고 밖에 나가기를 싫어하는 성격입니다. 그 부족함을 명희 씨가 많이 채우려고 애쓰는데요. 제가 명희 씨 부부를 만나는 날 부부는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남편이 탈북자고 제가 한국사람 역할을 해요’ 라고요.

김인선: 보통 남남북녀 부부와 달리 북한에서 온 명희 씨가 남한 남편에게 더 잘 맞춰준단 말이네요.

마순희: 네. 그리고 명희 씨 사회활동도 더 활발한데요. 그만큼 남편이 명희 씨를 위해 뭐든지 다 지원해주고 응원해 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편은 명희 씨의 부모없는 조카도 한국까지 데려올 수 있게 해주었다는데요. 그것도 부족한지 입양수속을 거쳐서 법적으로 자신의 친딸로 등록하고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답니다. 조카와 친정아버지까지 식구처럼, 아니 식구보다 더 챙기는 이런 자상하고 멋진 남편이었기에 명희 씨도 웬만하면 남편의 말을 따라주고 맞춰주는 게 아닐까요? 과묵하고 밖에 나가기를 싫어하는 남편의 부족한 점은 명희 씨가 채워 나가고 있습니다. 활발한 사회활동으로 가게의 입지를 더 굳히고 높여 나가고 있으니까요. 앞서 명희 씨가 ‘우리 집에서는 남편이 탈북자고 제가 한국사람 역할을 해요’ 이런 말을 했다고 전했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도 가끔은 명희 씨가 남한 여성, 남편이 탈북민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요.

하지만 누가 탈북자고 누가 남한사람이면 무슨 상관입니까? 부부가 서로의 조력자가 되어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선 자리에서 꽃을 피우라는 것이 김명희 씨의 좌우명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받을 것인가 보다 무엇을 줄 것인가 라는 마음으로 자신의 사업을 해 나가는 여성 사업가 김명희 씨. 통일에 이바지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어 탈북민들과도 함께 일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것이 명희 씨의 꿈이라고 했는데요. 요즈음 명희 씨가 새로 받은 직원 두 명이 모두 탈북민 출신이라고 합니다. 명희 씨는 그렇게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거죠. 가게를 더 알차게 운영하면서 사회적기업으로 만들어 탈북민들과 함께 성공하려는 명희 씨의 아름다운 꿈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를 저도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입니다.

김인선: 부부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때로는 서로 부딪치고, 그래서 때로는 아파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일상을 바꾸어 놓는 큰 힘을 발휘하는데요. 명희 씨는 남편을 만나서, 남편분도 명희 씨를 만나서 새로운 일상,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쭉 하시는 사업이 잘 돼서 탈북민이 일할 수 있는 든든한 일터를 만들고 싶다는 두 분의 꿈! 꼭 이루어지셨으면 좋겠네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과는 여기에서 인사드립니다.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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