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힘으로 강인하게! 요양보호사 방은희 씨 (1)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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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으로 강인하게! 요양보호사 방은희 씨 (1) 인천시 부평구 부평인복드림 종합재가센터에서 요양보호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호복을 입었다가 벗는 교육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한국정부에서는 11월부터 단계적 일상회복, 이른바 위드코로나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부분 취소되거나 온라인상으로 진행됐던 지역 축제들도 시작되고 전체적으로 경기가 활성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요. 아직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위드코로나는 자율과 책임을 기반으로 한 방역 체계로 여전히 코로나비루스의 위험은 존재하니까요.

마순희: 맞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병원이나 시설 등에서 환자와 어르신을 돌보는 사람들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시설만 하더라도 위드코로나 이전과 마찬가지로 시설에 입소할 때에는 코로나 검사를 한 후 음성 확인 결과가 있어야 됩니다. 또 밖에서나 실내에서나 마스크 착용 역시 필수이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체온과 혈압을 재고 수시로 소독약으로 손을 닦고 있습니다.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어르신들도 이제는 생활화 되셨을 정도입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모두가 한마음으로 기본적인 방역수칙을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비루스로 외출을 최소화하며 지내느라 건강관리가 소홀한 상태였는데 위드코로나로 외부 활동이 급증하면서 그동안 잠잠했던 다른 감염 질환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독감이나 폐렴 백신 접종률이 코로나비루스 유행 전인 2019년에 비해서 22% 넘게 감소했다고 하는데요. 만 65세 이상의 고령층은 폐렴구균 감염 위험군이기에 걱정입니다. 제가 있는 시설에는 어르신들이 많기 때문인데요. 폐렴구균은 코로나비루스와 초기 증상이 비슷하고 한국의 사망 원인 3위로 꼽히는 만큼 예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 청취자 여러분들도 꼭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인선: 맞습니다. 요즘 남한의 상황을 말씀드렸는데, 북한의 일상은 좀 나아지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어디서든 우리 모두의 일상회복을 위해서라도 각자의 건강을 잘 챙겼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제가 걱정되는 건 선생님처럼 복지관이나 요양병원 등 시설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에 50세 이상의 분들이 많다는 건데요. 코로나비루스의 장기화로 이분들의 건강이 걱정입니다. 특히 탈북민들 중엔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이 많으시잖아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우리 탈북민들 중에서 특히 좀 나이가 드신 분들은 환자를 돌보는 간병인이나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는 분들이 꽤 많거든요. 젊은 여성들도 있지만 제 주변에만 보더라도 6-70대를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요. 요양보호사나 간병인 일은 나이 제한도 없고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봉사하는 마음과 성실성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공시대에서 소개해 드리는 분도 서울에서 규모가 큰 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분인데요. 2007년에 한국에 입국한 방은희 씨입니다.

김인선: 3-40대 탈북민 중에는 좀 더 나은 삶을 꿈꾸며 한국에서 뒤늦게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5-60대 중에는 빨리 정착하고 싶다는 마음에 준비 없이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방은희 씨의 경우는 어땠나요?

마순희: 네, 방은희 씨는 입국 당시 58세였습니다. 함께 한국땅을 밟은 젊은 친구들은 대학에 간다, 학원에 간다 하면서 모두 다 희망에 들떠 있었지만 50대 후반에 입국한 은희 씨에게는 그 모든 것이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일처럼 생각되었습니다. 그 나이에 공부하는 것도 그렇고, 그저 열심히 일하면서 정착하겠다는 것이 은희 씨의 생각이었습니다. 한국에 입국한 후 하나원에서 생활하면서 아무것도 기여한 것도 없는 자신들이지만, 나라에서 집도 주고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조건들을 다 마련해 준다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는 방은희 씨였습니다. 그래서 크게 성공은 못 하더라도 나라에 짐은 되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마음만은 누구보다 더 강했다고 합니다.

