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힘으로 강인하게! 요양보호사 방은희 씨(2)

서울-김인선 xallsl@rfa.org
2021/12/02 09:50:00 US/East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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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힘으로 강인하게! 요양보호사 방은희 씨(2) 서울 성동구의 한 요양시설에서 면회공간을 소독하는 성동구청 및 요양원 관계자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김인선입니다. 탈북민이 생각하는 성공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간에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의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탈북민들의 국민 엄마, 상담사 마순희 선생과 함께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마순희: 네. 안녕하세요.

김인선: 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방은희 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볼게요. 중국에서 남의 집안일을 해주며 북한에서와 달리 많은 돈을 벌게 된 은희 씨는 시간을 지체하다 북한으로 돌아갈 시기를 놓쳤는데요. 이미 북한에서 자녀들이 자신을 행방불명 처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됐죠?

마순희: 네, 맞습니다. 이제 와서 은희 씨가 북한으로 돌아간다면 자식들에게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었기에 중국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불안한 신분으로 지낼 수 없었기에 은희 씨는 한국행을 결심했고 2007년, 58살의 나이에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험난한 여정을 겪으면서 은희 씨의 건강이 안 좋아졌습니다. 북한에 살 때부터 무릎관절이 좋지 않았는데,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험한 산길도 걷고 수림 속도 헤쳐 오며 무릎 상태가 더 나빠진 겁니다. 나이 먹은 사람은 으레 아프려니 하며 은희 씨는 무작정 참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과 아무 조건 없이 자신들을 받아준 한국 정부에 짐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탈북민 초기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을 나온 후 은희 씨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아파트 청소하는 일을 바로 시작했습니다.

김인선: 하루라도 빨리 정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겠지만, 그래도 건강이 우선이죠. 한국에서는 40세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2년에 한 번씩 건강상태가 양호한지 검사하는 건강검진을 무료로 해주고요. 탈북민의 경우 정착 초기 5년까지 무료로 다양한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있거든요. 은희 씨도 그 혜택을 받았겠죠?

마순희: 네. 한국에서는 탈북민들의 한국정착을 지원하고 돕는 남북하나재단을 비롯해서 여러 탈북민 지원단체에서 탈북민의 건강을 위해 다양한 의료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민간병원은 물론이고 대형병원과도 의료협약을 맺어서 치료비 지원과 편의제공 등 다양한 의료 혜택을 지원하는데요. 대표적인 곳이 제가 상담사로 근무했었던 서울 국립의료원입니다. 은희 씨도 국립의료원에서 진료를 받게 됐는데요. 의사선생님이 그냥 있기도 힘든 그 다리로 어떻게 일을 하셨냐고 하면서 입원을 하도록 했습니다. 은희 씨는 결국 두 무릎 모두 인공관절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김인선: 인공관절수술은 한국에서는 197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정말 심각하지 않으면 잘 하지 않는 수술이거든요. 그만큼 은희 씨의 상태가 안 좋았다는 거네요. 인공관절로 교체하고 나면 통증은 줄어드는데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들었어요.

마순희: 네. 수술은 무사히 잘 마쳤고 은희 씨는 거의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해서 재활치료까지 받았습니다.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통증이 심하고 걷기도 힘들었는데 수술 후 정상적으로 생활이 가능해진 은희 씨는 퇴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고부터 다시 아파트 환경미화원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병원에서 지내느라 한 두 달의 공백기가 있었지만 그동안 너무 열심히 알뜰하게 청소일을 했던 터라 다시 받아 주었었답니다.

