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운명으로, 김민우 씨(1)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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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남시 궁내동톨게이트 모습.
경기 성남시 궁내동톨게이트 모습.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벌써 11월도 마지막 주예요. 매해 이맘때가 되면 어쩜 그렇게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요?’ 올해도 벌써 다갔네, 그동안 뭘 한 거지’ 이런 생각이요.

마순희: 정말 공감이 되는 생각입니다. 저도 새해를 맞이하면서 금년엔 어떤 일들을 할지 생각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해도 한 달 정도 밖에 안 남았다니, 정말 그 동안 무엇을 했는지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거든요.

김인선: 정말 계획대로 산다는 게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변수도 참 많이 생기니까요. 오늘의 주인공에게는 어떤 삶의 변수가 있었을까 궁금한데요. 어떤 분이죠?

마순희: 네, 오늘은 한국정착 10년차 김민우 씨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차량 단속업무를 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김민우 씨가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김민우 씨는 북한에서 지낼 때 임업건설 사업소에 근무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삶이 변했습니다. 직장에 나가봐야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출근을 해도 배급도 월급도 받을 수 없다 보니 차츰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여성들은 장마당에 나가 장사라도 하면서 생계를 책임질 수 있었지만 남성들은 마땅한 일이 없어지면서 점점 설 자리가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다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살 방도를 찾게 됩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은 그 권력의 힘으로, 자재나 제품을 다루는 사람은 그 자재나 제품을 생활수단으로 삼아 수단껏 살게 되는데요. 마땅한 수단이 없었던 민우 씨는 브로커 일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브로커가 아니라 인신매매자로 불리는데 잡히면 무조건 총살한다고 할 정도로 중죄인입니다. 그만큼 위험한 일이었지만 민우 씨는 앉아서 굶어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브로커 일을 하게 되었고 몇 번 성공적으로 연계하다 보니 차츰 요령도 생겼다고 합니다.

김인선: 그렇게 많은 탈북 시도자들을 알선해 주면서 민우 씨도 탈북을 생각하게 된 건가요?

마순희: 아니요. 민우 씨의 탈북은 갑작스러운 결정이었습니다. 2009년 어느 날 민우 씨가 연결한 탈북시도자들 중에서 몇몇이 체포되는 일이 생겨서 민우 씨가 갑자기 두만강을 건너게 됐거든요. 그렇게 민우 씨는 한국으로 오게 됐답니다.

김인선: 그렇게 한국으로 오는 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보다도 갑작스러운 탈북이라 가족과 작별할 시간도 없었겠어요.

마순희: 맞습니다. 갑작스럽게 탈북하게 되면서 가족들과 작별 인사 할 겨를이 없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텐데요. 이제와 생각해보면 가족들 역시 위험을 무릅쓰고 작별인사를 하다가 잘못되는 것보다 무사히 가기를 더 바랬을 것 같다고 김민우 씨는 말합니다. 그래야 본인에게도, 남겨진 가족에게도 피해가 덜 가기 때문이랍니다.

김인선: 부디 한국까지는 별일 없이 오셨어야 할 텐데요.

마순희: 네. 물론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이 노정을 함께 한 몇몇 사람들 때문에 긴박한 상황도 많았다고 합니다. 일행 중에 70 넘으신 어르신도 있었고 어린 아이도 두 명이나 있었으니까요. 어려움은 많았지만 민우 씨는 이들 모두와 함께 먼 3국을 거쳐서 2010년 1월에 대한민국에 입국하게 되었답니다.

김인선: 무사히 오셔서 다행이네요. 탈북민이 한국에 오면,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생활을 하고 나오잖아요. 아무래도 함께 탈북했던 사람들이 하나원을 나와서 개별적으로 정착을 시작하는 것도 시기적으로 비슷하니까 살면서 서로 가깝게 지내는 것 같더라고요.

마순희: 맞습니다. 한국에 입국한 시기에 따라서 하나원에 입소하게 되다 보니 생사를 함께 하던 지인들이 대체로 같은 기수에서 생활하게 된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을 함께 하면서 서로를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 생기고 또 가까워지는데요. 탈북민들 중에는 이렇게 탈북과 하나원 교육 등의 과정에서 서로 알게 돼서 가정을 이룬 사례들도 적지 않습니다.