김인선: 2015년부터 50대와 60세 이상의 탈북민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인데요. 적지 않은 나이에도 탈북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사연들이 다들 있더라고요. 방은희 씨가 한국행을 결심한 사연은 뭘까요?

마순희: 방은희 씨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습니다.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운전수였던 남편도 잘 벌어왔고 은희 씨 자신도 체신소(우체국)에서 근무하면서 큰 어려움 없이 세 자식들을 키우면서 살아왔었거든요. 그러다가 남편이 갑작스럽게 병으로 사망하자 온 가족의 생계를 은희 씨가 짊어지게 됐습니다. 둘이서 벌다가 혼자 벌려니 도저히 그전처럼 살아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은희 씨는 다 큰 세 자녀에게 집을 맡기고 중국의 친척을 찾아 떠났습니다. 처음에 떠날 때에는 조금씩이라도 도움을 받으면 인차 돌아가겠다고 약속하고 떠난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중국에 들어가 보니 어느 곳에서도 큰 도움을 바랄 형편이 안 되었던 겁니다. 그래도 중국에서는 일만 하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친척집에서 돈을 주거나 식량을 주는 등 직접적인 도움은 못 주지만 일자리는 알선해 주었습니다.

은희 씨는 친척들의 소개로 가정집의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말이 일이지 가정집 일이라는 게 크게 힘들 것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일해서 돈을 얼마나 받을까 싶었다는데요. 한 달 일하고 받은 돈이 북한에서 몇 년을 일해도 벌 수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그 돈을 들고 북한으로 돌아가도 됐지만 하는 일에 비해서 많은 돈을 받고 보니 은희 씨는 ‘조금만 더~’ 하면서 하루하루 미루다 보니 6개월이 넘었습니다. 그 때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됐습니다. 북한에서 온 인편에 따르면, 자식들이 방은희 씨를 중국에 가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고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그냥 탈북했다고 하면 자식들의 앞길에 큰 걸림돌이 됐을 테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됐지만 보고 싶은 자식들의 얼굴이 눈앞에 삼삼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돌아가면 자식들에게 더 큰 문제가 될 것임을 잘 알았기에 은희 씨는 피눈물을 머금으며 중국에서 계속 지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돈은 벌 수 있었어도 잡혀갈까 가슴 졸이며 살아야 했기에 은희 씨는 마음을 둘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동네에서 우연히 북한에서 온 여성을 만나게 됐고 그와 함께 은희 씨는 한국을 향해 또다시 험난한 노정을 떠났습니다. 머나먼 3국을 거쳐서 은희 씨는 2007년 한국에 입국하게 됐습니다.

김인선: 젊은 사람들도 험난한 탈북 과정을 거치면서 몸이 많이 상하잖아요. 한국에 입국할 당시 50대 후반이었던 은희 씨의 건강상태는 어땠을까요?

마순희: 네, 은희 씨는 원래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북한에 살 때부터 무릎관절이 안 좋아서 무릎통증이 심했는데요. 나이를 먹으면 다들 당연히 그런 것이려니 하고 특별히 치료받을 생각은 못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험난한 탈북과정을 거치면서 몸이 많이 상했습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거치면서 험한 산길도 걷고 수림 속도 헤쳐 오는 동안 무리가 되었는지 무릎이 더 안 좋아졌습니다. 통증이 더 심해졌는데요. 그래도 은희 씨는 한국에 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마음에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온 후부터 아픈 다리를 이끌고 아파트 청소하는 일을 시작했는데요.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다리는 점점 더 심하게 아팠습니다.

김인선: 네. 탈북 과정에서 생긴 부상을 비롯해 다양한 이유로 몸이 아픈 탈북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정부에서는 탈북민을 대상으로 정착 초기 5년까지 무료 의료혜택을 제공하는데요. 은희 씨는 그 혜택으로 치료를 잘 받고 건강을 회복했을까요? 은희 씨의 못 다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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