김인선: 탈북민이 지역에 전입하면 각종 정착금과 주거지원금 그리고 각자 상황에 맞는 각종 장려금 등을 지원 받게 되는데요. 은희 씨의 입국 당시 나이가 58세이기 때문에 기초생활 수급비 지원도 가능했을 거예요. 그런 경우 건강상의 문제를 앞세워 일하지 않고 수급비를 아껴서 생활하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은희 씨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면서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은희 씨 나이가 한국에 입국할 때 이미 50대 후반이고 또 두 무릎을 모두 수술을 받았었기에 장애 급수도 받아서 일을 하지 않아도 생계급여에, 장애급여도 나옵니다. 그런데 은희 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내 몸이 허락하는 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하면서 될수록 제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는 나라에 손을 벌리지 않겠다는 마음이 누구보다 강했던 은희 씨였습니다. 한국에 나온 초기부터 시작해 4년 정도 아파트 미화원으로 근무했는데요.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에도 늘 밖에서 청소를 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은희 씨는 무릎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기간 약 두 달을 빼고 하루도 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청소일보다 근무환경도 괜찮은 편이고, 급여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간병인 일을 하게 됐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경력이 없어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일반 간병인으로 일하다가 은희 씨는 자격증을 갖춰야 하는 요양보호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간병 일을 하는데 급여는 간병인보다 요양보호사가 더 많고 보호자들도 더 신뢰하기에 일자리도 잘 연결된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60이 넘어서 공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은희 씨는 요양보호사 학원을 다니며 자격증 취득을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은희 씨는 국가자격시험에 통과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게 됐습니다. 은희 씨는 지금도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계십니다.

김인선: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 특히 자식들에게 돈을 보내주기 위해서 많은 탈북 여성들이 한국에서 여유로운 삶을 안 살더라고요. 본인을 위해서 좋은 옷 한 벌도 안 사고 제대로 먹지도 않으면서 번 돈 대부분을 보내는데요. 때때로 빚을 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은희 씨도 비슷한 상황이었다고요?

마순희: 네. 은희 씨의 경우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브로커 비용을 마련하느라 열심히 일했고 그 다음엔 통일이 된 후에라도 북한에 남아있는 자식들을 떳떳이 만날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사는 은희 씨를 이용해 사기를 치는 나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몇 년 전에 자식들과 연계할 수 있다는 지인이 생겼고 은희 씨는 큰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은희 씨가 살던 곳은 두만강이나 압록강 연안이 아니다 보니 한 번 연결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어쩌다 연결했을 때 자식들에게 제대로 도와주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큰돈을 만들려는 은희 씨에게 대출을 도와주겠다고 주선을 하며 접근했던 사람이 있는데 알고 보니 전문 사기꾼이었습니다. 은희 씨의 개인정보를 이용해서 빚을 지게 만들고 대출도 못 받게 만들었습니다. 법률상담을 받아봤지만 결과적으로 은희 씨가 몇 천 달러의 돈을 날리게 된 것으로 마무리 됐습니다. 은희 씨는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다시 한 번 사기에 걸리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하면서 죽는 날까지 부지런히 일하면서 남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고 합니다.

김인선: 세상 물정 잘 모르는 탈북민을 대상으로 이런 안 좋은 일들이 가끔 있더라고요. 아무런 연고도 없이 그걸 다 감수하면서 혼자 힘으로 살아간 은희 씨네요. 다행히 은희 씨 곁에는 가족처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분이 계시다면서요?

마순희: 네 맞습니다. 은희 씨 옆에는 늘 가족처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좋은 남한사람, 남자친구가 계십니다. 그분은 은희 씨에게 여러 가지 유용한 정보들도 알려주고 한국생활에서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게 많은 조언들을 해줍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함께 여행을 즐기기도 하는데요. 우리 탈북민들 중에 은희 씨처럼 많은 곳을 구경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남북한의 문화적 차이나 세습, 풍습 등 차이가 많아서 간혹 티격태격도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믿음직한 동반자로 지금까지 서로를 지켜가고 있습니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곁에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오늘도 힘이 난다는 방은희 씨의 보다 행복한 미래를 응원합니다.

김인선: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살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방은희 씨의 삶을 통해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보다 받으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죠. 여러분은 도움을 주는 사람인가요? 도움을 받는 사람인가요? 마순희의 성공시대, 오늘은 여기서 인사드립니다. 함께 해주신 마순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마순희: 네. 감사합니다.

김인선: 여기는 서울. 지금까지 김인선이었습니다.

기자 김인선, 에디터 이예진, 웹팀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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