제가 하나원 생활을 할 때에도 서로 사귀는 커플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세 커플이 실제로 결혼해서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으니까요. 오늘의 주인공 민우 씨도 대한민국으로 오기까지의 노정을 함께 해왔던 두 아이의 엄마와 가정을 이루게 됐습니다. 힘들어 하는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업고 이끌며 함께 오면서 정이 들었고 애틋한 마음이 들지 않았나 싶은데요. 그렇게 김민우 씨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됐다고 합니다.

김인선: 탈북과정에서 일행이었던 그 아이들과 민우 씨가 가족이 됐다고요? 우리가 성공시대를 통해 소개해드리는 분들 얘기 대부분이 남한에서 어떤 새로운 직업에 도전해서 잘 살고 계신 지에 대한 것들이었는데, 민우 씨의 이야기는 그 시작점부터 다르네요. 정말 대단하세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일반적으로 탈북 남성들은 북한에서부터 가족과 함께 오거나, 민우 씨처럼 부득이하게 혼자 오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남한에서도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국에서의 정착,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말이죠. 그런데 김민우 씨는 아무것도 없는 시점에 두 아이를 데리고 온 여성과 가정을 이루고 한 가정의 세대주로서 한국 정착을 시작했습니다. 사실 셈이 든 자식들이 있는 상태에서 재혼을 하게 되면 보통은 애들과의 관계도 서먹해지고 문제도 적지 않다고 하는데요. 거의 반년 넘게 함께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생활하다 보니까 민우 씨와 두 아이들이 서로 정이 들어서 자연스럽게 한 가족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사실 일부러 말해주지 않으면 민우 씨의 가족이야기는 아무도 모를 지도 모릅니다. 저도 전혀 몰랐으니까요. 제가 민우 씨네 집에 찾아 간 적이 있는데, 두 아들을 일일이 챙겨 주는 모습에 ‘자상한 아빠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애들 엄마가 아이들 친 아빠가 아니라고 설명을 하더군요. 만약 그 설명이 없었다면 누구라도 애들 친아빠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더구나 민우 씨네 집에는 80이 다 된 장모님도 계셨는데요. 어찌나 각별한 지 장모와 사위가 아니라 모자 사이로 착각할 만큼 자상한 가장의 모습이었습니다.

김인선: 부양해야 할 가족이 셋이 아니라 넷! 민우 씨는 정말 열심히 돈 벌어야겠어요

마순희: 책임감이 남달랐고 워낙 성실한 성격이어서 하나원을 나오자 마자 일을 시작했습니다. 민우 씨는 지인의 소개로 주원통상이라는 의류품 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는데요. 처음 해보는 일이라 쉽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민우 씨는 남한의 직장 문화에 적응을 못하면서 회사생활이 점점 힘들어졌습니다. 중국이나 다른 제 3국에서 몇 년을 살다가 온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북한을 떠나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조금씩이라도 경험하게 되지만 민우 씨처럼 직행으로 한국에 온 사람들은 남과 북의 문화적 차이,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차이 때문에 힘들어 하거든요.

민우 씨가 하는 일이 반품하는 물건을 처리하는 것이었는데, 어떤 날에는 반품하는 물건이 한 차씩 들어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그걸 보고도 자기 일이 아니면 다 퇴근을 하고, 민우 씨 혼자서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구성원 전체가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합심하는 문화였으니까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민우 씨는 남한의 문화를 조금씩 배워 나갔고 좀 더 복지가 안정된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회사생활을 한지 1년이 됐을 때 지금의 회사로 옮기게 됐는데요. 지인의 소개로 부인과 함께 고속도로 통행 요금을 받는 요금소에 취직한 것입니다. 민우 씨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근속 연한이 9년차라고 합니다.

김인선: 보통 3년마다 계약을 해서 오래하는 분이 별로 없다고 알고 있거든요. 그 비결은 다음 시간에 들어보도록 하죠. 함께 탈북했던 동료가 부인이 되고, 자녀가 됐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만난 사람이 운명의 상대가 됐다는 표현! 보통은 연인들에게 쓰는데요. 김민우 씨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에게도 ‘운명’이라는 표현이 제법 잘 어울린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왠지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김민우 씨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지는데요. 다음 시간에 계속 이어 가겠습니다.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릴게요.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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